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과 참여를 생각해 보게 하는 책, “아무튼, 데모”

'사기캐' 정보라 작가의 유쾌하고 지적인 데모 이야기

by 올리브

정보라 작가의 “아무튼, 데모”를 읽었다. 정보라 작가의 책은 중학생 아들이 빌려서 재밌게 읽었다고 해서 나도 따라 읽은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를 읽어봤다. 이 책에는 “아무튼, 데모”에 나오는 시위 현장이나 남편을 만난 이야기나 포항에서 사는 이야기 등이 단편적으로 섞여 있어서 “아무튼, 데모”를 읽으면서도 반가웠다.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는 각 단편의 제목이 ‘문어’, ‘개복치’ 같은 바다 생물로 되어 있고 그런 생물을 매개체로 약자에 대한 사랑을 전하는 내용이 펼쳐진다. 중학생에게 어필할 만큼 재미있는 상상력과 따뜻한 마음이 돋보이는 책이었지만 다소 은은하다는 점, 너무 따뜻하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 “아무튼, 데모”를 읽고 나서는 정보라 작가가 흔히 말하는 ‘사기캐’에 가까운 듯 정말 대단하게 보인다. 일단 한 일이 너무 많지 않은가? 대학 강사도 오래 했다고 하고 번역도 많이 했다고 하고 언어도 영어와 러시아어를 아주 잘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과학 소설도 잘 써서 부커상 후보도 됐다. 그런데 그 많은 일을 하면서 이렇게 시위 현장을 찾아간다. 한 군데도 아니고 수없이 많은 시위 현장을 찾아가서 서명을 받고 오체투지를 함께한다. 말이 쉽지, 더운 여름, 추운 겨울에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렸다가 일어나며 걷는 게 보통 일이 아닐 텐데 그런 걸 하고서도 부정적인 생각은 1도 안 하는 멘탈이 너무 대단해 보인다.


이 책에는 우리가 최근 몇 년 사이 보았던 시위 주제가 거의 다 나오는 것 같다. 출근 시간에 지하철에서 시위를 해서 열차가 정체되게 만든다는 뉴스로 많이 접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시위도 등장하고, 세월호 유가족과 이태권 참사 유가족들의 시위도 등장한다. 쌍용차 노조 문제도 있고, 음악 강사 부당 해고 문제도 어디선가 본 것 같다. 또 퀴어 축제도 함께하고 낙태죄 폐지 집회도 있었다. 홍콩의 민주화 운동가들이 한국에 왔을 때 저자도 함께 봉사했고 소성리 주민들의 사드 반대 집회도 자주 만난다. “아무튼, 데모”는 이 많은 집회를 시간 날 때마다, 상황이 될 때마다 참석한 얘기를 전혀 무겁지 않게 풀고 있다.


무겁지 않은 이유는 시위의 대의를 굳게 믿기 때문이고 그 안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을 믿기 때문일 것 같다. 분노에 휩싸여 에너지를 소비하기보다는 시위를 주도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심으로 할 수 있는 만큼 일하고 또 즐기는 것 같다. 사람들의 연대 의식만큼 우리한테 힘을 주는 것도 없으니까 말이다.


또 사회적인 기준에 맞춰서 살려고 하지 않는 점도 작가의 마음을 가볍게 유지해 주는 것 같다. 다양한 사회적 압박을 받았을지 안 받았을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언급이 없는 걸 보니, 그런 걸 궁금해하는 내가 부끄러워질 지경이다.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강사가 되고 싶어 데모에 참여하게 됐다는데, 그 순수한 마음이 존경스럽고 또 한편으로는 데모가 저자에게는 행복과 보람을 준다고 생각하니까 시위하는 사람을 볼 때 우리가 종종 느끼는 마음이 많이 씻기는 기분이다. 그러니까 약자의 아픔을 대변하며 싸우는 사람들을 볼 때 한편에서 느껴지는 죄책감이나 부채 의식을 벗겨 나도 할 수 있는 만큼 참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을 외면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명대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서명해 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사람들을 적대시하려는 건 아닐 것이다. 이름 하나라도 올려 힘을 보태주고 전반적인 인식이 온정적으로 흐르기를 바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조금 바꾸는 것만으로도 많은 변화가 생길 것 같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도 페이스북에 시위 현장 소식이 많이 담기던 사람이 있다. 주로 소성리 주민들의 시위 소식이 올라왔다. 소성리에 원불교 성지가 있어서 소성리 주민들의 시위 현장에 원불교 교인과 교무가 함께하는 걸로 알고 있다. 처음에는 나도 충격을 많이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정권이 바뀐 후에도 사드 배치를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고 다들 일상으로 돌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위를 오래 하면 아무래도 사는 게 너무 고달플 것이고 몸도 많이 상하지 않겠는가? 원불교 교무님들 중에도 세월호, 4대강, 사드 반대 등의 시위에 열심히 참여하다가 아프게 됐다는 분들이 있었다. 너무 화를 많이 내고 골머리를 심하게 앓다 보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몸이 상하고 마음을 다친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소성리 주민들은 즐겁게 쉬엄쉬엄 시위하고 있다고 하고 다른 시위대를 도와준다고 한다. 또 사드는 미국이 처음 유럽 세 곳에 설치하면서 러시아를 자극했고 그것이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사태로 이어지게 됐다는 설명까지 들으니 소성리 주민들의 마음이 보통 마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시위하는 분들의 소식을 상세히 보고 내 시간과 여력이 되는 한 도울 수 있는 건 같이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게 이 책을 읽은 후 얻은 소득이다.


그래서 어제 저녁에 광화문 시위 현장에 다녀와 봤다. 이번 계엄 사태 이후 처음에는 굳이 모여서 시위를 해야 하나 생각했다. 그런 범죄를 저지른 대통령을 법이 가만히 놔둘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나니까 굳이 모여야 하는 것 같았다. 국민 목소리를 알리는 방법이 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안 나서 못 가다가 어제 겨우, 그것도 잠시 다녀왔다. 그렇게 광장에 모인 덕에 오늘 같은 헌재 판결이 나온 것 같다.


앞으로도 어디든 물심양면으로 참여할 기회가 많이 있을 테니 길게 봐야할 것 같다. 또 데모하는 사람들에 관한 기사가 나오면 무슨 일인지 맥락은 잡을 수 있게 읽어보고 나름대로 판단해 보는 것도 좋겠다. 생각을 바꾸는 게 매우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은 제일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또 생각을 잘 바꿔야 그로 인한 영향력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정보라 작가의 책은 그런 면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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