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단 쓰자

아빠가 수놓은 길

- 아버지의 손(단편 소설)

by 백수아줌마

“예지야, 일어나. 학교 가야지.”

가래 낀 쉰 목소리가 잠을 깨웠다. 예지는 밤새 움츠렸던 어깨를 폈다. 겨우내 한 번도 빨지 않은 이불에는 제 몸의 냄새가 고스란히 배었다. 서늘한 아침 공기에 몸에 남은 온기가 이내 사라졌다. 뒤이어 집안에 배어 있는 곰팡내가 코를 덮쳤다. 곰팡이 포자 하나하나가 날아와 사람 체취와 엉기어 집안의 냄새를 만들었다. 단잠을 자다가도 아침에 눈을 뜨면 내리 덮는 엄숙함. 늦잠을 자는 법이 없다. 예지는 표면이 반질반질한 둥근 손잡이를 돌렸다. 문틀이 내려앉아 힘주어 당겨야만 문은 삐걱하고 열렸다. 주방의 꿉꿉한 냄새가 자욱이 가라앉은 공기에는 식은 된장 냄새가 섞여 있다.

“일어났니? 된장찌개 데울 테니, 얼른 세수해라.”

상을 놓고 아빠와 마주 앉아 아침을 먹었다. 뜨끈하게 데운 된장 냄새가 식욕을 돋았다. 나물 몇 개 그릇에 올리고 된장을 얹어 비벼 먹었다. 아빠는 예지의 숟가락질을 물끄러미 보다가 계란말이를 그릇에 얹어 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상 치우는 걸 도우려는 예지를 한사코 말렸다. 아빠는 상을 치우면서도 기침을 몇 번씩 했다.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매섭다. 예지는 두툼한 겨울 점퍼를 입었다. 작년에 산 점퍼는 팔이 조금 짧았다. 아빠는 모직 코트를 입었다. 손목 끝단과 옷자락 끝이 해졌다. 10년은 더 입었을 터이다. 예지가 기억하는 아빠의 겨울옷은 모직 코트와 공장에 다닐 때 입었던 오리털 점퍼가 전부였다. 한때는 풍성했던 점퍼는 겉감만 남아 겨우 외형을 유지했다. 점퍼는 언제나 장롱에 걸려 있다. 외출할 때면 코트를 꺼내 입었다. 낡은 옷을 입어도 아빠는 항상 깔끔해 보였다. 매일 아침 수염을 깎았고, 머리를 단정히 빗었다. 창백한 듯 하얀 얼굴이 아침 단장의 마무리였다.

아빠는 작은 키에 몸집도 왜소하다. 굽은 어깨는 기침할 때마다 들썩였다. 메마른 몸에 턱은 뾰족하고 손마디도 앙상했다. 가는 손마디 마디엔 굳은살이 박였다. 손재주가 좋았던 아빠는 한때 전파상을 했다. 수익이 나지 않았다. 엄마가 임신한 뒤로는 돈을 벌려고 공장에 취직했다. 힘에 부쳤지만, 열심히 일했다. 이를 악물고 해서 그런지 어금니에 금이 갔다. 공장에서 일하면서 작았던 몸이 더 줄어들었다.

몸무게만 감소한 것이 아니었다. 장기에 이상이 생겼다. 처음엔 감기인 줄 알았다. 약을 먹어도 가슴이 답답하고 기침이 잦아들지 않아서 대학병원에 갔다. 폐암을 진단받았다. 공장 내 먼지와 유독가스를 많이 마신 탓이었다. 아빠 말고도 폐병을 얻은 직원들이 몇 있었다. 하지만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어려웠다. 사업체에도 근로복지공단에도 항의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결국 자비를 들여 치료를 받았다. 수술을 받은 뒤로 아빠 몸엔 거죽만 남았다. 그런데도 손에 박인 굳은살은 빠지질 않았다. 굳은살은 오랜 세월 단단히 굳은 화석처럼 아빠의 손에 남아, 살아온 이력이 되었다.

폐암에서 회복하고부터 예지의 등하교를 돕는 것은 아빠 몫이었다. 예지는 굳은살이 박인, 앙상한 손을 꼭 잡았다. 두 손을 맞잡으면 차가운 손에 온기가 돌았다. 아빠와 예지는 언덕을 내려갔다. 2월, 겨울은 매서운 바람으로 앙칼지게 버텼다. 아빠는 바람에 풀어진 목도리를 여몄다. 기침 몇 번에 몇 걸음. 골목을 돌아, 한참을 내려가 큰길에 이르렀다.

