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단 쓰자

아무도 몰랐다

-홀로 간 넋을 위로한다.(단편 소설)

by 백수아줌마

콘크리트를 뚫는 못은 벽에 박히면 얼마만큼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벽돌 하나를 끈에 묶어 못에 걸어본다. 견딘다. 하나 더 묶어 못에 걸어본다. 이런 식으로 10개를 묶어 걸어 보아도 끄떡없다. K는 이미 묶어 본 것을 옆으로 치우고 아직 묶지 않은 벽돌 20개를 굴비 엮듯이 묶어서 못에 걸어보았다. 못은 휘어짐 없이 버텼다. 벽돌을 묶었던 끈을 모두 풀었다. 상자 양쪽 손잡이를 밧줄로 묶어 못에 걸었다. 이번에는 벽돌을 5개씩 쌓아서 플라스틱 상자에 담았다. 벽돌 하나의 무게는 1.8kg. 30개를 담았으니 벽돌 무게는 54kg이다. 벽돌 한 장을 뺐다. 고작 못 하나가 벽돌 29장과 플라스틱 상자의 무게를 버텨냈다.


K의 몸무게는 50kg. 키는 167cm. 못은 바닥에서 2m 높이의 벽에 박혀 있다. K는 옷을 벗었다. 맨몸이 되어 의자를 밟고 올라섰다. 밧줄을 매듭짓고 줄 끝을 못에 묶었다. 고리에 머리를 집어넣었다. 의자를 힘껏 차고 무게를 재었다. 계산은 정확했다. 못은 굳건했고 K의 몸은 축 늘어졌다. 29세의 K는 건물이 철거되기까지 열 달간 못에 매달려 있었다. 문은 굳게 잠기었다. 건물엔 K 외에 아무도 없다.


K는 시멘트 벽에 매달려 저녁놀을 보았다. 늘 보아오던 노을. 다르지 않았다. 자정이 되자 달빛이 집안을 비추었다. 창틈으로 날아든 파리들이 몸 여기저기에 달라붙었다. 파리들은 K의 몸에 알을 낳았다. 밤새 파리들이 분주히 날아들었다. 아침이 되자 개미들이 찾아와 파리 알을 날랐다. 정오의 햇살이 비출 무렵 구더기들이 알에서 나왔다. 구더기들은 몸 곳곳을 돌아다니며 육질을 무르게 했다. 바퀴벌레도 달려들어 배를 채웠다. K의 몸은 벌레들로 바글바글했다.


장내 박테리아는 신체 다른 조직을 침범하며 가스를 만들었다. 가스가 차오른 배는 풍선처럼 부풀었다. 구더기들은 무리 지어 다니며 시신을 파먹었다. 파리들은 계속 날아와서 알을 낳고 알에선 구더기들이 나왔다. 말벌이 날아와 벌레들을 잡아먹었다. 벌레들은 포식의 열기에 들떠 분주했다. 송장벌레가 와서 무리에 섞였다. K의 눈, 코, 귀에선 액체가 흘러나왔다. 손목에 난 상처에서도, 정강이의 상처에서도 액체가 흘렀다.


구더기들은 시체의 겉면을 파고 들어갔고, 몸속 박테리아는 내부 조직을 침식했다. 그 결과 시체의 피부층이 뚫렸다. 시신의 내부에 쌓인 가스가 빠져나갔다. 부기 빠진 시체는 탈수하지 않고 널어놓은 빨래처럼 바닥에 물기를 뚝뚝 흘렸다. 시신에서 흘러나온 액체가 바닥에 흥건했다. 구더기들은 토실토실 살이 올랐다. 딱정벌레들이 더 많이 모여들었다. K 몸에 모여든 벌레들은 시신을 뜯어먹는 한편 다른 벌레들을 잡아먹었다. 살육의 현장을 피해 구더기들은 번데기가 될 곳을 찾아 떠났다. 이미 번데기에서 나온 파리들은 새 터전으로 날아갔다. 파리가 떠난 자리는 지네와 돈벌레가 차지했다. K의 살은 먹히고, 먹히었다.


