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한 보람

이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by 올리브

드디어 번역 일감을 받았다! 샘플 번역이 너무 어려워서 머리를 쥐어짰는데, 막상 일을 받고 보니 그러길 잘했다고 생각된다. 너무 어려운 문장이 많아서 차라리 떨어지는 게 낫겠다고 타일렀지만 당연히 마음이야 내가 받아서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사실 나는 번역을 시작하면서부터 주는 일감을 안 가리고 다 받았다. 기계 번역 검수도 열심히 했고 아주 저렴한 영상 번역도 했다. 또 샘플 번역 지원도 끊이지 않고 했다. 같이 번역 공부한 친구 중에 한 명이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그렇게 일을 계속하면 내 실력이 늘 거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일이 끊어지기 전까지도 일이 너무 많아서 잠을 제대로 못 자는 날이 많았고 낮에 머리가 멀쩡한 날이 거의 없었다. 이렇게 번 돈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얼마 전에 들어와서 적금 통장에 모조리 넣었다. 돈을 벌어서 저축할 수 있다니. 이것만도 기쁘다.

하지만 쉬지 않고 일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 일테면 우물이 말라서 더 이상 퍼올릴 수 없는 지경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어느새 내 문장이 메마르고 딱딱해져 버렸던가보다.

지난번에 브런치에 글을 쓸 때 다른 번역가가 쓴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책을 쓴 사람도 다양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었다. 좋은 책과 관련 도서를 읽고 우리나라 작가의 글을 꾸준히 읽는다고 했다. 나는 너무 바쁘면 그런 노력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평상시에는 나를 돌아보는 일기를 쓰고 감사한 일도 적는다. 하지만 바쁠 때는 그마저도 못하고 책도 일 다 끝나면 읽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운동하는 사람이 체력을 매일 키워야 하듯이 나처럼 글을 다루는 사람도 매일 내 문장 실력에 기름을 칠해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몇 가지 노력을 시작했다. 우선 절대 읽지 않던 한국 소설가의 작품을 읽고 있다. 오늘 오전에도 백수린 작가의 <눈부신 안부>를 읽었다. 어떤 번역가가 이 작가에 대해 '너무 문장이 아름답지 않아요?'라고 말한 걸 인터넷에서 보고 알게 된 작가다. 내가 한국 문학에서 많이 멀어져 있었던가보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그치만 그동안 읽은 다른 한글 작품들보다 훨씬 몰입도 되고 감성도 좋아서 기분 좋게 읽었고 후반에 가서는 감동해서 훌쩍훌쩍 울 때도 많았다.

또 잡지 필사도 하고 있다. 잡지는 트렌드에 맞는 글을 쓰기 때문에 필사하면 글이 좋아진다는 말에 시작한 게 한 1년 전인데 그동안 중단했다가 다시 잡지를 샀다. 인터넷에서 산 '우먼센스'는 가격도 저렴하고 사은품도 줘서 좋았다. 그 잡지를 펴서 노트 한 페이지씩 적는다.

우선 이 두 가지를 매일 하고 있고 문장이 좋다는 책도 더 읽어보고 영어 원서도 틈틈이 읽으려고 한다.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이니까 핸드폰에 가 있던 마음도 살짝 돌아오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아직도 좋은 문장이 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 글이 오류가 없고 논리적이라도 딱딱할 수 있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고 있다. 어떤 조사와 어떤 어휘에서 딱딱함이 나오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어떤 법칙으로 그 딱딱함을 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명문가의 문장에서 주워 온 어휘만 쓴다고 딱딱함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 것 같다. 하지만 나머지 요소는 아직 잘 모르겠다. 사실 영원히 몰라도 상관없다. 그냥 내 길을 가더라도 내 손끝에서 좋은 문장이 나올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비결이 계속 읽고 베껴쓰고, 또 생각도 하는 부단한 노력이라면, 그 노력을 계속하고 싶다. 아주 오랫동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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