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단 쓰자

김 씨는 집에서 똥을 쌀 수 없다

짧은 이야기

by 백수아줌마

김 씨는 집에서는 도통 똥을 눌 수가 없다. 회사에 가야만 똥을 쌀 수 있다. 집에선 아무리 변기에 오래 앉아있어도 똥이 나오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이 되면, 주말 내내 웅크렸던 똥이 기지개를 켰다. 예고라도 하고 움직이면 좋으련만, 이틀 묵은똥은 부르르 떨더니 항문을 향해 돌진했다. 출근길 만원 버스에서, 김 씨는 항문을 조이는 데 집중한다. 버스가 갑자기 서거나 흔들려도 실수하지 않도록 신경을 바짝 써야 한다. 회사에 도착할 즈음, 버스 탈 때부터 꽉 조여 온 괄약근의 힘이 빠지려 든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참아야 한다. 항문을 다시 바짝 조이고 잰걸음으로 회사로 간다. 정문 앞. 문을 여느라 힘을 주면 쌀 수도 있다. 급해도 회전문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야 한다. 사원증을 찍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아는 사람이 보이면 판에 박은 표정으로 인사한다. 웃으면서 항문 조이기. 김 씨가 10년 걸려 완성한 기술이다. 9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이에게 가볍게 인사하고는 화장실로 곧장 들어간다.

화장실 가장 안쪽 칸으로 들어가서 바지를 벗고 앉는다.

“뿌드득, 북북, 뿌지직.”

마지막으로 방귀를 ‘북’ 뀌고 나면 끝이다. 눈가에 눈물이 살짝 맺혔다. 안간힘을 쓰고 참아낸 고통이 해소되었다. 배설 후의 후련함. 17년을 다닌 회사에서 김 씨의 거창한 영역표시는 오늘도 어김이 없다. 주인 정신의 실현. 짐승이 제 영역에서 똥을 누듯 그도 그리했다.

언제나 6시에 일어나서 7시 30분까지 출근했다. 정식 출근 시간은 8시지만, 경기도에 사는 김 씨는 6시에는 일어나야 늦지 않게 출근할 수 있다. 게다가 똥을 눠야 하니 그 시간도 배분해야 했다. 아침은 거르거나 두유 하나를 마셨다. 점심, 저녁은 모두 회사에서 먹었다. 정시 퇴근은 5시지만 정시에 퇴근한 적은 없다. 보통은 9시, 일이 많을 땐 11시나 12시에도 퇴근했다. 평일에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퇴근 후 자는 애들 얼굴 보는 게 전부였다. 아침부터 밤까지의 시간. 김 씨의 생체리듬은 회사에 완벽히 맞춰 있다. 17년간 반복된 일상이었다. 오래 입고 있느라 누렇게 바랜 와이셔츠 깃, 엉덩이가 해진 바지. 옷은 1년을 못 버티고 낡아 버렸다. 옷이 깔끔해 보일 때는 처음 서너 달뿐이다. 어느샌가 김 씨의 차림은 누추한 게 자연스럽다고 인식됐다.

월례 교육 때마다 ‘어렵다, 어렵다’ 분위기를 잡더니 회사가 구조조정을 한다. 김 씨가 소속되어 있는 사업부가 정리될 예정이다. 소수는 남겨질 것이고, 다수는 해고될 것이다. 마흔다섯에 차장 직급인 김 씨는 안전권이 아니다. 그래서 오늘도 야근이다. 성과가 없을 때는 성실이라도 보여야 한다. 그는 이미 완성한 보고서를 한 번 더 봤다. 업무량이 많다고 불평한 적은 없다. 도리어 업무량이 적으면 불안했다. 그는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이어야 했다.

