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눈에 보였던 순간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

by 다겸

우리 아빠는 강아지를 싫어하신다. 정확하게 말하면 싫어하셨다. 그런 아빠는 라온이를 만나고부터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애견인, 아니 愛'라온'人이 되셨다. (우리 집에서는 라온이를 강아지라고 부르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한시도 멈추지 않고 온 집을 쓸고 닦으며 바삐 움직이시는 할머니 덕에 먼지라면 한 톨도 용납지 않으셨던 깔끔쟁이 아빠가 라온이 털을 온몸에 치렁치렁 붙이시고도 라온이에게 얼굴을 부비시고 계속 쓰다듬으시는 모습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생경하다. 밤에 라온이가 아빠 옆에서 안 잘 때, 아빠의 얼굴에 어린아이처럼 단단히 삐진 기색을 역력히 비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사랑은 이렇게도 사람을 변하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라온이의 순진무구한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빠를 뺏긴 것 같은 서운함이 들다가도,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나보다 네가 더 낫다’고 금방 인정할 수밖에 없으니 내가 보여드릴 수 있는 사랑은 가끔 뵐 때마다 술친구 되어드리기! 휴, 라온이가 술을 못 마셔서 다행이다.


그래서 본가에 가는 날은 꼭 한 밤을 자고 온다. 그날 밤은 아빠가 유일하게 엄마의 잔소리를 피해 술을 마실 수 있는 날이니까. 술을 마시고 잠에 들어도 신기하게 일찍 잠에서 깬다. 달그락달그락. 내가 내지 않으면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기껏해야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가끔 우웅-나는 내 집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부엌의 소리가 난다. 엄마다. 엄마는 언제부턴가 아침밥을 드시지 않는다. 그러시면서도 내가 머무는 날 아침이면 항상 이것저것 꺼내 상을 차려주신다. 오늘도 이 손님 같은 가족을 위해 본인은 드시지도 않을 식사를 준비하러 부지런히 일어나셨겠지. 방문을 열고 나서 보이는 뒷모습을 달려가서 꼭 끌어안는다.


"털 묻어."

"묻어도 돼."


지난밤, 아빠가 라온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엄마의 어깨에 얼굴을 부벼본다. 그러다 갖은 반찬과 뽀얀 쌀밥이 소담하게 놓인 식탁 앞에 앉아 밥을 먹는다. 그 오랜만에 맛보는 따뜻함을 입에 가득 넣고 한참 즐기고 있을 때쯤 어디서 찾아 꺼내신 건진 모르겠지만 내가 오늘 입고 갈 옷을 벽 한쪽에 걸고 돌돌이를 돌돌 돌리는 엄마를 발견한다.


"검은 옷 입지 말랬지."


입으로는 내 탓을 하시면서도 손은 계속 바쁘다. 이게 엄마의 사랑이다.


우리는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다. 사랑은 한없이 줘도 모자라고, 어쩌면 나의 모습까지도 변하게 만든다. 이 보이지도 않는 게 뭐라고 우리는 사랑에 매달려 살고 있을까. 그건 아마 이 사랑이 눈에 보이는 무엇이 되어 나에게 다가올 때, 그때의 온기가 이 시린 겨울을 또 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지쳤을 때 돌아올 집이 있어서 다행이야. 어디로 고개를 돌려도 사랑을 볼 수 있으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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