그렇게 낮과 밤이 지나는 내내 K는 창밖을 내려다봤다. 거리엔 검은 비닐이 바람에 나뒹굴었다. 담벼락 밑에 쓰다 버린 물건들이 햇볕과 바람에 속수무책으로 낡아갔다. 재개발을 축하한다고 적힌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면, 빈집을 차지한 개들이 짖었다. 야밤에 개들의 울음소리는 장송곡 같았다. 아직은 불편했다. 감각은 없지만,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통에 쉴 수가 없다. 진 것이 모두 사라진 후에야 비로소 가벼워질까. 얼마만큼의 무게를 더 빼야 할까. 딱정벌레들이 두개골을 헤집고 다녔다. 안구 없이 휑한 눈구멍으로 건너편 옥상을 봤다. 하얀 진돗개 한 마리가 이편을 응시했다. 으르렁거린다. K는 시선을 떨구었다. 싱크대 쪽으로 밀어놓은 벽돌의 개수를 세었다. 그의 어림셈에서 벽돌 여러 장이 빼어졌다. 얼마 남지 않았다.


마침내 습기가 빠지고 뼈와 가죽만 남았다. 몇 달을 포만에 젖어 있던 벌레들은 다른 먹잇감을 찾아 시신을 떠났다. K는 홀가분했다. 시신은 햇볕과 바람에 풍화되었다. 사물처럼 낡아갔다.


K가 살던 곳은 8평짜리 원룸 9개로 구성된 건물 옥탑방이었다. 건물주는 보증금을 안 받고 월세를 10만 원 깎아 주는 대신 K에게 건물 관리를 맡겼다. 곧 재개발이 될 곳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으려 해서 보증금이 없었다. 재개발된다는 말만 들었을 뿐, 이주가 바로 시작될 줄은 몰랐다. 고작 1년 남짓 살았을 때 철거를 알리는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관리처분이 났으니 이주하라는 안내문을 K는 방마다 붙이고 다녔다. 월세로 사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계약 기간이 종료되어 나간 이도 있었고, 기간 전이라도 집을 구한 이들은 이사비를 받자마자 떠났다. 건물엔 K만 남았다. 주변 건물들도 하나, 둘 빈집이 되어 갔다. K는 갈 곳이 없었다. 건물주에게 철거되기 전까지 살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허용되지 않았다. 집주인은 이미 이사비가 통장에 입금되었으니 떠나라고 했다.


K는 사촌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 나야 K.”

“어? K?”

누나는 K의 뜬금없는 연락에 당황한 내색을 감추지 않았다.

“잘 지내?”

“어…… 그렇지 뭐.”

대답만 있고, 안부는 묻지 않았다.

“지금 사는 집을 비워야 하는데, 아직 갈 곳을 못 정했어. 이사비 받고 고시원이든 어디든 가려고 해. 잠시만 주소를 누나네 집으로 올려도 될까?”

“그래. 주소 문자로 보낼게. 그런데 3개월 뒤에 이 집 계약 갱신해야 하니까 그전에 도로 옮겨가.”


사촌 누나는 지방에서 올라와 원룸 한 칸에서 혼자 살았다. 누나와는 K가 초등학생 때 큰집에 가서 몇 번 본 게 전부인 사이였다. 어머니는 큰아버지에게 돈을 꾸었던 모양이다. 몇 푼 안 되는 장례식 부조금을 추리던 큰어머니는 혀를 끌끌 찼다. 취직하지 않고 대학을 다닌다고 K를 타박했다. 큰집에 의존할 순 없었다.


이주를 마쳤다고 집주인에게 연락하자, 다음 날 인부들이 왔다. 혹여 들어와서 집안을 뒤지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들은 방에 발도 들이지 않았다. 인부들은 문을 열고 서서 방안을 눈으로 쓱 훑어보았다.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바로 문을 닫았다. 아무나 출입을 못 하도록 문에 송판을 대고 못을 박았다. 문 위에 붉은 래커 스프레이로 ‘X’ 자를 표시했다. 그 일이 진행되는 동안 K는 옷장에 숨어 있었다. 몇 벌 없는 외투와 바지를 덮고 웅크렸다. 다리를 접어 가슴에 붙이고 두 팔로 감쌌다. K는 그 안에서 바깥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문을 여닫는 소리, 망치질 소리가 멈췄다.