김 씨는 자신이 회사의 필수 구성원이라고 생각했지만, 인사팀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해고 명단에 올랐다. 팀장의 어쩔 수 없었다는 뻔한 말을 듣고 소주 한 잔에 울화를 쏟아부었다. 바뀌는 건 없었다. 인사팀과 몇 차례 면담하며 한 달이 지났다. 헤드헌터에게 이직할 곳을 문의해 보았지만 마흔다섯에 직장을 새로 얻기 쉽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2차 정리 해고 명단이 발표되었고 거기엔 팀장도 있었다. 마흔일곱에 부장 직급이었던 팀장의 자리는 서른아홉의 정 차장에게 돌아갔다. 45세 이상 근무자 중에 극히 소수만 남기고 나머지 인원을 축출했다. 소수에 못 든 이들은 복날 닭장에서 끄집어내지는 닭처럼 뽑혀 나갔다.

이직할 데를 찾아보았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중소기업에서는 팀원과의 조화가 안 된다며 거절당했다. 팀원으로 맞이하기엔 나이가 많고 팀장으로 받들기는 곤란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연봉이 안 맞아 오래 못 버틸 거라는 말이 면접관의 입에서 나왔다. 괜찮다는 지원자의 대답은 무시됐다. 중견 기업이나 대기업의 빈자리는 김 씨 외에도 지원자가 많았다. 서류를 통과해도 이중 삼중의 면접 과정에서 발을 돌려야 했다.

해고일까지 남은 한 달이 거의 지나갈 무렵, 아내는 방문학습지 교사 연수를 마쳤다. 월 이백만 원이 안 되는 소득이지만 이것저것 따질 형편이 아니었다. 아내는 그동안 아이들 공부를 봐줬던 경험이 있어서 잘할 수 있다고 했다. 아이들은 늦게 귀가하는 엄마를 대신하여 저녁을 차려 먹었다. 그들은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맏이를 낳은 뒤 줄곧 전업주부였던 아내의 상심이 클 줄 알았는데 그녀는 의외로 현실 순응이 빨랐다. 조금 덜 쓰고 살아도 살 수 있다며 실업급여도 나오니까 조바심 내지 말라고 김 씨를 위로했다.

2개월을 분주히 알아보았지만 김 씨는 옮길 곳을 찾지 못한 채 결국 자리를 비워 줘야 했다. 컵, 가족사진, 서류철, 필기구, 수첩, 미니 선인장. 그 외에 더 들고 올 것이 없었다. 김 씨네 가족은 이제 실업급여와 아내가 벌어들이는 방문학습지 수수료로 가계를 꾸려야 했다. 마지막 퇴근길에 치킨 한 마리를 사 들고 집에 가서 아이들과 먹었다. 아내가 귀가하며 맥주를 사 왔다. 아내는 그에게 그동안 애썼다며 건배하자고 했다. 그렇게 김 씨의 17년 회사 생활이 마무리되었다.

퇴직 후 김 씨의 일상은 서두를 게 없었지만, 마음은 늘 어수선했다. 방문학습지 교사 일은 예상보다 힘들었다. 아내는 오전 10시에 지국에 가서 교재를 받는다. 그날 가르칠 내용을 공부하고, 상담 기술을 배운다. 점심을 먹은 뒤엔 15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어 가정 방문을 한다. 보통 8시쯤 일을 마치는데, 일정이 꼬이면 밤 10시가 넘어 귀가하는 때도 있다. 그런 아내를 대신해 아침이면 그가 아이들을 깨우고 토스트를 구웠다. 아이들은 학교로, 아내는 지국으로 가면, 김 씨는 컴퓨터 앞에 앉는다. 취업사이트에 접속하여 이직할 만한 업체를 알아본다.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채 있기는 처음이었다. 그는 바람에 나부끼는 민들레 홀씨처럼 정착할 곳을 탐색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수정하여 업체 몇 곳에 보냈다. 하루 중 가장 중요한 과제를 마치고 나면 그는 화장실 변기에 앉는다. 그는 벌써 열흘째 똥을 누지 못했다. 진척 없는 구직활동 못지않게 그의 배변 활동도 꽉 막혔다. 배에 힘을 줄 때마다 나오는 건 방귀뿐이다. 내일은 회사 후배와 저녁 약속이 있다. ‘회사에선 똥을 누겠지.’하고 배에서 힘을 뺐다.