엄마가 일하는 식당은 큰 길가 음식 골목에 있다. 아침 7시에 나가서 저녁 8시에나 돌아왔다.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상을 차려 놓고 식당에 나갔다. 주방에서 설거지도 하고 서빙도 했다. 손님이 없을 땐 양파를 까는 등 주방 잡일을 도맡았다. 그래서 엄마에게선 늘 설거지한 냄새, 양파 냄새가 났다. 젖은 앞치마의 쾨쾨한 냄새가 엄마의 전부는 아니다. 양파껍질 벗겨내듯 가슴팍을 파고들면 비로소 엄마 냄새가 난다. 온전한 엄마 냄새는 누룽지 같다. 예지는 엄마가 일하는 식당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밥솥을 열 때 나는 따스한 온기가 가슴에 스며들었다.

천을 가르는 다리를 건너면 학교가 있다. 아빠는 교문까지 예지를 데리고 갔다. 교문에서 미희 선생님이 예지를 맞아주었다.

미희 선생님은 예지가 학교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곁에서 도와주시는 분이다. 예지가 5살이 되었을 무렵, 텔레비전을 볼 때마다 고개를 돌리는 버릇이 생겼다. 오른쪽 동공이 바깥으로 벌어졌다. 눈 상태를 검진한 안과 의사가 큰 병원에 가길 권했다. 외사시였다. 게다가 양쪽 눈 시력 차이가 컸다. 대학병원에 가니 바로 수술 날짜가 잡혔다. 수술 후 예지는 안경을 썼다. 시력은 점점 더 떨어졌다. 2학년 때 오른쪽 눈의 사시가 재발했다. 수술을 다시 했지만, 효과는 2년을 가지 않았다. 재수술은 어려웠다. 미희 선생님이 예지가 못 보는 것은 크게 써 주거나, 말로 전달했다. 그렇게 6학년이 되었고 곧 졸업한다.

쉬는 시간이 되면, 같은 중학교를 배정받은 아이들끼리 모여 잡담을 나누었다. 친구들 대화에 끼어들고 싶지만, 예지는 의자에 앉아 친구들이 하는 말을 듣기만 했다. 3학년까지 친하게 지내던 윤서는 예지가 시력을 잃어가자 슬그머니 멀어졌다. 핸드폰 게임을 같이 할 수도 없고, 함께 다닐 때는 넘어지지 않게 신경 써야 했다. 어린 윤서에게 부담이었을 것이다. 예지는 서운한 마음에 윤서와 거리를 두었다.

저학년까진 학교 공부를 곧잘 했지만, 시력이 급격히 안 좋아지면서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예지는 교실 맨 앞에 앉아서도 칠판에 쓰인 글자를 읽는 것이 어렵다. 안경을 끼고 형태나 색채는 구별해도 글자나 무늬 같은 세세한 것은 볼 수 없다. 예지는 교과서의 표지를 쓰다듬었다. 책은 책상을 다 차지할 정도로 컸다. 글자가 인쇄된 곳과 아닌 곳의 질감이 달랐다. 틈나는 대로 손을 써서 사물을 맞히거나, 사물의 표면에서 세부적인 차이를 찾았다. 손으로 읽어내고 눈으로 확인했다. ‘더 많이 보아 두고, 더 많이 기억할 것.’ 요즘 예지가 자신에게 준 졸업 과제였다. 예지의 시선이 교실을 훑었다.

“뭐야, 쟤 어딜 보는 거야. 아, 진짜 기분 나빠.”

톡 쏘아붙인 말에 가슴이 아렸다. 교실 풍경을 기억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예지는 머리를 휙 돌리고 책상을 내려보았다. 아이들에게 친분을 구걸하는 것으로 보이느니 차라리 그들에게 무관심해 보이는 편이 나았다.

“예지야, 무슨 일 있니?” 화장실에 갔던 미희 선생님이 돌아왔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선생님은 말없이 예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손에서 비누 냄새가 났다. 선생님은 예지가 고개 숙이고 있을 때마다 어깨를 감싸거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선생님 손은 도톰하면서도 매끄러웠다. 푹신푹신한 느낌이 좋다. 보조 선생님을 시작했을 때 고등학생이던 아들은 대학생이 되었다. 2년 전 허리를 다쳐서 가족 모두 그만두길 권했지만, 예지를 두고 쉴 수가 없었다. 예지의 졸업을 끝으로, 보조 선생님을 그만둘 예정이다.

종례가 끝나갈 무렵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빠가 걱정스럽다. 하교 시간보다 일찍 나오느라 우산을 못 챙겼을 것 같다. 미희 선생님은 아침 예보를 보고 우산을 준비했다. 우산을 같이 쓰고 교문으로 갔다. 문기둥 옆에서 아버지가 비를 맞은 채 서 있었다. 곤란하고 미안한 얼굴이었다. 예지와 아빠는 종종 서로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엔 좀 낯설었다. 얼마쯤 지나고 나니, 미안한 마음은 익숙한 슬픔으로 자리 잡았다. 미희 선생님이 얼른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어 아빠에게 건넸다. 예지가 우산을 챙기지 못한 날을 대비하여 선생님은 늘 하나 더 챙기곤 했다.