인부들의 소리가 사라지고도 10여 분이 지난 뒤에 K는 옷장에서 나왔다. K는 굽어 있던 몸을 바닥에 펼쳤다. 뼈와 바닥 사이에서 거죽이 위아래로 눌렸다. 난방이 차단된 방바닥에 냉기가 돌았다. 굴식 돌방무덤. 입구는 폐쇄되었다. K가 쓰던 살림살이가 방에 고스란히 있다. 누구도 도굴해 가지 않는다. 무덤처럼 K의 옥탑방엔 화장실이 없다. 외부에 있다. 집안으로 들어서면 현관 옆으로 이어지는 벽에 싱크대와 냉장고가 있다. 개수대와 조리대를 합한 너비는 양팔을 벌린 길이보다 좁았다. 싱크대 맞은편 벽에는 창문이 있다. 길가에 인접한 창에선 건넛집 옥상이 보인다. 창가 벽면엔 건전지를 교체하지 않아 멈춰 버린 시계가 달렸다. 현관 맞은편 벽에는 비닐 옷장이 있다. 그 옆으로 책상 하나. 그 위에 구겨진 종이들, 연필 몇 자루, 지우개가 너저분하게 놓였다. 벽으로 시선을 들면 달력이 보인다. 달력에 인쇄된 그림엔 무희가 춤을 추고 있다. K는 두 손을 옆구리에 붙이고 손등이 바닥에 닿게 놓았다. 발을 가지런히 폈다. 송장 자세를 만들고 눈을 감았다.


‘이대로 죽어버리자.’


8시간이 지났다. 어제 점심을 마지막으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배가 고팠다. 눈을 뜨고 천장을 봤다. 야광별이 보이지 않았다. 형광등 스위치를 찾아 켰다.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전기를 차단한 모양이었다. 주춤주춤 일어나서 싱크대로 갔다. 아직 수도는 끊기지 않았다.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깡마른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마지막으로 별빛을 보고 싶었다. 현관문을 밀었다. 열리지 않았다. 낮에 인부들이 문을 막아 놓은 것이 떠올랐다. 다시 바닥에 누웠다. 그러나 잠들 수 없었다. 물이 들어가자 조직의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났다. 신경이 예민해졌다.


아껴두었던 라면 하나를 꺼냈다. 냄비에 물을 받아 버너에 올렸다. 의식은 본능 앞에 무기력했다. 일단은 먹겠다는 일념만 남았다. K는 퍼런 불꽃이 춤추는 것을 지켜봤다. 춤에 힘이 없었다. 불꽃은 점점 잦아들더니 물이 끓기 전 아예 꺼져버렸다. 부탄가스를 꺼내 흔들고 다시 끼웠다. 몇 번을 시도해도 불이 켜지지 않았다. K는 미지근하게 데워진 물에 분말수프를 풀었다. 생라면을 우적우적 씹어 먹고, 국물을 마셨다.


라면을 먹은 김에 별빛도 보고 싶었다. 창문을 열어보았다. 열렸다. 창문에서 옥상 난간 사이는 폭이 50cm 정도 되었다. 건장한 인부들이 들어와 송판을 대고 못질을 하는 것이 귀찮았을 법도 했다. K는 창을 넘어갔다. 창가 외벽에 두었던 공구함에서 망치를 꺼냈다. 현관문에 박은 송판을 떼어냈다. 입구는 내부에서 막아야 한다. 지상 최고의 거처. K가 영면에 들 곳. 죽는 순간까지 오롯이 자신만이 점유자로서 권리를 누리고 싶었다.


K는 이곳에 이사 오면서 처음 지상으로 올라왔다. 그전까진 반지하에서 살았다. 건물 가장 높은 곳, K는 언제든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언덕배기에 자리한 건물 옥상에 서면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발아래 있다. 평지에 높이 솟은 건물도 내려다볼 수 있다. 햇볕이 비추고, 바람이 부는 곳. 덮든 춥든 상관하지 않았다. 가능한 한 이곳에 오래 머물고 싶었다.


밤하늘은 흐렸다. 별이 보이지 않았다. 멀리 십자가 대여섯 개가 지상을 장식했다. 자동차의 전조등도 몇 개 보이지 않았다. 골목길 외등엔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사거리에 불이 꺼진 빌딩은 간판만이 빛났다. 나 홀로 아파트 입구의 경비실 전등이 고단한 이의 어깨를 비추었다. 저곳에서 누군가는 졸고 있을 터였다. 모두 잠든 시간, 개들도 짖지 않아 적막했다.