퇴사 후 2주가 지나도록 변을 보지 못했다. 늘 규칙적으로 어쩌면 과민할 정도로 아침마다 대변을 봤는데 회사를 나온 뒤부터 변비에 시달렸다. 그러던 중, 후배로부터 이직할 곳을 알아봤으니 점심에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후배를 만나러 회사 근처에 가자, 뱃속에서는 오랜만에 곧 폭죽이 터질듯한 신호가 왔다. 김 씨는 회사 로비를 지나 9층으로 올라갔다. 화장실 가장 안쪽 칸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이 주 동안 묵은똥을 비워낼 수 있었다. 김 씨는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후배를 만나 회사 소개를 받았다.

후배가 주선한 자리로 이력서 및 자기소개서를 내고 일주일이 지나 면접 약속이 잡혔다. 면접 장소는 이전 회사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면접을 보기 전 들러서 대변을 보고 왔으면 좋았으련만, 김 씨는 회사를 그냥 지나쳐 왔다. 그것이 사단이었다. 면접을 보는 내내 뱃속이 활화산처럼 부글부글 끓었다. 방귀가 계속 피식피식 나오자, 면접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항문을 뺀 몸 전체가 뻣뻣이 굳었다. 불편한 기색을 감추려 애썼지만, 면접자의 질문에 답하기 힘들었다. 탈출하려는 똥을 항문이 겨우 막고 있었다. 더는 참기 어려웠다. 수 분 내로 터지고 말 것 같았다. 면접 보다가 똥을 지렸다고 소문이 나느니 이번 회사를 포기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김 씨는 오늘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으니, 다음에 연락을 달라고 말하고는 면접관이 일어나기도 전에 면접실을 빠져나왔다. 허둥지둥 예전 회사로 갔다.

로비 직원에게 9층에서 약속이 있다고 말했다. 김 씨의 얼굴을 익히 알고 있던 직원은 차단기를 통과시켜 줬다. 9층 화장실 가장 안쪽 칸. 바지를 내리자마자 똥이 쏟아졌다. 변기에 가득 찬 묵은똥을 내려보냈다.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 봐 조심하느라, 복도에 사람이 있는지 먼저 확인했다. 아무도 없을 때 잽싸게 엘리베이터로 갔다. 문이 열렸다. 나 이사다.

“김 차장. 오랜만이야.”

“아, 예. 안녕하세요?”

“회사에 아직 정리 안 된 게 있나?”

“아니요. 일이 있어 지나다 잠시 들렀습니다.”

어색한 공기가 돌았다.

1층에서 나 이사에게 인사를 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버스에서 내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 그에게 오늘 갑자기 배가 아팠다고 답해 주었다. 후배는 이쪽 자리는 어렵겠다며 다른 자리를 찾아보겠다고 했다. 김 씨는 언제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약속을 잡았다. 그날이 내일이다.

약속했던 시간보다 30분 일찍 회사로 갔다. 후배는 퇴근 후 밖에서 보자고 했지만, 김 씨는 회사 아무개 얼굴도 좀 봐야겠다며 사무실로 간다고 했다. 차단기를 통과하여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9층을 눌렀다. 다른 사람이 몇 명 같이 탔지만,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9층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 가볍게 인사했다. 여느 때처럼 얼굴은 미소 짓고 항문은 바짝 조였다.

‘긴장을 풀고 해방을 누리자.’ 김 씨는 화장실 가장 안쪽 칸으로 갔다. 누가 있다. 아쉬운 대로 옆 칸에 들어가 앉았다. 안 나온다. 옆 칸이나 지금 앉아있는 곳이나 같은 화장실인데 똥을 못 눌 리 없다.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이제 나오너라아. 읍!’ 손으로 배를 내리눌렀다가 마지막에 짧고 굵게 힘을 딱 줬다. 똥이 막 나오려는 순간, 옆 칸에서 벽을 두들겼다. 그 바람에 도로 들어갔다. ‘이런 제길, 어떤 새끼야?’ 당장 나가서 드잡이라도 하고 싶었다. 참았다.

“네?”

“화장지가 떨어져서 그러니 거기 화장지 있으면 좀 주시겠어요?”