“여분으로 갖고 오길 잘했네요.”

“어이구, 비가 올 줄 모르고 빈손으로 왔네요. 고맙습니다.”

아빠가 우산을 펼쳐 들고, 예지에게 손을 내밀었다. 예지는 아빠 우산 밑으로 가서 손을 잡았다. 차갑다. 비를 맞아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아빠 옆에 딱 붙어 걸었다. 2월에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아빠는 연신 기침했을 터였다. 천에 빗줄기가 투두둑 떨어졌다. 다리를 건너는데 아빠 몸이 오들오들 떠는 게 느껴졌다. 혼자 하교할 수 있대도 아빠는 늘 예지를 데리러 나왔다. 그렇게라도 움직여야 건강해진다고 둘러댔다.

다리를 건너 개미슈퍼를 끼고 언덕을 올랐다. 빨간 깃대를 꽂은 점집까지 오르막은 경사가 완만했다. 아빠의 숨소리가 조금 거칠어졌다. 점집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은 폭이 좁고 경사가 급하다. 아빠의 호흡이 가빠졌다. 서늘한 폐에 찬 기운이 마구 들어갔다. 기침이 터졌다. 세상에 있는 온갖 따듯한 것을 아빠 몸에 둘러주고 싶었다. 한참을 들썩이던 아빠의 굽은 어깨가 멈췄다. 다시 걸음을 뗐다. 오르막 끝엔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계단 옆 담벼락엔 천사의 날개가 그려졌다. 두 사람이 딱 붙어 겨우 오를 수 있을 정도의 폭에, 계단 하나의 높이는 한 뼘 정도 되었다. 그나마도 높이가 불규칙적이어서 입체시가 좋지 않은 예지에겐 힘든 길이었다. 천사가 타고 온 구름을 그린 건지, 구름을 밟듯이 살포시 밝고 가란 뜻인지 계단엔 구름이 군데군데 그려졌다. 예지와 아빠는 계단을 조심조심 올랐다. 집으로 가는 14개의 계단. 조금 더 오르면 하늘에 이를까. 철문을 삐거덕 여는 소리에 예지는 아빠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어제 비를 맞은 탓인지 기침이 심해졌다. 졸업식은 내일이다. 예지는 아빠에게 오늘 하루만이라도 집에서 쉬라고 당부했다. 정 불안하면 계단을 내려가는 것만 봐 달라고 했다. 아빠는 외투를 꺼내 입었다. 면도는 하지 않았다. 빗질도 하지 않았다. 목도리를 두르고 현관을 나섰다. 손잡이가 없는 계단을 예지는 벽을 짚어 가며 한 계단, 한 계단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한 발을 뻗어 계단 높이를 가늠하고 발을 디딘 후에 다른 발을 뗐다. 서너 계단 내려가는 걸 지켜보던 아빠가 예지 손을 잡았다. 계단만이라도 내려가게 도와줘야 안심이 될 거 같았다. 계단을 다 내려오자, 이제는 아빠가 걱정이다. 예지는 아빠가 집에 들어가는 걸 보고 가겠다고 버텼다. 아빠는 굽은 어깨를 펴고 계단을 올랐다. 애써 참은 기침은 계단을 거의 다 오를 무렵 터졌다.

“아빠 보일러 켜고 있어요.”

예지는 뒤돌아 학교로 향했다.

점집을 지나 개미슈퍼로 내려가는 길에서 누군가 등을 툭 쳤다.

“예지야, 오늘은 아빠랑 같이 안 가?” 윤서였다.

“어, 아빠가 몸이 좀 편찮으셔서.”

“그래? 그럼 나랑 같이 가자.” 의외였다.

“어?” 길에서 만나도 모른 척하더니 웬일로 다정하게 굴었다.

“왜 싫어?”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너 나 안 좋아하잖아?”

“널 내가 왜 안 좋아하니? 우리 친구잖아.”

친구라는 말이 씁쓸했다. 예지 마음을 눈치챘는지 윤서가 잠시 가만히 있었다. 가방을 뒤적여 사탕 한 봉지와 편지 봉투를 꺼냈다.

“편지 읽어 봐. 사탕은 용돈으로 산 거야. 네 선물.”

예지는 편지를 주머니에 넣고 사탕 봉지를 뜯어서 사탕 하나를 윤서에게 건넸다. 윤서는 머뭇거리다 받아서 입에 넣었다. 예지도 입에 한 알 넣었다.

“고마워. 내일 졸업식 끝나고 같이 사진 찍자.”

예지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윤서는 늘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엄마 없이 할머니와 둘이 살았다. 아빠는 돈 벌러 지방을 돌았다. 예지 아빠가 아프기 전엔 집에 찾아와, 놀다 가곤 했다. 윤서 집은 점집 골목 첫 번째 집, 빨간 깃대를 꽂은 집이다. 고만고만한 집들이 모여 있는 곳. 예지는 윤서를 이해했다.

