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를 읽고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아 우리나라 전체를 깜짝 놀라게 한 한강 작가님의 《채식주의자》를 다시 읽었다. (스포일러 주의)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라는 점만으로도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제목과 소재가 채식주의자이지만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폭력의 본질에 대해, 더 나아가 인간과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 보는 지점에 있을 것 같다.
이 작품은 세 개의 단편 소설이 연작소설 형태를 이루고 있다.
1부 <채식주의자>에는 순전히 편의를 위해 영혜를 선택했다는 남편과 어느 날 개 잡는 꿈을 꾼 후부터 고기 먹기를 거부하고 남편 및 아버지와 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한 영혜의 이야기가 나온다. 남편은 냉장고의 모든 육식을 버리는 것은 물론 자기 밥상도 제대로 차려주지 않고 급기야 상사 부부 앞에서 망신을 주는 영혜를 참다못해 장인 장모에게 이런 변화를 이야기한다. 원래부터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이었던 아버지는 큰딸의 집들이를 맞아 만난 영혜에게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고 한다. 영혜는 거기에 저항하며 자살을 시도하다가 결국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특별한 게 없어서 영혜를 선택했다는 남편의 말은 혐오감을 부르지만, 또 부정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묘사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특별한 게 없어서 부인을 선택했듯 자신의 삶고 특별한 게 없다고 치부하며 삶에 대한 의무를 게을리한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부인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보이는데 영혜의 남편을 비롯한 일부 인간은 여성 위에, 혹은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며 남의 떡을 뺏어 먹을 때 더 행복하다고 느낀다. 서로 협력할 때 자신도 기분 좋고 남에게도 좋아 보이는데 왜 우리는 위계를 짓고 위로 올라가려고 할까? 이런 점에 늘 의문이 들었는데 우연히 읽은 《플라톤의 국가》가 그런 관점을 논의하고 있었다. 《플라톤의 국가》는 소크라테스가 종교 축제에 참가했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 폴레마르쿠스라는 사람의 집에 초대되어 그곳에서 여러 사람들과 ‘정의’에 대하여, 또 우리가 ‘정의로워야 하는가’에 대하여 논의하는 책이다. 전부 10권으로 되어 있는데, 앉은 자리에서 10권 분량의 길고 심오한 토론을 한다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정의가 무엇인가’라는 언뜻 감정을 배제한 문제만 논의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왜 정의롭게 살아야 하는가 논의한다는 점에서 감정 이입이 되는 책이었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정의로운 국가란 어떤 모습이고 우리는 정의롭게 살기 위해서 어떤 덕목을 갖춰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전에 1장에서는 소크라테스에게 불만을 표하는 트리시마코스가 다가와 “불의한 자는 대체로 행복한 반면 정의로운 자는 대체로 불행하고, 불의한 행위는 들키지만 않는다면 이익이 되지만 정의는 남에게만 좋을 뿐 자신에게는 손해가 된다”고 주장한다. 패배주의의 냄새가 짙게 나는 이런 발언은 사실 너무나 친숙하다. 세상에 치이고 깎여 고생을 좀 하다 보면 이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돼서 세상을 냉소하고 남보다 나아지기 위해 기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당연히 트리시마코스의 주장에 반박하지만, 안타깝게도 논의는 속 시원한 결론을 내지 않은 채 정의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내용으로 흘러간다.
지난 몇 달간 정치인들을 보면서 세상이 왜 이렇게 됐나 한탄했는데, 실상은 플라톤도 고민했던 문제였나보다. 불교에서는 ‘인과론’으로 이 문제를 설명한다. 좋은 일을 하면 복이 오고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는 이치를 믿고 선한 인과관계를 계속해서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규칙은 바보 같은 사람들에게나 해당한다고 생각하고 적당히 질러가고 남을 밟고 속이면서 살아야 잘 살 수 있다고 여기는 풍조도 분명히 있다. 그런 사람과 아닌 사람이 있다기보다는 그런 세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봐야 하는 것 같다. 플라톤이 이 책을 쓴 시기도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사회가 매우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트리시마코스의 관점도 그런 사회를 반영했을 것이다.
2부 <몽고반점>에서는 영혜의 형부가 주인공이다. 그는 영혜의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있다는 말을 들은 후부터 열병에 걸린 듯 예술혼에 불탄다. 영혜의 푸른 엉덩이에 꽃을 그리고 그 몸이 다른 몸과 뒤엉키는 영상을 찍고 싶다는 집착,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자기 몸과 뒤엉키는 영상을 찍고 싶다는 욕망에 빠진다. 하지만 결국 그 ‘꿈’은 이루어도 영상을 발견한 부인에게 이혼당하고 경력도 망가지고 영혜도 정신병원에 갇힌다.