김 씨는 휴지를 둘둘 말아서 칸막이 밑으로 보냈다.

“여기요.”

“고맙습니다.”


어차피 실패한 김에 옆 칸 사람이 뒤처리를 끝내길 기다렸다. 그가 나가면 옆으로 옮길 작정이었다. 그가 화장실을 나간 뒤 아무런 기척이 없을 때, 김 씨는 옆 칸으로 후다닥 이동했다. 앞서 똥 싼 이의 똥내가 진동했다. 여긴 김 씨가 똥 누는 자리였는데 빼앗기고 말았다. 분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김 씨는 바지를 내리고 힘을 주었다. 단단히 굳은, 굵은 똥 덩어리가 힘겹게 문을 열었다. 뒤이어 묽은 변이 쏟아졌다. 꼬리에 있던 변까지 뿌직 뿌직 기어 나온 뒤에 항문이 닫혔다.

뒤처리하려고 화장지 걸이로 손을 뻗었다. ‘아뿔싸! 이 칸에 화장지가 없지.’ 아까 옆 칸으로 옮길 때 화장지를 들고 왔어야 했는데, 급한 맘에 몸만 오고 말았다. 김 씨는 화장실에 누군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5분이 흘렀다. 그는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뒤처리를 어떻게 할지 고심했다. 지갑에 들어 있는 카드 영수증을 구겨서 닦는 걸 생각해 봤다. 좋은 대안이 아니다. 말끔히 닦이지도 않고 모서리에 긁힐 수도 있다. 화장실은 여전히 적막했다. 화장실로 오는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5분이 더 흘렀다. 김 씨는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정 차장, 아니 정 팀장. 나 지금 9층 화장실인데 화장지가 없어. 화장지 좀…….”

배변의 개운함보다는 수치가 몰려왔다. 앞선 이의 똥내와 김 씨의 똥내가 섞여서 화장실 냄새가 고약했다. 면접도 배변 때문에 망쳤는데 후배 앞에서 또 이렇게 체면을 구기다니. 후배는 그에게 장염이 있느냐고 물었다. 김 씨는 평소엔 변을 못 누다가 회사만 오면 변이 급해진다고 말하려다 말았다. 똥 누러 회사에 들른다는 것이 후배 앞에서 체면이 서지 않았다. 팀장이 된 후배는 일은 많은데 인력은 없고 위에서는 계속 쫀다며 하소연했다. 김 씨는 정 팀장의 배부른 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잔에 소주를 부었다. 술값을 계산하려는 후배를 제치고 카드를 냈다. 다음에 또 보자며 헤어졌다.

실업급여가 끝나기 전에 재취업해야 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네 군데 면접을 보았지만, 최종 통보는 불합격이었다. 아직 40대 중반 한창 일할 나이임에도 재취업이 쉽지 않다. 엔지니어였으면 쉬웠을까. 문과 출신 김 씨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사무직이나 관리직은 어느 회사나 넘쳐났고, 있는 인원마저 감축하려 들었다. 40대에 20대에 겪었던 취업난을 다시 겪을 줄은 몰랐다. 40대의 취업난은 미래가 불안한 것에 더하여 가장이라는 책무가 어깨를 짓눌렀다.

쉽사리 해결될 것 같지 않은 그의 취업 문제에 더하여 김 씨의 변비 문제도 나날이 그를 괴롭혔다. 보름째 장에 박힌 변은 딱딱하게 굳어 화석이 됐는지 아무리 힘을 주어도 나오지 않았다. 배는 늘 더부룩하게 가스가 찼고 누르면 아팠다. 변을 비집고 나온 방귀는 냄새가 아주 고약했다. 그나마도 이따금 피식피식 새어 나왔다. 출구가 꽉 막혀서 그런지 방귀조차 ‘북북’ 시원하게 터져 나오지 않았다. 조만간 회사에 가 봐야겠는데 이번엔 무슨 이유를 대고 들어갈지 막막했다.

