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이자 Prologue

‘별이 빛나는 밤까지’에서 ‘또다시 해가 뜨는 아침까지’로

by 다겸

✍Prologue.

지난 6월의 어느 주말은 2월부터 5월까지 4개월 간 이어진 글쓰기 정기모임의 MT날이었습니다. 영광스럽게도 호스트로 참여할 수 있었고, 너무나 감사하게 좋은 멤버들을 만났습니다. 많은 마음을 나눴고, 또 마음 모아 이야기 나눴던 여정의 마무리이자 앞으로는 서로 뜻 맞춰 나갈 새로운 여정의 시작인 그날을 기억하며 쓴 글입니다. 참고로 중간에 나오는 '별이 빛나는 밤까지'는 마지막 모임의 타이틀이었고, 중간중간에 나오는 볼드체는 글쓰기 모임 멤버들이 말해 준 '가장 기억하고 싶은 순간'에 대한 표현을 따왔습니다.




6월, 이제 막 봄을 넘어와 여름을 향해가고 있는 시점이다. 계속 진행되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기온은 부쩍 올랐지만, 아직은 한여름은 아니라 그런지 부신 햇살에, 부는 바람이 기분 좋게 즐길만한 정도다. ‘지금을 즐겨야 해!’ 빛과 그림자가 뗄 수 없는 것처럼 나의 마음에서는 행복이 자라나면 꼭 자란 만큼의 크기로 불안과 걱정이 드리운다. 더 크고 굳세게 자라면 다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법은 없었다. 그냥 꼭 그만큼의 크기인 것에 감사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다잡는 주문인지, 기도인지 모르지만, 이 말을 여러 번 반복해서 왰다. ‘지금을 즐겨야 해!’ 그림자가 없는 경우는 하늘이 어둠으로 가득 찼을 때나 이미 그늘 안에 있을 때뿐이었다. 간만에 맘에 드는 햇살 아래, 드리운 그림자를 보고 있느라 행복을 즐길 수 없는 것은 참으로 미련한 일이었다. 그래서 이 최적의 하늘과, 기온과, 습도, 그리고 다가올 토요일을 생각하며 뛰는 심장의 박자와 피부의 열감까지도 한껏 즐겼다.


그래서일까, 금요일의 바람에 살짝 묻어나는 물기에는 이번 여름 동안 찜기에 푹푹 쪄내진 왕만두가 될 걱정보다도 바다의 기대가 먼저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우리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미래를 기약했다. 미래에 대한 약속을 한다는 것은 웬만한 믿음이 아니고서야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할 일이 넘쳐나고 손쉽게 재미를 찾을 방법도 많은데 무언가를 우선순위에 두기 위해 여유를 빼놓는다는 것은 충분한 애정이 필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자연스럽게 함께 보낼 시간을 마련하고, 같은 마음으로 손꼽아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내일을 위해 깔끔히 먼지를 털어낸 곳에 바다의 향을 채웠다. 내일을 위한 기대도 가득 채웠다.


다음 날, 하늘은 살짝 흐린 듯도 했지만 걱정했던 비는 오지 않았다. 잔뜩 난 신은, 그마저도 너무 덥지 않을 완벽한 오늘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했다. 하루 먼저 시작된 연휴에 거리에는 많은 사람과 차가 있었다. 만나는 장소로 향하는 길을 메운 북적임도 오늘만큼은 짜증이 나지 않았다. 막 화려하고 요란하지 않아도 깔끔한 포장지로 싸 둔 선물을 눈앞에 두고, 이제 곧 열어볼 설렘에 잔뜩 들떠 두근대고 있는 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 지금이 꼭 그랬다. 언젠가 어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20살이 넘었다는 이유로 이미 다 자란 취급을 받지만, 사실은 본인을 정말 어른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이가 몇이나 될까. 때로는 버거울 만큼 커다란 책임을 떠안고도 끝끝내 해내고야 마는, 누가 봐도 어른스러운 나도 나지만, 때로는 아주 유치한, 누가 봐도 별것 아닌 일에도 꺄르르 웃음이 터지는 나도 나다. 이기거나 지거나 하는 승부가 좀처럼 나지 않는 지난한 일상의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갑작스럽게 심장을 파고드는 살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나는 늘 내 무게보다도 더 무거운 갑옷을 두르고 있다. 이를 벗어두고도 그냥 ‘상처받을’ 걱정 없이 ‘살아 있어’도 되는 순간은 내가 ‘아이’로 있어도 되는 순간이다.


함께 차 안에서 떠들면서도, 카트에 담을 물건들을 고르면서도, 바다에서 수십 장의 사진을 찍으면서도, 작위적인 가짜 웃음이 아니라 진짜 웃음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평소에 출근을 위해서만 옷을 고르다가 오늘을 위해 입어보지 않았던 청바지, 흰 상의를 꺼내 입고, 굳이 애쓰지 않아도 오지 않는 잠 덕분에 밤보다 아침에 더 가까운 시간까지 단단한 갑옷 속에 숨겨둔 보따리 속의 마음을 살살 풀어놓는다. 누군가는 잠시 떨어져 있는 틈에도 만날 날을 생각하며 정성껏 선물을 챙겼고, 누군가는 또 누군가의 수고를 대신해 불 앞을 지켰다. 자연스럽게 새어 나오는 묘하게 다른 음률이, 지난 어느 날 이불속으로 피해 들어야 했던 시끄러운 오합지졸 밴드의 불협화음과는 다르게, 달라서 더 아름답고 영원하지 않아서 더욱 소중한 화음을 만들어 냈다. 차마 포기할 용기가 나지 않아 넘을 수밖에 없었던 벽을 무사히 넘어와 결국 ‘여기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된 것만큼 인생이라는 일기장에 적어놓고 기억하고 싶은, 두고두고 꺼내 보아도 미소 지어질 행복한 순간을 이뤘다. 우리는 마지막 정기모임을 끝낸 이후에도 각각의 나름의 도전과 사랑으로 우리의 모임을 이어가고 있었다. ‘별이 빛나는 밤까지’로 마무리를 했던 우리가, ‘또다시 해가 뜨는 아침까지’로 시작하는 날이었다.


단 한순간도 억지로 주문을 외는 순간은 없었다. 발밑으로 늘어진 그림자를 볼 새도 없이 서로의 눈을 맞추며 시간을 나눴다. 조심스럽게 포장지를 벗겨낸 곳에는 생각보다도 더 멋진, 아니 나의 부족한 상상력으로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기쁨과 감동이 있었다. 이날을 위해 채웠던 바다향 기대는 오롯이 행복으로 바뀌었다. 아, 이제 잠시간은 전쟁통 같은 나날들 속에서도 진짜 웃음을 지어 보일 수 있겠지. 무거운 갑옷을 등에이고도 사뿐히 날아다닐 수 있겠지. 닳았던 마음에 흐뭇함을 가득 채워서 집으로 향한다.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한 발걸음에 아쉬움은 남았어도, 미련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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