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간 공허

그 누구의 손도 타지 않아 그대로인

by 다겸

'삑, 삑, 삑, 삑, 띠리링-'


도어록의 전자음에 맞춰 문이 열리면 두고 간 공허가 날 맞이한다. 바쁨에 가득 차 부랴부랴 나가느라 정돈하지 못했던 옷가지나 미용도구들이 그대로 널려있었다. 좀 더 부지런했으면 좋았잖아, 과거의 나야. 나지막하게 던진 핀잔을 듣는 것은 지금의 나다. 오늘을 위해 몇 번을 다시 골랐던 옷을 갖춰 입고 설레는 마음으로 문을 나섰다. 가는 길에 본 하늘도 완벽했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시끌시끌 수다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거웠는데, 돌아와 있는 내 방은 그 누구의 손도 타지 않아 그대로였는데도 왠지 모르게 낯설다.


분명 방금 전까지는 가득 차있었던 것 같은데. 작은 구멍 사이로 공기가 빠져 주그러든 풍선 같은 마음으로 침대에 누우면 열 평 남짓한 이곳이 크다면 얼마나 크다고, 온 세상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진다.


'오늘 밤은 길겠군.'


이런 밤이면 이상하게 몸은 피곤한데 잠은 안 온다. 깨끗이 씻어낸 피부에 자꾸만 닿는 허전함이 싫어서 유튜브를 켜 아무 사람소리가 나는 영상을 틀어본다. 어쩌면 서너 번은 이미 봤을지도 모르는 영상이지만, 어차피 내용이 중요한 것은 아니니 상관없다.


귀를 메운 소리에도 구멍 난 마음은 메워지지가 않아, 눈을 감고 철썩철썩-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를 센다. 부서지는 파도가루가 나인 것만 같아서 미웠다가 또 안쓰러웠다가. 그냥 또 바다는 원래 그런 거니까 가만 두고 보려고 애써본다.


철썩, 처얼썩

파도 소리에 위로받을 누군가를 떠올리며


Epilogue.

요즘 가장 많이 드는 감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나는 공허를 골랐었다. 나름 바쁘고 성실하게 사는 것 같은데 그러다 보니 갑작스럽게 공허를 마주할 때면 빈번하게 당황스럽다. '그 감정을 느꼈던 하루 중 장면 하나를 떠올려 볼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맞춰 문득 공허를 마주했던 순간을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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