예지는 화장실에서 편지 봉투를 뜯었다. 종이가 7장이나 되었다. 종이 한 장에 한 문장씩, 굵은 색연필로 큼직큼직하게 썼다.

너랑 다니면 다른 친구는 못 사귈 거 같았어. 내 진짜 얼굴을 아는 네게서 멀어지고 싶었어. 난 친구들 앞에서 가면을 쓰고 살았거든. 그래서 학교에서 모른 척했어. 네 맘 아프게 해서 미안해. 너와 얘기하고 놀던 때가 늘 그리웠어. 우리 다시 전처럼 지내도 되겠니?

편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아빠가 춥지 말라고 넣어준 핫팩이 아직 따뜻했다. 이제라도 윤서 얼굴을 가까이서 볼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다.

하굣길, 교문 근처에 윤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윤서와 예지는 나란히 걸었다. 다리를 건너 오르막을 올라 점집 앞에 이르렀다. 윤서가 잠시만 기다리라더니, 집에 들어가 개피떡 한 봉지와 과일 바구니를 들고 왔다. 오랜만에 굿을 해서 윤서 집에 떡과 과일이 많았다. 할머니가 따로 챙겨놓으셨다. 할머니께 인사드리고 가겠다는 걸 윤서가 말렸다. 지금 손님이 있어서 곤란하다는 거였다. 윤서는 떡이 든 봉지를 예지 손에 주고 자기는 과일 바구니를 한 손으로 들었다. 남은 두 손은 맞잡았다.

아빠는 전기장판만 켜고 이불을 덮고 누워계셨다. 잠이 든 모양이었다. 윤서는 바닥에 과일 바구니를 내려놓고는 신발도 벗지 않고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나가면서 내일 학교 같이 가잔 말을 남겼다. 예지는 떡과 과일 바구니를 주방에 두었다. 밥솥을 열어보니 밥이 그대로 있었다. 예지는 아빠 이마를 짚어 보았다. 열이 좀 있는 거 같았다. 아빠 머리맡엔 약 봉투가 찢겨 있었다. 보일러 온도를 올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앨범에 편지를 끼워 놓고 사진들을 보다가 예지도 까무룩 잠들었다.

기침 소리에 예지는 잠에서 깼다. 안경을 찾아 쓰고 거실로 나갔다.

“물 좀 다오.” 아빠는 벽에 간신히 기대어 있었다.

예지는 컵에 물을 따라 드렸다. 물컵을 받아 쥔 손이 떨렸다. 아빠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벽시계를 봤다.

“벌써 7 시구나. 너무 오래 잤어.”

“아빠 병원 다녀온 거예요?”

“으응, 감기가 온 모양이야. 약 먹으면 괜찮아.”

예지는 아빠가 허기질 거 같아서 얼른 떡을 내왔다. 과일 바구니를 보여주며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며 개피떡 세 개를 먹었다. 더는 먹지 않았다.

엄마가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식당 사장이 내일 졸업식 가야 하니, 마사지 팩이라도 붙이라며 30분 일찍 보내줬다. 내일 점심 지나서 식당에 출근하도록 시간을 조정하고, 예지 용돈도 챙겨주었다. 엄마는 식당에서 싸 온 음식에 냉장고에서 꺼낸 반찬 몇 개를 더하여 상을 차렸다. 세 식구가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아빠가 기침할 때마다 엄마는 밥을 한 술 크게 떠서 우악스럽게 먹었다. 운동하듯이 입 주변 근육을 일정하게 움직였다. 예지는 물을 말아먹었다. 아빠의 밥그릇은 쉬이 줄어들지 않았다. 우적우적 씹는 소리, 기침 소리, 물에 만 밥에 숟갈 담그는 소리, 가래 낀 쉰 소리가 한 데 어울려 방 안을 채웠다. 엄마는 상을 거두며 주방에서 코를 팽 풀었다.

졸업식 날, 엄마는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났다. 머리를 감고 드라이를 했다. 롤로 말고 한참을 공들여 빗은 머리는 사자처럼 풍성했다. 파운데이션을 고루 바른 얼굴은 하얗게 뜬 달덩이 닮았다. 엄마의 동그란 얼굴이 졸업식장에서 둥실 떠다닐 거 같았다. 검은색 정장 바지에 자주색 블라우스를 입은 엄마는 거울 앞에 섰다. 정장 바지와 블라우스는 수년간 장롱에 있다가 예지 졸업식 덕에 비로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엄마는 여기에 이모에게서 빌린 베이지색 코트를 대보며 옷 태를 살폈다. 아빠는 평소와 같았다. 수염을 깎고, 머리를 단정히 빗었다. 검은색 모직 코트를 입고 목도리를 둘렀다. 여기에 마스크를 썼다는 점만 달랐다. 예지는 청바지에 검은색 티셔츠를 입었다. 그 위에 늘 입던 점퍼를 입었다. 새로 산 운동화가 흠집 하나 없이 하얘서 이질적이었다.