바쁜데 자꾸 불러내기 미안하기도 하고, 아직 갈 곳을 찾지 못한 것이 부끄럽기도 해서 후배와 약속을 잡지 않았다. 변비를 견디지 못할 때면, 9층에 볼 일이 있다며 로비 직원에게 부탁하여 차단기를 통과했다. 그 이유도 여러 번 쓰고 나니, 민망하여 다시 말할 수 없었다. 이쯤 되면 회사에 미련이 있어 자꾸 드나든다고 소문이 날 판이었다. 마지막으로 회사를 갔을 때 로비에서 나 이사를 만났다. 나 이사는 김 씨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누구를 만나러 왔냐고 물었다. 독사 같은 영감이었다. 김 씨는 경력증명서를 떼러 왔다고 둘러댔다. 경력증명서는 우편이나 팩스로 받아도 되었지만, 지나는 길에 들렀다고 얘기했다. 나 이사를 만났던 일을 떠올리고 나니, 아무래도 회사에 가서 변을 보는 것을 포기해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컵에 물을 받고 알약을 집어 들었다. 약국에서 산 초록색 변비약은 묵은 변으로 꽉 막힌 장을 뻥 뚫어줄 거 같았다. 그러나 뱃속에 폭풍만 일으킬 뿐이었다. 그는 한 번만 더 속아보잔 생각으로 알약을 물과 함께 꿀꺽 삼켰다. 점심으로 데친 양배추를 쌈장에 찍어 먹었다. 김치도 한 번에 세 쪽씩 먹었다. 먹고 나서 싸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그에게는 거꾸로였다. 김 씨는 싸기 위해 먹었다. 아침에 일어나 변기에 앉고 아침밥 먹고 변기에 앉고 점심밥 먹고 변기에 앉기를 반복했다.

식사를 마친 뒤에 커피를 한 잔 마셨다. 뱃속에서 전율이 찌르르 흐른다. 대장과 직장의 떨림. 이번에야말로 똥을 싸겠다는 다부진 결심을 하고 변기에 앉았다. 똥은 나올 듯 말 듯 애를 태웠다. 변기에 앉은 지 30분이 지났다. 아랫배를 손으로 누르며, 마지막으로 ‘읍’하고 힘을 주었다. 실패했다. 맥없이 화장지로 항문을 닦고 바지를 올렸다. 뱃속의 전율을 가라앉히려고 핫팩을 배 위에 올렸다.

‘도무지 이대로는 안 되겠다. 내일은 병원에 가야겠다.’

아내가 추천해 준 동네 의원을 찾았다. 소화기 내과를 잘 보는 곳이라고 했다.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렸다. 배에 가스가 부글부글한 것이 어째 방귀가 나오려는가 보다. 괄약근을 조절하여 조심스럽게 방귀를 내보냈다. 방귀를 소파에 가둘 셈으로 엉덩이는 1mm도 들지 않았다. 소리 나지 않게 최대한 신경을 썼으나 냄새는 잡지 못했다. 고린내가 진동했다. 옆에 앉았던 아줌마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멀찌감치 떨어진 곳으로 옮겼다. 김 씨는 엉덩이를 소파에 딱 붙인 채 손을 죽 뻗어 테이블 가장자리에 놓인 신문을 집었다. 허리를 굽히느라 배에 압력이 가해졌다. 냄새를 가둔다고 한 행동이 도리어 방귀를 한 번 더 뀌게 했다. 이번엔 ‘뿡’하고 소리도 났다. 허겁지겁 신문을 들어 올려 좌우로 넓게 펼쳤다. 얼굴을 가리면서 신문지 냄새로 방귀 냄새를 덮으려는 의도였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집중해서 읽는 척했다. 먼저 온 아줌마가 진료를 마치고 나갔다. 신문을 원래대로 접어놓고 이름이 불리길 기다렸다.

“변비가 심하다고요?”

“네, 보름 넘게 대변을 못 봤어요”

“변비 증상이 언제부터 있었나요?”

“변비가 생긴 지 두 달 정도 됐어요. 채소 많이 먹고 물도 많이 마셔요. 약국에서 파는 변비약도 먹어봤는데 배만 아플 뿐 변이 나오질 않아서 괴롭네요.”

“최근에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식습관이 불규칙적이라든가 생활에 변화가 있었나요?”

