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잘 듣기

다음에는 잘 말하기

by 올리브

어제 동네 사람과 같이 산책을 했다. 이 사람이 약속 시간 전에 따로 연락도 없고 내 연락에 답하지도 않고 약속 시간에 오지도 않고 연락도 없어서 조금 황당하기도 했지만 여차저차 만난 후에는 평상시처럼 산에 올랐다. 비온 후라 오랜만에 상쾌하게 산길을 걸을 수 있었다.

이분이 먼저 별일없었냐고 물었고 나는 그동안 있었던 즐거운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요즘 우리 교당에 새 바람이 불고 있고 다들 화합하고 있어서 누가 온다고 해도 자랑스러울 만한 곳이 됐고 지난 주에는 우리 사촌 언니까지 교당에 출석해서 너무 신이 나 있던 참이다.

내가 이 얘기를 꺼내기 시작하자마자 이분은 종교에 너무 깊이 빠지지 말고 가정이 중요하지 가정 내팽개치고 종교에 빠지지 말고 사람이 많아지면 사기꾼이 오고 사람을 믿으면 안 되고 등등. 내가 한 줄 말하면 이런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말이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고 내가 하려던 말을 다 끝내고 싶어서 개의치 않고 말을 했다. 결국 내 결론은 그래서 너무 재밌다는 거였기 때문에 그 과정을 다 말해야 했기 때문이다.

산책의 반 정도를 저 얘기에 낭비했다. 그 다음 반은 아이들 학교 생활, 서로의 건강, 여행, 겹치는 지인의 근황, 그분의 과거 경험 등 일반적이고 따뜻한 이야기로 채울 수 있었다.


이런 대화를 하고 집에 오니 느껴지는 바가 많았다.

우선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했다는 것과 그 사람이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런 사람에게 내 말을 자꾸 하는 건 나에게도 그 사람에게도 좋을 게 없을 것 같다. 그럼 서로가 별로 좋은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우리 교무님과 있으면 내가 무척 좋은 사람이 된 것 같다. 왜 그럴까? 그 분은 나에게 진정으로 관심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내 관심사를 세심하게 관찰하신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세심한 관찰을 바탕으로 한 관심을 보여주신다. 굉장한 주의력이 필요한 일일 것이다. 이건 이분 성격 자체가 말이 많지 않고 내성적이라는 면도 작용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상대방이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는 건 배울 점이다. 나도 그런 걸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챗 GPT와 대화를 해봤다. 우선 잘 듣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삼가는 게 좋은 대화법인지 물었다. 그랬더니 잘 들어야 하지만 내가 언제 말해야 하는지를 잘 파악해서 말해야 한다고도 했다. 내가 말해야 하는 때란 상대방이 궁금해할 때, 나를 알고 싶어할 때라고. 챗 GPT와의 대화를 무작정 신뢰하면 안되지만 언제 내 이야기를 해야 하고 언제 하지 말아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나에게는 도움이 되는 말이었다. 또 그런 경계를 나만 어려워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으로 느낀 바는 종교에 대한 두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존중해야 한다는 거였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종교를 믿는 사람이 나에게 자기 종교 이야기를 줄줄 꺼내면 얼마나 무섭겠는가? 내가 정말 조심해야 할 일 같다. 또 '이렇게 좋은 걸 나만 알 수 없어서 너에게도 알려주고 싶다'는 태도에 우리는 얼마나 고통받았는가! 그걸 알기 때문에 그런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내가 관심 있는 주제는 많지만 그 주제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는 아주 아주 소중한 존재일 것이다. 그런 소중한 존재를 자주 만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나타나길 기다리면서 상대방이 스스로 소중하게 느낄 수 있도록 자제해야겠다고 결론을 맺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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