방으로 들어가 점퍼를 꺼내 입었다. 손전등을 챙겨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타고 발소리가 덩덩 울렸다. 계단은 옥탑에서 1층까지 이어졌다. 계단참에서 각 층 복도로 터놓은 출입구와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갈렸다. 3층에 3개, 2층에 3개, 1층에 3개 모두 9개의 원룸. 옥탑방 1개. 10개의 문마다 붉은 ‘X’가 칠해졌다. 언덕 아래로부터 밀려 올라와 가장 나중에 지어진 건물은 계단이 내부에 있는, 근방에선 비교적 멀쩡한 건물이다. 유리로 된 건물 출입문은 밖에서 테이프를 붙여 놨다. K는 옥상으로 올라가 커터칼을 가지고 왔다. 문틈으로 칼을 집어넣고 위에서 아래로 죽 그었다.


거리로 나왔다. 발길 닿는 대로 동네를 누볐다. 전봇대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고, 옆으로 돌아 좁은 골목에 들었다. 어느 한 곳이라도 사람 사는 집이 있을까 싶어 기웃거렸다. 사람을 만나면 안녕하시냐고 묻고 싶었다.

붉은 표시가 없는 대문을 발견했다. 문을 밀어 보았다. 열렸다. 슬그머니 들어가 보았다. 6평 남짓 좁은 마당을 감싸며 방 두 칸, 부엌 하나, 화장실 하나가 ‘ㄱ’ 자 모양으로 붙어 있다.


디딤돌 위에 신발이 없다. 빈집인가 보다. 그래도 혹시나 사람이 있을까 싶어 방문을 열어보았다. 가재도구 하나 없이 휑하다. 누군가 있었다면 야밤에 나타난 K를 보고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빈방에 들어섰다. 비닐 장판의 귀퉁이가 찢어졌다. 한쪽 벽엔 못이 가로로 5개 박혀 있었다. 옷을 걸어두었던 자리였을 것이다.


옆방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구석에 이불 한 채가 덩그러니 놓였다. 잘 개켜서 비닐백 안에 넣어 놓은 이불을 짐 실을 자리가 부족해서 두고 간 모양이다. K는 이불 가방을 챙겨 들고 마당으로 내려왔다.


이번엔 부엌문을 열었다. 나무틀에 반투명 유리가 붙은 미닫이문이었다. 문은 삐거덕 소리를 내며 힘겹게 열렸다. 부엌 안으로 들어가다 문지방에 발을 찧었다. 아픈 발을 다른 쪽 종아리에 대고 문질렀다. 손전등으로 부엌 안을 비추었다. 문짝이 떨어져 나간 곳, 서랍이 닫히다 만 곳. 멀쩡한 곳이 없었다. 집주인은 오래된 단문형 냉장고를 두고 갔다. 냉장고 선반에 말라비틀어진 파와 찬통 몇 개가 남겨졌다. 뚜껑을 열어보니 쉰내가 났다. 썩어서 곰팡이가 핀 것도 있다. 냉동고에는 미숫가루 봉투가 있다. 지퍼락을 열어보니 양이 세 숟갈 정도 되었다. 미숫가루 봉투를 말아서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뒤돌아 나가려는데 개수대 위로 쥐 한 마리가 지나갔다. 음식 찌꺼기라도 주웠는지 입에 뭔가를 물었다. K는 빈집을 나왔다.


골목이 복잡하게 얽힌 곳을 손전등에 의지하여 돌아다녔다. 낮이었다면 쉽게 찾았을 길을 밤이라 헤맸다. 막다른 골목에서 되돌아오고, 왼쪽으로 갈지 오른쪽으로 갈지 갈팡질팡했다. 밤 추위에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손이 저렸다. 그래도 이불은 놓지 않았다. 동틀 무렵 집에 도착했다. 언제 단수될지 몰라 페트병에 물을 받았다. 비닐 가방에서 이불을 꺼내어 K가 쓰던 이불 위에 포갰다. K는 이불속으로 들어가 번데기처럼 웅크린 채 잠들었다. 하루가 갔다.