예지네 식구는 점집 앞에서 윤서네와 만났다. 한복에 누비 두루마기를 차려입은 윤서 할머니는 목에 인조털 목도리를 둘렀다. 졸업식에 맞춰 어젯밤 올라왔다는 윤서 아빠는 남색 정장에 검은 오리털 점퍼를 입고 있었다. 예지 부모를 보고는 멋쩍은 듯 웃었다. 안 입던 옷을 입느라 불편해진 거동을 애써 참는 듯했다. 윤서 아빠의 까만 얼굴에는 약간의 설렘도 보였다. 윤서는 검은색 바지에 하얀 티를 입고 남색 더플코트를 입었다. 윤서는 학년 대표로 모범상을 받을 예정이다.

큰길로 내려갈수록 사람 수는 점점 더 불어났다. 학교 앞에서는 꽃다발을 파는 노점상이 몇 있었다. 예지와 윤서는 각자 부모에게서 받은 꽃다발을 들고 학교로 들어갔다. 미희 선생님이 마중 나와 있었다. 엄마는 미희 선생님을 보자마자 넙죽 인사했다.

“오랜만에 보네요. 선생님 덕분에 예지 무사히 졸업하네요. 고마워요.”

“아유, 별말씀을 다 하시네요. 제가 하는 일인데요. 예지 덕에 딸 키우는 재미도 느껴보고 좋았어요.”

학교 공식 행사를 마치자, 강당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나와 교실과 운동장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미희 선생님은 사진을 찍고 예지를 꽉 안아주었다.

“예지야, 공부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 알았지? 그리고 언제든 연락하렴.”

선생님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었다. 그러고는 졸업식 내내 들고 있던 종이 가방을 예지에게 덥석 안겨주었다. 볼일이 있다며 허겁지겁 집으로 갔다. 점심 대접을 하고 싶었던 예지 엄마는 미희 선생님의 등을 보며 아쉬워했다. 가방엔 청색 봄 점퍼가 있었다.

예지네와 윤서네 가족은 천 건너 식당가에 있는 중식집으로 갔다. 음식을 기다리며 아빠들은 연락처를 교환했다. 예지 엄마는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는 윤서 할머니에게 건강은 괜찮은지 물었고, 윤서 할머니는 윤서 20살 될 때까지 끄떡없다고 대답했다.

예지와 윤서는 나란히 앉았다. 예지는 졸업 선물로 스마트폰을 받았다. 윤서가 예지에게 사용법을 알려 주었다. 예지에게 필요한 앱을 몇 개 깔아주고 글꼴 크기를 키웠다. 예지 엄마, 아빠의 연락처도 물어서 입력해 주고 각각에 단축키를 설정했다. 자기 번호도 입력했다. 카메라 활용법을 알려 주었다. 식당 안의 웃으며 떠드는 소리, 요리를 나누는 모습이 예지 핸드폰에 저장됐다.

엄마는 시력이 더 떨어질 것을 걱정해서 스마트폰을 사 주지 않았다. 예지는 다른 아이들이 문자를 주고받고 인터넷 검색하는 걸 곁눈질로 보기만 했다. 혼자 있는 시간엔 주로 라디오를 들었다. 독서를 하면 좋으련만, 작은 글자를 읽어내는 것이 어려워 책 읽기를 포기했다. 예지는 무료함을 익숙하게 견디어냈다. 책을 읽어주는 오디오북을 알고 엄마가 스마트폰을 준비했다.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거라며 엄마는 선물을 주고도 미안해했다.

점심을 마치고 아빠들은 따로 할 얘기가 있다며 빠졌다. 남은 일행은 언덕을 올라갔다. 예지 엄마는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식당에 갔다. 윤서가 따라와서 예지가 스마트폰 사용하는 것을 더 봐주었다. 돋보기 앱과 오디오북 사용법을 설명하고, 키패드를 누르는 대신 소리를 내어 문자를 보내는 법을 시연했다. 윤서는 동영상 강의로 공부하는 법도 알려 주었다. 화면을 보지 않고 반복해서 듣는 것만으로도 학습에 이롭다고 조언했다. 진즉에 알려 주고 싶었던 것들이었다. 윤서는 예지에게 자기가 가끔 들러 공부하는 것을 돕겠다고 했다.

2학년 때 같은 반이 된 뒤로, 윤서는 예지와 3년 연속 다른 반이었다. 반은 달랐어도 3학년까진 예지와 친하게 지냈다. 예지와 멀어진 건 윤서가 4학년 때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한 뒤부터였다. 예지 옷이 더럽다고, 머리 묶은 것도 엉망이라며 놀리는 친구들이 있었다. 할머니가 폐렴으로 입원했을 때였다. 할머니가 퇴원해 집에 돌아오자마자 윤서는 머리를 잘랐다. 그 뒤 다시 기르지 않았다. 폐렴으로 기력이 쇠하신 할머니를 대신하여 집안일을 거들었다.