이 사람의 마음속에는 말할 수 없는 슬픔이 있는 것 같다. 그 슬픔 때문에 가정에 충실할 수 없었고 억척스러운 부인이 가장의 역할을 대신하니 자신은 그 질병 같은 슬픔에 빠져 점점 자신을 외면했다. 사실 그 알 수 없는 슬픔을 어루만지고 표현하는 행위가 예술일 것이다. 또 순수하고 원초적인 에로스를 표현하는 것도 예술의 할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범죄가 되는 성욕을 차단하는 이성은 부족했다. 그의 희생자가 될 뻔했지만 도저히 못 하겠다고 물러난 후배 J를 보면서도 그의 이성은 돌아오지 않았고 그림을 그려주러 급한 연락을 받고 온 P라는 옛 인연은 그런 남자를 보며 욕망을 드러낸다(단체로 이성을 상실한 사람들인지...).
나무가 되고 싶은 영혜의 마음은 너무 순수하고 강렬해서 먹고 싶지 않고 죽고 싶다는 마음도 인정해 주고 싶어진다. 하지만 영혜는 그냥 고기를 안 먹는 정도가 아니라 그동안 저지른 자신과 타인의 잘못을 씻으려고 자신까지 망치고 있다. 꽃과 사람이 하나가 된 영상을 찍고 싶다는 형부의 예술혼도 존중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옳지 못한 성욕을 통제하지 못했고 자신이 꾸린 가정을 돌보지 않았다. 부인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았고 자잘하지만 치명적인 폭력을 매일 부인에게 저질렀다. 내면의 부름을 쫓아 나답게 사는 길은 비이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타인과 자신을 존중하는 이성과 그 안에서 내 길을 찾아나갈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3부 <나무 불꽃>에서는 영혜의 언니 인혜가 정신병원에 갇혀 먹기를 거부하는 영혜를 찾아간다. 인혜는 그나마 가장 공감이 갔다. 그녀는 자식을 때리는 파렴치한 아버지 밑에서 일찍 철들었고 보듬어주고 싶은 남자를 만나서 돈도 벌고 살림도 하고 자식도 키우는 삼중고를 겪은 ‘K 장녀’다. 그렇게 살다가 몸과 마음이 곯아서 부인과 질병까지 얻었는데 결국 남편과는 이혼했고 동생은 정신병원에 들어가서 갖가지 사고를 친다. 인혜의 피곤함은 너무 사실적이어서 그런지 유달리 친숙하게 느껴진다.
남편이 늘 그러듯 “도둑처럼 그녀를 안았을 때” 인혜가 밀어내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잠깐만 참아.”
작품은 다시 이어졌다.
“그때 그녀는 기억했다. 그 말을 그녀가 잠결에 무수히 들었다는 것을. 잠결에, 이 순간만 넘기면 얼마간은 괜찮으리란 생각을 견뎠다는 것을. 혼곤한 잠으로 고통을, 치욕마저 지우곤 했다는 것을. 그러고 난 아침식탁에서 무심코 젓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찌르고 싶어지거나, 찻주전자의 끓는 물을 머리에 붓고 싶어지곤 했다는 것을.”
잠깐씩 견디는 폭력이 우리 자신을 해친다. 그렇게 잠깐씩 참으면서 산 시간이 쌓여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고 말하는 시간이 왔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고도 말한다. 인혜가 전철을 기다리며 자기 삶이 얼마나 공허했는지 깨닫는 이 장면이 나는 가장 친절하고 희망적으로 느껴졌다. 인혜의 하혈은 폴립을 떼어내는 간단한 시술로 치료됐지만, 그동안 죽은 채 살아왔다고 느낀 마음은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을까?
적어도 인혜의 깨달음을 직시한 독자라면 앞으로 좀 더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주면서, 진짜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더 많이 만나는 용감한 삶을 살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든다. 나 역시 잠깐씩 서서 내가 혹시 살아있는 것처럼 살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한강 작가님은 누구보다 자기 길을 묵묵히 걸어오신 분이다. 이 책이 경기도교육청에서 유해 도서로 지정된 일도 있고 작가가 계속 광주 민주화운동, 제주 4.3사건 등을 책으로 냈기 때문에 탄압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노벨문학상이라는 쾌거를 이루었고 그래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큰 상을 받아야 인생이 검증받는 건 아니고 그런 결과를 바라고 사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겠지만 이렇게 나만의 길을 걷는 것은 의미 있다. 쉽게 포기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