무언가 볼을 간질였다. 작은 것이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볼을 더듬었다. 개미 한 마리가 죽은 듯 누워있던 K의 얼굴을 기어갔다. K는 개미를 살며시 집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북서로 난 창을 보았다. 밝다. 낮 1시나 2시쯤 되었을 것 같다. 고장 난 벽시계는 6시 30분을 가리켰다. 핸드폰을 봤다. 오후 3시. 목이 말랐다. 이불에 체온을 남기려고 몸만 슬며시 빠져나왔다. K의 몸체만큼 이불로 덮인 동굴이 생겼다. 수도는 나오지 않았다. 물을 받아두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컵에 물을 부었다. 한 모금 마신 뒤에 지난밤에 가져온 미숫가루를 타서 먹었다. 소매로 입가를 닦았다. 무엇을 할까. 밖을 돌아다닐 순 없었다. 인부들이 빈집에 퇴거를 표시하고 다녔다. 무료했다.


K는 이불속에 몸을 끼워 넣고 핸드폰을 들었다. 전화부에 저장된 아무에게라도 전화를 걸고 싶었다. 핸드폰 전원은 15% 정도 남았다. 읽지 않은 문자가 서너 통 있었다. 미납 고지서였다. 전화부를 검색했다. 마땅히 전화 걸 대상이 없다. 오래전 저장해 놨던 연락처들. 단순한 기록일 뿐이었다. 통화기록을 조회했다. 최근에 연락했던 P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벨이 길고도 지루하게 울렸다. 받지 않았다. 이번엔 H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나중에 다시 걸어 주십시오.”

기계음이 전화 주인의 상태를 친절히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L에게 연락했다. 몇 번의 송신음이 울렸다. L이 전화를 받았다.

“어, K야. 오랜만이다.”

“응, 오랜만이지. 어떻게 지내?”

그와 몇 마디 아무 말이라도 주고받고 싶었다.

“좀 바빠. 곧 시험이라서.”

L은 4년째 공무원 시험을 치고 있다.

“아, 그렇구나. 이번엔 꼭 합격했으면 좋겠다.”

“그래야지. 넌 요즘 뭐하니?”

통화음에 지하철이 정차하는 소리가 섞였다. K가 무어라 입을 떼기도 전에 L이 말했다.

“나 지하철 타야 하거든. 나중에 연락할게.”

“…”

K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통화가 끊겼다. K는 전화기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거처를 옮겨야 했을 때 지인들 몇 명에게 연락을 취했다. 당분간 같이 지낼 수 있냐는 요청에 완곡한 거절이 돌아왔다. 전화를 받지 않는 이도 있었다. 제각기 처지가 어려웠다. 초라했다. 더는 지인들에게 부탁하면 안 되었다. 그들에게 다시 연락하지 않으려 했다. 옥탑에 홀로 있는 지금, K는 그들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빌려주었던 돈을 부치겠다고 전하고도 싶었다. K는 이사비로 받은 돈을 대학 선배와 동기들에게 부쳤다. P에게 50만 원, H에게 30만 원, L에게 20만 원. 그들로부터 꿨던 액수였다. K는 그들에게서 점점 작아지다 하나의 점이 되었다. 그의 핸드폰 전원은 이제 5%도 남지 않았다. 배터리가 방전될 때까지 전화는 울리지 않았다.


K는 혈혈단신이다. 아버지는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교통사고로 비명횡사했다. 어머니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 병으로 사망했다. K는 어머니와 살던 집에서 반지하 원룸으로 옮겼다. 학자금 융자를 받아 등록금을 충당하고 편의점에서 일하거나 장학금을 받으며 학업을 마쳤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려 했지만, 어디에도 붙지 못했다. 졸업생 태반이 취업에 실패했다. 어떤 이들은 부모의 지원을 받아 대학원에 갔다. 또 다른 이들은 공무원 시험을 치려고 노량진 고시원에 들어갔다. K는 일하는 틈틈이 시를 썼다. SNS에 시를 올렸다. 반응이 좋았다. K는 시인으로 등단하길 바랐다. 몇 해에 걸쳐 공모전에 응모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원고지에 연필로 써낸 시는 몇 번이나 허옇게 지워지길 반복했다. 시를 쓰고, 아르바이트하며 연명하다가 옥탑방에 이르렀다.


옥탑방을 계약하고 집 근처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밤을 새워야 했지만, 낮보단 손님이 적었고, 유통기한이 지나 폐기되는 샌드위치나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남는 것은 싸가도 되어서 식비가 거의 들지 않았다. K는 편의점에서 번 돈으로 월세와 관리비를 내고 학자금 융자를 갚았다. 이주가 시작되면서 빈집이 많아지자, 편의점 사정이 어려워졌다. 근근이 버티던 편의점은 문을 닫았다.