그즈음 예지의 사시가 재발했다. 시력이 거의 없던 오른쪽 눈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초점 잃은 예지의 눈을 수군거리는 애들이 있었다. 그때 곁에 있어 주지 못했다. 윤서는 친구들의 입방정에 또 오르내리고 싶지 않았다. 예지와 거리를 두면서까지 다른 친구들을 사귀어 보고 싶었다. 친구들 눈에 들려고 애써 밝은 척하고 친구들 말에 무조건 호응했지만, 마음에 맞는 친구는 하나도 없었다. 길에서 예지를 만나면 예지의 어려움을 외면했던 게 생각나 부끄러웠다. 눈길을 피하고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그렇게 멀리서 보고 내심 그리워했다. 6학년에 같은 반이 되었다. 이번엔 예지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윤서는 예지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예지와 다른 중학교를 배정받고 먼저 다가갈 것을 결심했다.

졸업식 이후에, 윤서가 와서 예지가 공부하는 것을 봐주었다. 책을 몇 권 추천했다. 예지와 앉아 책 이야기를 하고, 요즘 유행하는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여느 아이들처럼 영화를 보러 갔고, 돌아오는 길엔 떡볶이를 먹었다. 액세서리 가게에 들러 머리핀을 고르기도 했다. 별일 아닌 거에 깔깔대며 웃었다. 별일 아니었다.

계단에 안전 손잡이가 설치되었다. 예지 아빠가 구청에 민원을 넣었다. 손잡이가 없어 여간 불편한 게 아니고, 예지의 안전도 걱정된다는 거였다. 조만간 해 주겠다던 일이 드디어 실행되었다. 안전 손잡이 공사는 하루 만에 뚝딱 완성되었다. 예지 손에 딱 들어올 수 있게 안전대의 지름이 너무 커서도 너무 작아서도 안 됐다. 아빠는 공사하는 것을 꼼꼼히 지켜봤다. 윤서 아빠도 와서 지켜보았다.

한 주가 더 지나 꽁꽁 언 땅이 녹아들 무렵, 윤서 아빠는 줄자를 갖고 골목골목을 재고 다녔다. 예지 아빠는 수첩에 윤서 아빠가 불러주는 숫자를 받아 적었다. 오래 하지는 못했다. 기침을 계속했다. 뼈마디에 통증을 느꼈다. 두통도 심했다. 바람이 불어와 뼈만 남은 몸을 흔들었다. 예지 아빠는 보온병의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온기가 목을 타고 흘러 뱃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깊은 구덩이가 있다. 온기를 감쪽같이 사라지게 하는. 아빠 몸에 흐르는 피도 모조리 빨아들일 것처럼 꺼먼 입을 벌리고 소용돌이쳤다. 소리도 없이, 흔들림도 없이. 오랫동안 아빠 몸속에 있었다.

아빠가 오랜 시간 외출해 있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최근엔 일주일에 한 번씩 어딜 다녀오곤 했다. 예지가 물을 때마다 아빠는 옛 친구를 보러 간다거나 뭘 좀 알아보러 간다며 둘러댔다. 부쩍 쇠한 몸에, 목소리에도 힘이 없었다. 수시로 약을 먹었다. 예지는 아빠에게 암이 재발한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엄마에게 물어보면, 아빠가 무슨 일이 있겠지 하며 말끝을 흐렸다.

엄마가 쉬는 날, 교복을 맞추고 곧 입학할 중학교를 둘러보았다. 예지는 윤서와 같은 중학교가 아닌 게 못내 아쉬웠다. 한 동네 살아도 번지에 따라 중학교가 갈렸다. 예지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배정됐다. 그곳에 특수학급이 개설되고, 예지는 특수교육 선생님께 수업을 받을 예정이다. 엄마는 중학교 근처에 예지가 주의해야 할 곳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보도블록이 깨진 곳이 있는지, 길에 팬 곳이 있는지 확인했다. 예지는 이런 곳에 걸려 넘어지곤 했다.

집에 오는 길에 붕어빵 점포에 들렀다. 먼저 구워진 걸 먹으며 포장할 걸 기다렸다.

“예지야.” 여자애 목소리였다.

“나야, 서희. 3학년 때 같은 반이었잖아.” 곁에 바짝 다가와서야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어, 안녕?”

계산을 마친 엄마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봉투에서 붕어빵 하나를 꺼냈다.

“예지 친구니? 이거 하나 먹을래?”

서희가 예지 엄마에게 인사하며 붕어빵을 받았다.

“예지 너 나랑 같은 중학교더라.”

“어, 그러니? 잘 됐구나. 예지가 아는 친구가 하나도 없을까 봐 걱정했어.”

