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슬픔을 듣지 못하는 나만의 방법
'감정 호텔' : 한남동에 있는 북카페 블루도어북스에서 발견한 이 책은 여러 감정이 마음이란 호텔에 머물다가는 모습을 포근한 색감으로 표현한 책이었다.
슬픔이 찾아오면 조용히 기다려 줘야 해요.
슬픔은 목소리가 아주 작거든요.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슬픔이 하는 말이 잘 들리지 않아요.
그러면 슬픔은 쉬 떠나지 못하고 오래 머물러 있어요.
- 리디아 브란코비치, <감정 호텔>
그중 가장 와닿았던 부분은 슬픔이 머물다가는 장면이었는데, 그 페이지와 함께 짧게 적어둔 코멘트는 다음과 같다.
'내 귀는 너무 오래 듣지 않아서 멀어버렸나. 떠나지 못하고 머무는 슬픔 때문에 늘 쉽게 젖고 마는 나.'
슬픔은 나에게는 늘 잔잔히 깔려있는 감정 같다. 배수구의 성능이 썩 좋지 않아서인지 바닥엔 항상 얼마간의 슬픔이 남아 습습하고 쿰쿰한 마음속에서 미처 다 날아가 버리지도 못하고 그냥 그대로 머문다.
그래서 슬픔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잘 모른다. 그저 슬픔이 눈물샘으로 튀어나오지 않게 잘 어르고 달래는 방법만 있을 뿐이다.
성능이 좋진 않아도 그래도 배수구는 배수구니까, 뚫려있는 틈으로 슬픔이 어느 정도 빠져나갈 수 있을 때까지 한숨을 잔다. 끝끝내 배출되지 못하고 미미하게 남아있는 슬픔은 부신 햇살에 말려보기도 하고,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의 수다나 달콤상콤한 디저트가 불러오는 선한 바람에 날려보기도 한다. 서걱서걱 글을 써내며 종이에 덜어내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다른 형태로 삐죽 새어 나왔을 감정들이 펜 끝을 통하면 읽힐 수 있는 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글은 누구를 해하지 않으면서, 나에겐 실마리를 주기도 한다. 그 때문에 나의 일기장은 어느 누구에게도 하지 못할 말들을 모두 쏟아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또 한순간, 슬픔이 가득 차올라 그 어떤 손도 쓸 수 없을 땐, 그저 목놓아 운다. 나에겐 그리 드문 일도 아니라 오히려 '또 그 순간이 왔구나'하고 와앙 쏟아내 버리곤 하는데, 그러고 나면 오히려 시원하다. 하지만 마음이 자연스레 흘러넘치지 못하도록 무겁게 꽉 막혀 있을 땐, 잔뜩 울 수 있는 영화를 일부러 찾아보기도 한다. (나는 '어바웃타임'을 주로 보고, 그때그때 추천을 받기도 한다.)
'빠져나온다'라는 것은 어딘가 끝이 있다는 것이겠지.
묵묵히 걷고 또 걷다 보면 그 끝을 마주할 수 있을 테니
필요한 것은 멈추지 않을 튼튼한 두 다리와 시간뿐일 것이다.
도망가지 말고, 외면하지 않고
언젠가 빠져나오리라는 그 사실만을 믿고
그저 묵묵히 슬퍼하는 것.
그것이 슬픔에서 빠져나오는
나만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