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것 같지 않은데 왜...
두 사람이 아울러 말하지 말라는 건 원불교 계문 중 하나다. 원불교에도 십계명처럼 계문이 있는데 갯수는 30개. 초보자인 보통급 10개, 그 다음 단계인 특신급 10개, 상당한 단계인 법마상전급에 10개가 있고 위에 말한 계문은 특신급의 6번째 계문이다.
두 사람이 아울러 말하지 말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원불교 신자가 된 지 한 5년이 되도록 몰랐다가 한 교무님이 말씀해 주셔서 알게 됐다. 다른 사람이 말할 때 나까지 같이 끼어들어서 말하지 말라는 말이다. 한 마디로 상대방 말 끊지 말고 끝까지 들으라는 말이다.
솔직히 어려운 계문(연고 없이 술을 마시지 말라)도 많고 지키기 턱없이 쉬운 계문(연고 없이 담배를 피우지 말라)도 있지만, 이 계문 역시 아주 지키기 쉽다고 생각했다. 남이 말할 때 끊어먹고 내 말을 하는 건 좀 예의 없는 행동이니까 되도록 안 하는 것이 사회 생활 하기 좋지 않겠는가? 다만 나는 상대방이 할 말을 찾지 못해서 '음.... 그 뭐냐...'라고 할 때 그 사람이 할 만한 말을 찾아서 말하는 편이다. 적중률은 50% 정도 되는데 이렇게 말하는 게 좋을지 생각할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게 좋을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도 영 못 찾을 때는 좀 말해주는 게 좋을 것 같고 설사 다른 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이 생각을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는 내 나름의 이유도 있긴 하다. 어쨌든 이 정도의 어려움은 있지만 남이 말할 때 끼어들지 않는 건 그렇게 어려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교무님은 이 계문에 아주 중요한 내용이 있고 이것만 잘 지켜도 수행이 아주 높은 단계인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셨다.
우선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할 때 내가 끼어드는 것은 내 마음이 흩어져 있다는 뜻이다. 상대방의 말에 오롯이 함께하지 못하고 생각이 갈라지는 건 고쳐야 하는 습관이고 내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 설거지를 할 때는 설거지만, 청소기를 돌릴 때는 청소만 생각해야 한다. 이 세상 모든 것에 진리가 숨어 있고 그 진리가 발현된 것이 설거지와 청소기이기 때문에, 그것에 집중하지 않으면 설거지와 청소기가 섭섭해한다고. 말이야 맞는 말이긴 하다. 설거지를 두고도 우린 얼마나 많은 갈등을 일으키는가? 설거지 질서만 잘 잡혀도 그집안은 매우 평화로울 것이고 요리가 즐거울 것이고 집안 위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설거지가 잘 안 되면 가족 구성원들끼리 싸우고 평등함이 사라지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고 경시하는 마음도 자라난다.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집안일도 귀하게 여기고 열심히 해야 다른 일도 잘할 수 있다. 대화할 때도 마찬가지로 상대가 하는 말에 내가 끼어들면 두 사람 사이의 대화가 오롯이 마땅한 공경을 받지 못하므로 조심해야 하는 것 같다. 이렇게 그 대화를 존중할 때 모래알에도 숨어 있고 우주 전체에도 흐르는 진리에 노출될 수 있을 것이다.
교무님은 한 가지 더 이야기하셨다. 상대가 하는 말을 다 들은 후 내가 차례를 붙잡아 이야기할 때 상대가 참지 못하고 끼어들면 기꺼이 그 순서를 양보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겸손해질 때 아울러 말하지 않는 참뜻이 실현될 수 있는 것 같다.
흠. 의외로 깊은 진리가 숨어 있는 계문이라서 다소 놀라웠고 흥미로웠고 잘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끼어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고 나니 말을 아예 안 하는 게 안전하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사람이 할 말 안 할 말 가려야 하는 건, 말을 안 하고 싶을 때도 어느 정도 적당히 하는 게 좋다는 말일까? 사람에 따라서는 굳이 말을 꺼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을 텐데 너무 말을 안 하고 침묵만 지키면 대체 내 말을 듣는 건지 안 듣는 건지, 나를 좋게 보는 건지 나쁘게 보는 건지 모르겠어서 기분이 안 좋아질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말을 할 차례니까 떠오르지 않는 말이라도 억지로 끄집어 내서 내뱉으면 말의 특성상 반드시 부작용이 온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하는 타이밍에 맞게 하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은데 그런 기술을 기르기는 쉽지 않다는 게 어제 설교를 들은 후 오늘까지 내가 내린 결론이다.
특히 법회가 끝나고 사람들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면 이야기를 듣고 리액션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즐거운데 가끔 'ㅇㅇ 씨는 너무 말이 없어. 사람이 참 밋밋해.' 이런 말을 듣는다. 그리고 교무님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그 사람은 참 재치가 있어요.'라고 칭찬하는 말도 하시는데, 그러면 나도 모르게 나도 그런 칭찬을 듣고 싶다는 마음이 들고 아무 말이라도 해서 나에 대한 인상도 개선하고 분위기를 띄우는 주인공이 되고 싶...다... 흠. 써놓고 보니까 지나치게 솔직하고 사치스러운 감상 같기도 한데. 암튼 그럴 때도 있다. 그래도 적당히 내 이야기를 해서 사람들의 피드백으로 풍요로워지는 경험을 하고 싶다. 공부를 열심히 하다 보면 점차 그런 경지에 이르지 않을까 생각된다.
계문 30개 중 말에 관련한 계문이 많다. 그만큼 말이 화와 복을 부르나보다.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말은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듯이 들었지만 그러면서도 그깟 말이 뭐가 중요하느냐는 생각도 많이 했는데 이제는 말의 중요성을 많이 깨닫고 있다. 나쁜 말을 들었을 때 속상하고 나쁜 말을 했을 때도 속이 찜찜하고 과도한 말을 했을 때도 후회스럽다.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말하는 나의 바탕을 잘 닦아야 한다.
그래서 결론은 '마음공부 잘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