예지 대신 엄마가 말을 받았다.

“저 말고도 예지가 아는 친구도 몇 있어요. 예지야, 너 연락처 좀 알려줘.”

예지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어색했다. 5, 6학년 내내 같은 반 여자애들은 예지와 거리를 두었다. 예지도 또래 아이들에게 마음을 닫았다. 서희는 잘 지내보자며 인사하고 갔다. 긴 다리로 겅중겅중 걸어가는 모습이 활달해 보였다.

아빠에게 줄 붕어빵을 품에 안고 왔다.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 곳곳에 외등이 켜졌다. 집으로 오르는 길, 서늘한 바람이 내려왔다. 집 앞 계단에 이르러서는 엄마 손을 놓고 계단 손잡이를 잡았다. 엄마가 뒤에서 예지가 올라가는 걸 지켜봤다. 먼저 올라온 예지가 대문을 두드렸다. 기척이 없다. 엄마는 아빠가 자는 거 같다며 열쇠로 잠긴 문을 열었다.

거실 바닥에 아빠가 쓰러져 있었다. 물컵이 엎어져 바닥에 물이 고였다. 알약 몇 개가 방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엄마가 아빠의 안색과 호흡을 살피고는 119에 연락했다. 예지에게 이불을 가져오라고 해서 아빠 몸에 덮어 주었다. 예지는 아빠 손을 붙잡았다. 엄마는 아빠 얼굴을 손으로 문질렀다. 동네 개들의 컹컹 짖는 소리가 고요를 깨뜨렸다. 그 틈으로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어둠을 가르며 달려왔다. 창문이 여닫히는 소리,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구급차는 아빠와 엄마를 태우고 밑으로 내려갔다. 적막이 내려앉은 집에서 예지는 흐느꼈다. 두 손을 모으고 별일 아니길, 정말 아무 일 아니길 빌었다. 몇 시간이 흐르고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만 아빠 곁에 있어야 한다고, 오늘 밤은 혼자 자라고 했다.

예지는 문이 잘 잠겼는지 확인하고 라디오를 켰다. 벽에 기대어 식은 붕어빵을 먹었다. 아빠가 누워 있던 자리에 그대로 누웠다. 자정을 알리는 소리, 잔잔한 재즈, 클래식이 흘렀다. 어둠과 고요의 강에 잔잔한 물결이 일렁였다.

비릿한 냄새. 얼음판에 끌어올려진 빙어 한 마리. 파닥파닥 서너 번 뛰다가 숨에 차는지 몸통을 벌떡거렸다. 아가미를 벌름거려도 물이 들어오지 않는다. 벌건 눈자위가 애처롭다. 물통에 넣으려다 강으로 되돌려 보냈다. 햇빛이 들었다. 눈이 부셨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 엄마였다. 엄마는 예지를 깨워 끌어안았다. 아빠는 중환자실에 있다고 전했다. 의사는 아빠가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고 했다. 폐암이 재발했고 뇌와 뼈로도 전이됐다. 방사선 치료를 받아 보았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엄마는 비밀에 부쳤던 이야기를 숨 가쁘게 이어나갔다. 아빠는 통증약에 의지해서 하루하루를 버텨 왔다. 이제는 암이 아빠 몸을 거의 다 삼켜버렸다. 예지는 엄마와 병원으로 갔다.

아빠는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서 숨만 쉬고 있었다. 비쩍 마른 몸을 하늘색 담요가 가리고 있었다. 담요 밖으로 나온 손이 힘없이 말려 있다. 예지는 아빠 손가락을 폈다. 손가락 마디와 손바닥을 쓸었다. 앙상한 손에 박인 굳은살의 질감이 고목 껍질처럼 우둘투둘했다. 예지는 아빠 손을 볼에 대고 비볐다. 알고 있었다. 이런 날이 올 줄을. 누구도 말하지 않았을 뿐. 아빠는 화석이 되어 갔다.

뭘 좀 먹어야 한다며 엄마가 데려간 곳은 병원 1층 편의점이었다. 그곳에서 죽을 사서 데워 먹었다. 엄마는 씹을 힘이 없었다. 예지도 그랬다. 호호 불어 입에서 몇 번 우물거리고 삼켰다. 물을 마시고 중환자실 옆 대기실 의자에 앉았다. 엄마는 이마에 손을 갖다 대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무얼 결심한 듯 눈을 뜬 엄마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여기저기 연락을 돌렸다.

예지는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졸업식 날 중식당에서 찍어두었던 동영상을 틀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소리를 내었다.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은, 한낱 형상에 불과했다. 화면 저편의 아빠는 기침하고 볶음밥을 먹고 이름을 불렀다. “예지야, 많이 먹어라.” 이편의 아빠는 움직이지도 소리 내지도 않는다. 하루의 반이 지나도록 부동 상태다. 아빠가 그리웠다. 오후에 한 번 더 있을 면회를 예지는 사물처럼 앉아 기다렸다.