김 씨는 실직한 것을 말하려다 말고, 고개를 흔들었다.

의사는 김 씨의 배를 청진했다. 그런 다음 손으로 배 여기저기를 꾹꾹 눌렀다.

“여기 누르면 아픈가요?”

“네, 조금 아픕니다.”

의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책상으로 가서 컴퓨터 자판을 두들겼다.

“장에 변이 꽉 찼네요. 가스도 많고요. 약을 처방해 드릴 테니 드셔 보시고 경과를 봅시다. 먹는 약 5일분 처방해 드릴 테니 다음 주에 다시 오세요.”

병원을 다시 찾았을 때, 김 씨의 낯빛은 짜장 묻은 단무지 같았다. 똥독이 모두 얼굴로 올라온 모양이었다. 5일분의 약을 착실히 먹었지만 달라진 점은 없었다. 그가 먹은 음식들은 장에서 이상 발효하며 가스를 만들어 냈다. 배변을 시도할 때마다 피식피식 방귀만 새어 나왔다. 의사는 그에게 항문외과에 가서 관장하기를 권했다.

내과를 나와 근처 항문외과로 갔다. 김 씨가 증상을 얘기하자, 의사가 치질이 있냐고 물어봤다. 김 씨는 치질이 있는 것 같은데 불편한 정도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럼, 한번 확인해 보죠. 벽을 보고 침대에 누워서 바지를 엉덩이 밑으로 내려 주세요.”

그는 의사의 지시대로 침대에 올라가 누웠다. 간호사가 구멍이 뚫린 초록 천을 덮어주었다.

“조금 불편할 수 있습니다.”

장갑 낀 손가락이 항문을 푹 찔렀다.

“치핵이 있네요. 심하진 않은 편이니 약 드시고, 하루 5분씩 좌욕하세요. 그리고 변이 안 나오면 배에 너무 힘을 주면 안 돼요. 치핵 심해져요. 변을 오래 못 봤다니, 관장을 하시고 가세요.”

잠시 뒤 호스가 항문을 저격했고 액체가 주입됐다. 바지를 올리고 화장실 옆에서 대기했다. 배가 묵직했다. 뱃속에서 천둥이 치더니 결정적인 신호가 왔다. 김 씨는 일생 가장 많은 양의 똥을 쌌다. 20일 쌓인 똥은 양이 어마어마했다. 3번에 걸쳐 변을 누고, 물을 내렸다. 그는 가벼워진 몸으로 병원을 나왔다. 몸은 개운했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회사에 다니는 내내, 몸의 리듬이 회사에만 맞춰졌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공원 벤치에서 잠시 쉬는데 산책 중이던 개가 멈췄다. 엉덩이를 낮추더니 똥을 눈다.

‘저 개는 아무 데서든 잘만 누는구나.’

김 씨는 자기 신세가 동네 개보다도 못한 것 같았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기에, 집보다는 회사가 그의 영역이었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끼니를 회사에서 해결했고, 변도 회사에서 보았다. 그가 자리에 붙어서 시간만 채운 것은 아니었다. 명석하다는 평을 받았고, 한때 우수사원 표창을 받은 적도 있다. 과장이었을 당시 다른 회사의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거절했다. 익숙한 환경을 두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번거로운 까닭도 있지만, 거절의 주된 이유는 회사에 대한 의리였다. 6년이 지난 지금, 그는 일자리를 잃고 공원 벤치에 앉아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애들도 곧 집으로 올 텐데, 행여 이런 몰골로 길에서 부딪칠까 두려웠다. 그는 운동복 위에 등산 점퍼를 걸치고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서둘러 집으로 갔다.

아파트 입구로 접어들었을 때 편의점에서 딸아이가 나왔다. 반가워서 부르려다 친구가 옆에 있는 걸 보고 멈칫했다. 우려하던 상황이었다. 김 씨는 얼른 뒤돌아서 내려갔다. 길가 버스 정류장에 한 무리의 중학생이 버스에서 내렸다. 그들 사이에 아들도 끼어 있다. 앞뒤가 막힌 상황. 김 씨는 머리를 빨리 굴려야 했다. 한창 민감한 사춘기 자녀들에게 하필 친구들 앞에서 추레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면 말이다.

