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신변잡기

외등

-누구를 기다리느라 밝혀 두었나요

by 백수아줌마


어두운 밤, 시골길을 차로 지나다 보면, 산 중턱 외딴집 또는 논밭을 두른 마을 어귀에 드문드문 외등이 있다. 노란 불빛이 껌껌한 밤중에도 “여기 사람 사는 집이 있소.”하고 알린다. 미처 귀가하지 못한 아버지를 기다리느라 켜놓았을까? 아니면 저 집 막둥이 뒷간 갈 적에 어둡지 말라고 켜놓았을까? 차는 전조등을 켜고 아스팔트를 달리지만, 내 마음은 마을에 이르는 신작로를 따라간다.


예닐곱 집 모여 있는 곳을 지나 마을에서 가장 후미진 곳에 자리한 집에 다다른다. 칠이 벗겨져 군데군데 녹이 슨 붉은 대문을 시멘트 기둥이 양쪽에서 붙잡는다. 한 편엔 문패가 붙어 있고, 다른 편 위엔 외등이 처량하게 고개 숙이고 있다. 반쯤 열린 대문으로 슬며시 집 안으로 들어간다. 눈을 붙이고 있던 개가 일어나 짖는다. “컹컹” 창호문이 덜컹 열린다. 머리가 허옇게 센 노파가 얼굴을 내밀고 “영순 아비냐?”하며 마당을 살핀다. 사람 형상을 찾을 수 없는데 개만 짖자, “흰둥이가 쥐새끼를 봤구먼. 그만 짖어라. 애기 깬다.”하고는 문을 닫는다. 짖기를 그친 개가 개집에 들어간다.


댓돌에 놓인 신발을 세어 본다. 털이 반쯤 빠진, 낡은 고무신 한 쌍과 네다섯 살쯤 되는 아기 신발 한 쌍이 전부다. 외등 빛에 의지하여 집을 찬찬히 살펴본다. 지붕만 개량한 방 세 칸 초가다. 부엌 한 칸, 부엌 옆으로 큰 방 한 칸, 그 옆으로 작은 방 한 칸. 시멘트로 지어진 창고가 초가와 기역 자를 이루었다. 창고 옆에 신식으로 지은 화장실도 한 칸 보인다. 창고 앞에 커다란 장화 한 켤레, 그 옆으로 삽이며 호미 등이 널브러져 있다. 마당 가운데에는 플라스틱 목마 하나가 덩그러니 앉아 밤을 새운다. 화장실과 대문 사이에 감나무에는 까치밥으로 남은 홍시 서너 개가 꼭대기에 매달려 있다. 담벼락으로 대충 치워놓은 감잎 더미에서 곰팡내가 훅 풍긴다.


개가 또 짖지 않도록 숨죽이고 개집을 지난다. 부엌을 끼고돌아 집 뒤편으로 간다. 장독대에 옹기들이 저마다 담은 장의 냄새를 머금고 숨죽인다. 뒤편 산에서 스산한 바람이 분다. 알맹이를 잃어버린 밤송이가 벌어진 입을 다물지 않고 바람에 이리저리 뒹군다. 발로 툭툭 치워가며 산으로 난 오솔길을 올라간다. 초가의 불빛이 겨우 닿는 곳에 동그마니 앉은 무덤이 하나 있다. 무덤가에 묘비도 없이 시든 국화 몇 송이만 남았다. ‘읍’ 외마디 내뱉는다.


서러운 가슴 부여잡고 차 안으로 이내 돌아온다. 젊은 아낙은 어찌하여 아기 두고 갔을까. 영순 아비는 읍내 술집에서 잠이 들었을까. 외등은 여전히 주인을 기다리고, 차는 시골길을 지나 가로등이 늘어선 고속도로를 향한다. 소실점이 사라진 어둠에 전조등이 뿌옇게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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