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NPC 구역
4. NPC 구역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사람들 사이에 오래 서 있다 보면, 체력보다 먼저 닳는 게 있다.
나는 그걸 영혼의 배터리라고 부른다.
보통 오후 다섯 시쯤이면 5% 아래로 떨어진다.
이때는 말을 아껴야 한다.
웃긴 웃는데, 눈은 웃지 않는다.
가장 배터리가 빨리 소모되는 곳은 피팅룸이다.
“이거랑 저거만 볼게요.”
그 말은 언제나 예외 없이 번식한다.
옷걸이를 나르다 보면,
내가 매장에서 일하는 건지 체력훈련을 하는 건지 헷갈린다.
열 벌 넘게 입어보고
아무 말 없이 사라지는 손님도 있다.
남겨진 옷더미 앞에 서면 잠시 멍해진다.
아, 방금 한 시간 동안 봉사활동을 했구나.
돈 받고 봉사라니 참... 묘한 일이다.
예전에는 그냥 피곤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내가 웃고 있을 때,
이 웃음은 정말 나에게서 나오는 걸까.
가만히 느껴보니 그렇지 않았다.
그 웃음은 기쁨도 친절도 아니었다.
이 자리에 서 있으면 자동으로 켜지는 표정에 가까웠다.
사람을 상대하면 작동하는 기능 같은 것.
손님들은 나를 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옷을 고르며
자기 안에서 시끄럽게 울리던 생각들을 잠시 내려놓고 싶었던 것 같다.
망설임과 불안을
옷에게 맡기고, 거울에게 맡기고,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 서 있는 나에게 잠시 맡긴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다.
처음부터 관계를 맺으러 온 게 아니었으니까.
이곳에서 내가 한 일은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라기보다
타인의 혼란을 잠시 받아주는 역할에 가까웠다.
그들이 결정을 미루는 동안
나는 그 옆에 조용히 서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하루가 끝나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닳는다.
나는 오늘도 옷을 팔았지만,
사실은 사람들의 망설임을 한참 동안 들고 있었다는 걸
집에 돌아와서야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