상가 모퉁이를 돌아 주차장 입구로 내달렸다. 트럭 뒤편에 숨으려고 발을 딛는 순간 뭔가 물컹한 것이 발에 밟힌 느낌이 들었다. 개똥이었다. ‘이런 개새끼!’ 김 씨는 발을 살짝 들어 옆으로 이동한 뒤 밖을 살폈다. 남학생들이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지나갔다. 소리가 잠잠해졌을 때 상가 주차장에서 1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랐다. 운동화 뒷부분에 묻은 똥이 계단에 찍히지 않도록 발꿈치를 들었다. 절뚝이며 계단을 올라 상가 화장실에 들어갔다. 화장지를 뜯어 신발에 묻은 똥을 닦아내고 바닥에 들러붙은 것은 수돗물로 씻었다. 화장실에 개똥 냄새가 진동했다. 작업 중에 혹여 누가 들어올까 봐 화장실 문을 잠갔다. 일을 거의 마쳤을 무렵, 누군가 손잡이를 거칠게 당겼다. 서둘러 신발을 신고 문을 열어 주었다.

대박부동산 최 사장이었다.

“안녕하세요. 문을 닫으면서 실수로 잠금장치를 눌렀나 보네요.”

“네.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말은 괜찮다고 했지만, 미간의 주름은 펴지지 않았다. 그는 코를 킁킁대며 화장실 안을 살폈다. 개똥을 밟았다고 하면 웃음거리가 될 거고, 공용화장실 개수대에서 운동화를 씻었다고 하면 비난까지 받을 터였다. 김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화장실을 나왔다.

아들과 딸은 각자 방에 있었다. 문소리를 듣고도 나오질 않는다. 딸아이 방문을 노크했다.

“어어.” 딸아이는 기분이 보통일 땐 길게 ‘어어’로 대답하고, 기분이 나쁠 땐 ‘어’로 짧게 끊어 대답한다. 이번에는 길게 ‘어어’이다.

“뭐하니?”

“친구랑 문자 주고받아. 아빤 운동하고 왔어?”

“아니, 병원 다녀왔어.”

“어어.” 병원 다녀왔다는데 더 묻질 않고 핸드폰을 본다.

딸은 뭐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김 씨의 실직도 그랬다. 뉴스에서 한두 번 들어본 일이 자기 가족에게도 생겼다는 것일 뿐. 저녁을 차려 먹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빠가 전처럼 용돈을 자주 주지 않는다는 점은 아쉬워했다.

이번엔 아들 방을 노크했다. 아들은 대답 대신 방문을 열었다.

“아빠 다녀오셨어요.”

아들은 막 컴퓨터를 켠 모양이었다. 한창 게임하던 중이었다면, 다녀오셨냐는 인사도 못 들을 뻔했다.

“요즘 학교 공부는 어렵지 않니?”

“네.” 아들 역시 더는 말이 없다.

어쨌거나 아들도 아빠를 못 본 것은 확실했다.

김 씨는 담배를 주머니에 넣고 밖으로 나갔다. 회사 다닐 때는 점심 먹고 나서 흡연 장소에서 동료들과 삼삼오오 모여 담배 한 개비 피우곤 했다. 오전 중에 받았던 스트레스를 담배 한 모금과 몇 마디 잡담으로 날려 보냈다. 더러 다른 팀 사람을 만나 사내 소식을 듣기도 했다. 흡연이 건강에는 해롭지만 내심 회사 생활의 멋이라고도 생각했다.