혼자가 된 뒤로 어느 한 곳에 정주한 적이 없다. 2년 살다 이사하기를 되풀이했다. 단출한 살림살이는 포터 한 대면 끝이었다. 그나마도 짐칸이 다 차지 않았다. 일자리도 그랬다. 간신히 얻은 단기 계약직의 기간이 끝나면 새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그러길 몇 번 하다 시급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집도 일자리도 동시에 잃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K는 고시원이든, 반지하든 살 곳을 찾아야 했고, 일자리 역시 다시 구해야 했다. 부동산을 들렀다가 집에 오던 날, K는 문득 모든 것이 지겹다고 생각했다. 그의 부단한 노력은 하루, 하루 쌓였다가 먼지처럼 흩어졌다. 애써 버티고 그러모으다 흩어지길 반복하는 삶. 그만두고 싶었다.


낮 동안 문을 여닫는 소리, 망치질 소리,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 무언가 둔탁한 것이 무너지는 소리가 계속됐다. 북서로 난 창으로 누런빛이 들었다. 사방의 소리가 멈췄다. K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지러웠다. 털썩 주저앉았다. 앞이 캄캄했다. 싱크대로 기어가서 설탕통을 꺼냈다. 설탕 한 숟갈을 물에 타서 마셨다. 벽에 기대어 현기증이 가라앉길 기다렸다. 10분쯤 지나서 밖으로 나갔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K는 걸음을 재촉했다. 어두워지기 전에 구해야 할 물건들이 있다. 과일 가게에서 쓰다 버린 플라스틱 상자를 주웠다. 운 좋게도 상자에 썩은 사과 세 알이 담겼다. K는 사과 한 알을 들어 멀쩡한 쪽을 옷에 문지르고 배어 먹었다. 수분이 빠져나간 사과는 푸석했다. 한 알 더 집었다. 반은 썩고 반은 썩지 않았다. 맛은 더 좋았다. 세 번째 사과를 먹으려고 입을 벌렸을 때 벌레 한 마리가 환부를 뚫고 나왔다. 흠칫 놀라 그만 사과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K는 빈 상자를 들고 자리를 떴다.


길을 내려가 모퉁이를 돌아 좁은 골목에 접어들었다. 벽돌집이나 벽돌담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오래된 벽돌집은 많았지만 헐리지 않았다. 계단을 오르기도 했고 옆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골목을 누비며 행여 불이 켜진 집이 있는가 싶어 창을 보았다. 빛이 없어 시커먼 내부엔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집들은 대체로 낡고 허름했다. 굳게 닫힌 창은 누렇게 지는 햇빛을 반사하며 그 역시 낡아갔다. 깨진 유리창이 달린 집은 성난 눈을 부릅뜨고 누구의 접근도 거부했다. 반쯤 열린 창은 바람을 맞아 기괴한 소리를 내며 덜컹거렸다. 이사하느라 창문을 아예 떼어버린 집도 있었다. 골목엔 아무도 없다.


쓰레기는 집마다 안팎 구분 없이 쌓였다. 굳이 길에 내다 버리지 않아도 되었다. 쓰레기와 함께 집도 버려졌다. 주인 없는 집을 지킨다고 컹컹 짖는 개가 있는가 하면 쓰레기를 뒤지다 K를 보고 꼬리를 흔드는 개도 있었다. 개에게 줄 게 없다. 마음이 바빴다. 오늘 일을 마치지 않으면 하루를 더 굶주려야 한다. K는 골목길을 지나 빈터에 이르렀다. 빈터 맞은편에서 허물어진 집을 찾았다. 그 집 벽돌담이 헐렸다. 그곳에서 벽돌을 주워 상자에 담았다. 30개 정도 담고 상자를 들어보았다. 들리지 않았다. 벽돌을 반으로 나누었다. 벽돌 15장도 K에겐 버거웠다. 벽돌을 10개씩 나누었다. 세 번에 걸쳐 집으로 날랐다. 마지막으로 벽돌을 옮길 때는 해가 져서 어두웠다. 케이는 상자에 손전등을 올려놓고 벽돌을 옮겼다.


벽돌을 집안으로 들여놓고 창가에 차곡차곡 쌓았다. 벽돌을 나르고 쌓느라 기운이 다 빠졌다. 고단했다. K는 이부자리로 가서 누웠다. 벽돌을 옮기느라 입은 정강이와 손목의 상처가 따끔거렸다. 무게를 잴 기운도 밧줄을 매달 힘도 없었다. 잠시 쉰다고 눈을 붙였다가 그대로 잠들었다.