다급하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여럿이 서둘러 가는 소리가 뒤따랐다. 환자가 운명하셨다는 문장 끝에 마침표가 찍혔다. 엄마는 털썩 주저앉았다. “아이고, 예지 아빠.” 북받쳐 우는 소리, 흐느끼는 소리. 아빠는 소리로 가득 찬 세상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식어가는 몸만 남았다. 예지는 마지막으로 아빠를 불러보았다. “아빠. 아빠. 아빠.”

3일이 지났다. 아빠는 이제 형체마저 사라졌다. 가루가 되어 나무 밑에 묻히었다. 장례식에 모인 친지들은 저마다 예지네 딱하다고 아는 소리를 했다. 품앗이하듯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장례식이 끝나면 그들은 그들대로 살 것이다. 예지네와 삶의 영역이 겹치는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에겐 예지 아빠의 자리가 엄연히 존재했다. 예지 아빠의 부재를 슬퍼했다. 함부로 걱정하지 않았다.

2월은 너무 짧았다. 3월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와 달력을 넘겼다. 눈물이 마를 새도 없이 예지는 내일이면 학교에 가야 했다. 예지가 사는 곳 맞은편 언덕배기에 중학교가 있다. 학교에 가려면 개미슈퍼까지 내려가서 길을 건너고 언덕을 올라야 했다. 엄마와 한 번, 윤서와 한 번, 아빠와 한 번 가 본 길. 내일은 혼자 가야 했다. 소지품을 확인하고 가방을 교복 아래 두었다.

엄마는 아침 출근을 늦추었다. 예지가 통학에 익숙해질 때까지 등교를 돕기로 했다. 예지 혼자서도 아침밥을 챙겨 먹고, 학교에 갈 수 있다. 하지만 엄마는 예지에게 외로움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을 것을 걱정했다. 3월 한 달이라도 춥지 않게 붙어 있어야 했다. 엄마도 허전하긴 마찬가지였다. 예지는 교복을 입고 거울을 봤다. 익숙하지 않은 차림이었다. 키가 자라도 입을 수 있게 맞춘 교복은 소매가 길었다. 재킷의 품도 컸다. 대문을 나서기 전, 엄마는 예지를 안았다. 괜찮을 거라며 등을 토닥였다.

3월이라고 해도 아침 공기는 여전히 서늘했다. 입학 첫날의 긴장과 설렘이 찬 공기를 만나 그대로 굳어버리는 것 같았다. 예지는 양손을 맞잡았다. ‘할 수 있어.’ 손을 풀고 한 손으론 손잡이를 잡고 다른 손으론 균형을 잡았다.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 끝 담벼락에 천사의 날개가 흐릿해졌다. 겨우내 눈과 비바람에 젖다 마르길 반복하면서 페인트가 벗겨진 모양이다.

그 집 문기둥에 밧줄이 묶여 있다. 여기가 시작점이다.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문기둥마다 밧줄이 단단히 묶였다. 장례식 후에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지라 누가 묶어 놨는지 알 수 없었다. 예지는 고개를 돌려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밧줄을 잡고 골목을 내려가라 했다. 밧줄은 예지 손안에 꼭 들어왔다. 줄은 팽팽히 당기어져 늘어지지 않았다. 휘어 감을 수 있는 것이면 전봇대를 돌기도 했고, 벽에 박힌 굵은 못에 묶여 있기도 했다. 띄엄띄엄 묶어 놓은 밧줄은 예지가 내려갈 길을 안내했다.

밧줄은 점집에서 끝났다. 왜소한 몸집에 헐거운 교복을 입은 아이가 서 있다. 윤서였다. 윤서는 큰길까지 같이 가려고 예지를 기다렸다. 윤서네 학교는 버스로 세 정거장 거리에 있다. 예지는 윤서에게 밧줄이 설치된 것을 말했다. 윤서가 빙긋이 웃었다.

“아빠랑 동네 어른들이 묶어 놓은 거야. 네가 붙잡고 가라고.”

“응?”

“아빠가 윤서 아빠에게 부탁하셨어. 동네 사람들에게도. 저 맞은편 가파른 길에도 밧줄을 묶어 놓았어. 비 오거나 눈 오는 날 넘어지지 말라고.” 엄마가 밧줄의 정체를 알려 주었다.

예지는 아빠 손을 잡고 오르내리던 길 위에 섰다. 굳은살이 박인 손바닥과 메마른 손가락의 느낌이 되살아났다. 수 분을 잡고 있어야 따뜻해졌던 손. 아빠는 마지막 남은 온기를 쓸어 모아 길 위에 부었다. 개미슈퍼 담장에 개나리가 피었다. 엄마는 식당에 가고, 윤서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예지는 건너편 오르막을 올랐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김 씨는 집에서 똥을 쌀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