비틀거리는 번역가의 푸념

번역가로 살아남고 싶다

by 올리브

10월말에 지난 번 책의 번역을 마친 후 두 달 반이 지나는 동안 아직 새로 번역할 책을 받지 못했다. 몇 권의 책을 연달아 번역하면서 나는 어느새 안정적인 일감을 받을 수 있다는 자만에 빠졌던가보다. 샘플 번역에 몇 번이나 연거푸 떨어지면서 그 자만함에서 빠져나와야한다는 뼈아픈 교훈을 또 얻고 있다.

번역가들이 너무 많고, 요즘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고, 나보다 우리말을 잘 다루는 사람, 나보다 제반 지식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한 이 분야에 내가 발을 들여놓은 것이 참 안타깝다.

번역가들이 쓴 글을 보면, 아니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든 그들이 쓴 글을 보면 몇 십 년 전에는 그 일을 하기가, 그 분야에 발을 들여놓고 일을 꾸준히 하기가 훨씬 쉬웠던 것 같다. 당시에는 어려웠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어렴풋해져서 그런건지, 아직 지금처럼 다들 실력과 배움이 깊지 않아서 실제로 경쟁이 덜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아야 하는 분야에 내가 들어왔다는 게, 뒤쳐지고 도태되는 것처럼 느껴질 때는 공포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어제도 샘플 번역에 떨어졌다. 마침 카페에서 아이들과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절로 한숨이 푹 나왔다. 말을 안 하려고 했지만 아이들에게 또 떨어졌다는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괜찮아'라고 말해줬다. 고마웠다.

요즘 매체에서 자주 보이는 영어 강사 조정식 선생님의 쇼츠도 봤다. 어느 분야든지 90퍼센트는 다른 길로 간다, 성공하려면 하나만 기억해라. '버티는 자가 살아남는다'.

같이 번역 아카데미에서 번역을 배운 사람들 중에 번역가의 길로 들어선 사람이 몇 명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그중에서 활발하게 번역하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90퍼센트는 다른 길로 간다는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나도 여러 길을 중도에 그만뒀기 때문에 이 길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떠나서 다른 곳에서 승승장구하기를 빌고 내가 운좋게 지금까지 번역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내게 공백기가 처음은 아니다. 번역 일을 시작한 다음 해에도 긴 공백기가 있었다. 8개월 동안 계속 샘플 번역에서 떨어지면서 자신감도 떨어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괴로웠다. 알바 하나를 끝내고 뒷산 중턱의 공원 의자에 앉아 한숨과 눈물을 푹푹 발산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 앞이 캄캄했다. 그러다가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온라인으로 하는 새벽 좌선에 참여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한 시간 동안 염불도 하고 좌선도 하고 하루를 잘 보내보자는 구호도 외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걸 시작한 다음날 기적처럼, 에이전시에서 전화가 왔다. 옛날에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던 책의 역자가 아파서 그 일을 대신 맡아서 해 달라는 전화였다. 정말 어리둥절했지만 당연히 너무나도 행복했다. 그 이후로는 열심히 샘플을 열심히 써서 계속 일을 받을 수 있었는데 지난 몇 달 동안 책 번역과 영상 번역이 겹쳐서 너무 바빠지면서 샘플 번역 품질이 떨어졌는지 다시 공백기가 생겼다.

후회스러운 점이 많다. 돈을 벌겠다고 무턱대고 일을 받은 것이 후회스럽고, 번역을 위해 따로 노력하기보다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게 실력 향상의 지름길일 거라고 생각한 것이 후회스럽다. 더 성실하게 읽고 쓰지 않은 것도 반성한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 주 한 주 시간이 지날수록 이제 더 이상 젊지 않은 내 나이가 더 의식되고 마음이 급해지지만, 다른 번역가들이 노력한 것보다 더 많은 정성과 애정을 기울이겠다는 마음을 다지는 기회로 삼을 것이다. 좋은 소식을 다시 브런치에 쓸 날이 가까이 왔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읽고 쓰고 공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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