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물로 네 자릴 씻어낸 곳에서
�오늘의 BGM : DAY6(Even of Day) - 나 홀로 집에
번쩍. 알람 소리 없이 눈을 떴다. AM10:10. 아침인지 오전인지 애매한 시간. 그렇다 해도 굳이 서둘러 이불을 박차고 일어날 필요는 없었다. 일어나기로 정해진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대로 누워 한껏 뭉그적거리다 공허한 배를 채우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떡볶이 시킬까?'
휴대전화를 들고 맵기로 유명한 가게의 메뉴판을 들여다본다. 오랜만이었다. 한동안은 매운 것을 못 먹는 누군가 때문에 메뉴를 고를 때에도 쉬운 법이 없었다. 한국에서 맵지 않은 요리를 고르고자 한다면 요모조모 따져야 하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주먹밥도 먹을까?'
고민해야 하는 것은 다만 추가 메뉴를 더 시켜도 되는지 아닌지였다. 하지만 고민이 머무는 시간은 손가락이 움직이는 시간을 따라오지 못했다. 손은 이미 자연스레 결제를 마친 뒤였다.
낯선 손님을 기다리며 커튼을 쳐서 방 안을 채우고 있던 어둠을 걷어냈다. 요 며칠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던 태양이 오랜만에 존재감을 뽐내며 빛을 짜르르 쏟아내고 있었다. 집에 있기에 아주 좋은 날씨였다. 세탁기를 돌려 막 빨아내 섬유유연제 향이 풍기는 옷들을 꺼내 갤 준비를 하고, 누군가로부터 선물 받은 빔프로젝터를 켜서 그동안 미뤄뒀던 영화를 틀었다. 바닥까지 들어찬 햇살과 온전히 나를 위한 이 시간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충만감' 이런 느낌을 말로 표현한다면 딱 이걸 거야. 이렇게 사소한 일상에서도 쉽게 충만함을 느끼는 나는 왜 나를 사랑한다던 그와 함께하면서 그토록 마음에 갈증이 났을까. 아무리 부어도 부어도 차지 않는 항아리처럼.
그때 나는 내가 너무 큰 항아리를 안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편이 마음이 편하니까. 내 항아리가 문제라면 그의 사랑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도 되었던 것이니까.
그가 떠난 후, 내 작고 작은 항아리를 눈물로 한참 씻어내고야 깨달았다. 그는 나의 마음의 깊이나 모양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공동 현관에서 호출이 왔습니다.'
월패드의 알림음은 길어질 뻔한 넋두리를 적절한 타이밍에 잘라냈다. 아, 행복해질 시간이 됐다. 다 큰 어른이 입기에는 좀 유치해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목이 늘어난 파자마를 그대로 입은 채 현관문으로 향한다. 어떡하지, 오늘이 너무 재밌을 것 같다. 1분 1초가 아깝다. 하고 싶은 거 다 해야지. 내가 눈물로 네 자릴 씻어낸 이 집에서 나 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