K는 여행을 가 본 적이 없었다. 큰집에 몇 번 간 것을 여행으로 치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고아였던 어머니에게 인척이라고는 남편의 형네 식구가 전부였다. 어머니는 아버지 사후에도 명절마다 큰집을 찾았다. 명절의 떠들썩한 분위기에 섞여 들고 싶었던 마음도 있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고단함을 하소연하고픈 마음도 있었다. 때로 아쉬운 소리도 했다. 빌린 돈을 갚지 못하고 미루는 게 계속되자, 큰어머니의 냉대는 해마다 쌀쌀해졌다. 큰아버지는 인사를 안 받고 아예 벽을 보고 돌아앉았다. 결국 발길을 끊었다.


서울을 벗어나 아예 낯선 장소로의 여행은 대학에 합격하고 학생회 오리엔테이션이 처음이었다. 같은 학과 동기들을 만나고 선후배를 소개받는 행사가 입학의 필수 코스인 줄 알았다. K가 속한 인문대 학생회는 경기도 가평에 숙소를 잡았다. 일행은 청량리역에 모였다. 새로운 사람들, 서로에게 친절했다. 사람들 사이엔 한 조직에 소속된 유대감이 흘렀다. 경춘선 열차를 타고 창밖을 봤다. 나무와 집들이 뒤편으로 물러났다. 옆자리 학생이 초코바 하나를 건넸다. L이었다. 이름을 알려주고 인사를 나누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K는 P, H, L을 만났다. P는 선배였고, H와 L은 동기였다. 그들은 어머니 장례식에 와 주었고, K의 궁핍한 형편을 알고는 밥을 사주거나 거처할 집을 알아보는 등의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것이 연민이든, 우정이든 괘념하지 않았다. K는 그들과 사귀었다. 위화감은 없었다. 그들 모두 K보다 조금 더 나은 형편이었다. 어렵게 대학을 졸업했지만 모두 갈 곳이 없었다. 만남이 뜸해졌고 어느덧 멀어졌다. 서로의 사정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각자 오늘을 살아내고 내일을 걱정하기 바빴다.


이사비를 출금해서 무작정 여행을 떠났으면 어땠을까. 버스를 타고 인천 앞바다에 가든, 기차를 타고 남해로 가든, 아니면 동해에 이르든. 넷이 바다에 가서 하루를 보냈더라면 좋았을까. 어느 멋진 날을 꿈꾸었다가도 다음이 그려지지 않았다. K는 이런저런 공상을 하다 잠이 들고, 잠에서 깨어 지난날을 생각하다 다시 잠들었다. 그렇게 밤과 아침이 지났다.


며칠 동안 K는 피로에 눈을 감고, 허기에 눈을 떴다. 그가 선잠에서 깨어났을 때, 시간을 알 수 없었다. 고장 난 벽시계는 여전히 6시 30분을 가리켰고, 핸드폰은 방전된 지 오래였다. K는 싱크대 상부 장의 문을 열었다. 사발면이나 통조림 하나 없이 비었다. 까치발을 하고 선반 위 칸을 손으로 더듬었다. 커피믹스 하나가 구석에 있다. 유통기한이 1개월 지났다. 있는 줄 몰라서 남겨진 것이었다. K는 커피믹스 한 봉을 입에 넣고 녹였다. 물을 마셨다. 쓰고도 달큼한 맛이 목을 넘어갔다. 이번엔 조리대 위에 두었던 설탕통을 집었다. 설탕은 병에 반쯤 남아 있었다. 설탕을 한 숟갈 퍼서 입에 머금었다. 침으로 설탕을 녹여서 단물을 삼켰다. 문득, 자신이 죽고 나서 충치균은 이를 얼마쯤 파먹을지 궁금했다. 제때 치료하지 못해서 어금니 하나를 뽑아버렸다. 앞니 2개와 송곳니 1개는 거멓게 썩고 있다. K는 설탕을 한 숟갈 더 먹었다.


