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피곤합니다

어쩌다 피곤한 인간 #15

by 호우






15화. 약간 피곤합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피곤하게 만드는지
오래 생각해 왔다.

일 때문은 아니다.
체력도 아니다.

곰곰이 들여다보면,
사람들 사이에 서 있다 돌아온 날이면
늘 내가 먼저 닳아 있었다.

나는 오래도록 웃어왔다.
상대가 편해지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말을 잘 들어줬고,
이해하려 애썼고,
불편해도 “그럴 수도 있지”라며 넘겼다.

그렇게 지내는 것이
성숙한 어른의 태도라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상하게도 같은 장면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가볍게 건넨 부탁이
어느새 당연한 일이 되어 있었고,
한 번 들어준 말은
다음에도 당연히 들어줄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친절은 종종 오해를 낳고,
호의는 쉽게 의무가 되고,
배려는 당연한 권리가 되어 돌아온다는 걸.

내 주변의 사람들 중 일부는
나를 한 사람으로 대하기보다
조용히 받아주고, 대신해 주고, 들어주는
소모 가능한 존재처럼 대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나의 피로는 예민함이 아니다.
경계가 늦게 생긴 사람의 피로다.

너무 오래 웃어줬고,
너무 오래 들어줬고,
너무 오랫동안 이해해주려 했고,
너무 늦게 “그만”이라고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상처받은 사람”의 위치가 아니라
자기 패턴을 인식한 사람의 위치에 와 있다.

이건 후회라기보다
자각에 가깝다.

이제는 안다.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건
사람 자체가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 지켜지지 않는 거리감이라는 것을.

그래서 요즘 나는
조금 덜 웃고,
조금 덜 설명하고,
조금 더 조용해졌다.

그 덕분에
여전히 약간 피곤하지만,

예전처럼
무너지지는 않는다.

이상하게도
조금은 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