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어른이 되고 있는 어른에게
나의 첫 모습이
외향적이고
계획적이고
똑 부러진다는 사실을 확인받고는 한편으로 마음이 놓였다.
내가 제법 어른스럽게 해내고 있구나.
하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 드러난 일부 밑 저 심해의 끝까지 닿을 것 같은, 내가 그동안 켜켜이 쌓아온 내 내면은 안도하는 나를 보란 듯이 비웃으며 비어있던 마음에 못난 순간들을 모아 하이라이트처럼 쏘아대고 있었다.
'네 널브러지고 꼬인 속을 들여다봐. 네가 얼마나 볼품없는 사람인지는 네가 제일 잘 알잖아.'
너무 자주 들어 익숙한 목소리로 전해오는 메시지는 귓가에만 맴돌다 이내 내 머리 전체를 울리고는 결국 오래간만의 칭찬을 허겁지겁 삼키고 있던 나를 체하게 만들었다.
스스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던 새 나라의 어린이는 모종의 이유로 일찍 잘 수도 없고 울리는 알람에 겨우 일어나는 사람이 되었고, 자신의 일을 너무 사랑해서 멋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상상 속 커리어우먼은 상상 속에 그대로 남아서 현실에는 신나는 박자의 노래를 귀에 때려 부으며 '억텐(억지텐션)'을 올려야만 출근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있었다. 나이를 이렇게나 먹고도 누군가의 한 마디에 한 순간에 속상해지기도 하고, 또 어떨 땐 분명 후회할걸 알면서도 모진 말을 내뱉기도 한다. 그런 날은 퇴근길 내내 그 말을 곱씹어 채근하며 집으로 향하는 거다. 한 손에는 신전떡볶이, 한 손에는 맥주 한 캔을 들고.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어른이라 부르기로 했다던데,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꾸역꾸역 거리고 있는 나는 왜 어른으로 불리고 있는 걸까. 나이에 맞춰 자라지 못한 아이는 가혹하고 냉정한 어른들의 세계에서 '척'만 늘었다. 잘하는 척, 괜찮은 척, 다 아는 척. 치밀한 거짓말로 그럴듯한 모습을 정교하게 꾸며내는 것은 많은 힘을 필요로 한다. 제 때에 자라지 못해 받는 내 죗값이다.
하지만 결국 어른은 책임지는 사람이렷다. 어른이 되기를 미룬 대가가 이것이라면, 이 또한 기꺼이 책임지는 것이 어른이겠지.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오랫동안 돌보지 않아 멀어진 관계처럼 멀리 떨어진 그 간극을 울며불며 부지런히 메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일에 큰 공헌을 한 것은 바로 '볼품없지만 애쓰는 나'를 인정하기였다. 어차피 세상 사람들은 내 깊숙이 숨겨둔 모습까지 궁금하지도 않을 텐데, 그걸 다 끌어안고 매일 톺아보며 스스로 되뇔 필요는 없었다. 비록 백조의 발장구처럼 정신없이 바쁠지라도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어도 그리 티 나지 않을 정도로 해내고 있는 나를 기특히 여겨 다시 또 하루 살게 하는 것. 그것이 나의 책임이었다.
그리고 숨을 쉬기 위해 고개를 뻗어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도도한 자태에 다리는 부단한 또 다른 백조와 눈이 마주친다.
'너도 참 고생이 많다. 힘내!'
소리 나지 않게 입으로만 거품 거렸는데도 무슨 말하는지 다 안다는 듯, 눈짓으로 인사를 건네며 헤엄쳐가는 그. 사실 우리 모두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각자 저 나름의 시름을 주렁주렁 달고도 싫은 티 하나 내지 않으며 어른스럽게 살아가는 아이가 아닐까. 그렇다면 내 앞의 이 매 순간을 애처롭게 이겨내고 있는 존재에게 시리게 날카로운 어른의 잣대를 대기보다는, 자라나는 것이 자신의 할 일 그 자체인 아이에게 건넬 투박해도 따뜻한 애정과 응원을 꺼내 보이는 것이 정말 멋진 어른의 마음이지 않을까. 아마 그 아이는 아주 작은 사랑으로도, 온 세상을 가진 기분일지도 모른다. 어른들에게 그런 것은 정말 귀한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