어린 시절, 일하러 간 어머니가 올 때까지 방에 엎드리고 숙제를 했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설탕을 한 숟갈 퍼서 밥에 비벼 먹곤 했다. 냉장고에 반찬 서너 개와 간장이 있었지만 흰 밥에 흰 설탕을 뿌려 먹는 것이 좋았다. 입에서 죽이 되도록 씹어서 삼키면 모유를 마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가 많이 늦는 날엔 엄마 옷을 품에 안고 기다렸다. 홀로 기다리다 잠이 들면 파리한 몸을 하고 일터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이불을 덮어 주었다. 어머니는 임종 전 K에게 잘 살라며, 곁에 있어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


20여 년을 애쓴 그녀의 고단한 노력의 결실은 10년을 가지 못했다.


K는 설탕을 창가에 뿌려두었다. 그가 앞으로 벌일 만찬에 초대받은, 작은 이들을 위한 선물이다. 개미들은 책상 위에, 베개 옆에, 현관 신발장에 불쑥 찾아왔다. 어디다 집을 지었는지 변변한 음식 쓰레기조차 없는 K의 집을 줄기차게 찾았다. K는 개미 한 마리가 방을 가로지르는 것을 멀거니 바라본 적이 있다. 동무들은 어디 두고 혼자 길을 가나 궁금하여 개미의 뒤를 시선으로 따라갔다. 개미는 싱크대 아래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저기가 집인가 보다.’ K는 차를 마시거나 커피를 탈 때 설탕을 조금 흘렸다.


옥상에 걸어두었던 빨랫줄을 풀었다. 이사 오며 새로 산 밧줄은 올이 풀린 데 없이 튼튼했다. 매듭을 묶어 보았다. 아무리 버둥거려도 풀리지 않는 매듭. 출생 당시 목에 탯줄이 걸린 K를 의사가 어머니의 배를 가르고 끄집어냈다. 탯줄은 가위로 잘렸다. 코로 들어오는 수술실의 생경한 냄새. 대기에 노출된 젖은 피부. K는 고통스럽게 울었다. 아기일 때 찍은 K의 사진은 울거나 찡그린 표정이 대부분이다. 그 외에는 자는 얼굴. 거듭된 이사로 유아 시절 앨범을 잃어버려 확인할 수는 없지만, K의 기억엔 그랬다.


현관문을 잠갔다. 벽에 걸어둔 시계를 떼어냈다. 못은 1cm만 나오고 벽에 깊이 박혀 있다. K는 종이에 벽돌 한 개의 무게를 썼다. 공사장에서 일했을 때 벽돌 하나의 무게가 1.8kg인 것을 알았다. 밖에서 주워온 벽돌도 얼추 그 정도 될 것 같다. K는 간단한 셈을 마쳤다. 그의 무게를 벽돌 개수로 산출했다. 벽돌 29장이면 충분했다. 혼자서는 들 수 없는 자신의 무게를 못에 걸어 보았다. 상자에서 벽돌을 덜어내고 상자에 묶은 줄을 풀었다. 책상에 앉았다. 구겨진 종이를 펼쳐서 쓰다 버린 시를 읽었다. 다시 구겼다. 낙서가 되지 않은, 흰 종이를 펼쳤다. 몇 년, 몇 월, 며칠. 날짜를 적었다. 다음으로 주소를 적었다. 그 아래 이름을 썼다. 아무개. 사망.

벽에 매달린 지 수개월이 지났다. K의 시신은 한 평 자리도 차지하지 않았다. 밧줄에 걸린 채 고스란히 말라버렸다. 낮엔 햇볕이 쬐었다. 밤엔 달빛이 드리웠다.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스스로 묶어 놨기에 K의 넋은 육신이 묶인 자리에서 떠날 수 없다. 촛농이 녹아들어 납작이 굳은 자리에 심지의 불이 위태로이 흔들리는 것처럼 K의 혼백도 그러했다. 시신에 아스라이 붙어 있던 혼은 조만간 사라질 듯 잠잠했다. 지상엔 K가 그리워할 사람도 없고, K를 그리워할 사람도 없다. 시신은 한없이 고요했다. K의 넋엔 아무런 염(念)이 없다.


그해 겨울, 동네에 포클레인, 지게차, 트럭 등이 오갔다. 마을 초입에 건설 사무소가 차려졌다. 집들이 부서졌다. K가 머무르던 건물도 무너졌다. 벽에 금이 가고 못이 빠졌다. K의 시신이 바닥에 털썩 떨어졌다. 그대로 건물 더미에 묻히었다. 아무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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