후미진 곳에 가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 개비 다 피우고 나니 할 일이 없었다. 이따금 누군가 지나가면 가만히 있기 겸연쩍어 핸드폰을 봤다. 퇴사한 지 4개월이 지난 지금은 벨 한 번 울리지 않고 지나는 날이 일반이다. 회사를 나오고 두 달까지는 퇴직을 몰랐던 다른 팀원이나, 거래처 직원이 연락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퇴사 사실을 알리고 가벼운 안부 정도 묻고 답했다. 그나마도 이젠 끊겼다. 제법 친분이 있었던 거래처 직원에게는 몇 번 일자리 소개를 부탁하고 싶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늦가을 바람이 서늘했다. 바람에 낙엽 몇 개가 뒹굴어 왔다. 김 씨는 낙엽 하나를 집어 들었다. 얼마 전까지 생생했던 잎은 그새 바짝 말랐다. 손에서 부스러졌다. 봄에서 여름에 이르는 시간은 연속과 번성이다. 가을에서 겨울에 이르는 시간은 단절과 소멸이다. 봄에서 여름이 되기까지 나무는 계속해서 푸르지만, 가을에 절정에 이른 단풍빛이 바래고 나면 이내 똥색으로 변한다. 나무가 잎을 모두 떨구고 나면 겨울이다. 나무는 제 가진 잎들을 겨울의 아가리에 모두 빼앗기고 몸체 하나로 겨울을 난다. 김 씨도 나무처럼 혼자 버틴다.

손을 털고 집에 가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팀장이었다. 김 씨가 퇴직 후, 한 달 있다가 퇴직한 팀장은 학원 강사였던 아내와 함께 친척이 운영하던 학원을 인수했다.

“예, 팀장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죠?”

더는 팀장이 아니었지만, 그는 오랜 습관으로 그리 불렀다. 팀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 차장, 요즘 뭐 해?”

“쉬고 있어요. 이때 아니면 언제 쉬어 보겠어요.”

김 씨가 실없이 웃었다.

“그럼 내일 소주 한 잔 어때?”

“네, 좋죠.”

일정이 하나 생겼다는 것이 뿌듯했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올라갔다.

“힘들지?” 소주를 한 잔 비우고 난 팀장의 첫마디였다.

“다 그렇죠, 뭐.” 팀장의 빈 잔에 소주를 따랐다.

팀장은 불판에 구워진 삼겹살을 연신 집게로 집어 그의 접시에 올려 주었다.

“김 차장, 입사 전에 영어 가르친 적 있다고 했지? 학부 전공도 영문과고 말이야. 나랑 같이 일하자. 영어 강사가 그만둔대. 젊은 풋내기 강사야 많지만, 믿음직하지 않아. 나랑 손발이 맞는 사람이 그립기도 하고.”

“대학원 다니면서 학비를 대려고 학원에서 2년 일했죠. 그마저도 예전 일인데 제가 강사를 하기엔 좀 무리지 않을까요?”

“난 학원 운영한 적 있냐? 아내 믿고 하는 거지. 그런데 일 자체보다는 사람이더라. 누가 하느냐가 중요해. 열정을 쏟아 일해 본 사람한테는 무슨 일을 맡겨도 결국엔 해내더라. 사업부 바꿔서 이직해도 다들 일하잖아. 인수인계만 받고 말이야. 비슷해. 보고서 작성하는 것, 프레젠테이션 하는 것, 영업하는 것 다 관련 있어. 대상이 학생이라는 것일 뿐이지. 부담되면 아르바이트한다 생각하고 한번 해 봐. 내가 학원에 있는 교안이랑 커리큘럼 몇 개 줄게.”

회사 경력과 관련된 일만 찾고 있던 김 씨에게 팀장의 제안은 뜻밖이었다. 한편으론, 영문학 전공에 주재원으로도 수년 있었고 업무상 계속 영어를 써왔던 걸 생각하면 못 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 씨는 아내와 의논해 보겠노라고 했다. 팀장은 벼르고 왔는지 헤어질 때 학원 팸플릿, 강의 교안 등의 서류 뭉치가 든 가방을 그에게 건넸다. 김 씨는 얼떨떨해하면서도 자기를 믿고 불러주는 팀장이 새삼 고맙기도 했다.

가족회의가 열렸다. 김 씨가 전에 하던 해외 영업 및 마케팅 관련 분야면 가족회의는 필요하지 않다. 그가 알아서 결정하면 된다. 학원 강사는 다르다. 오래전 잠시 해 봤다고는 하나 경력으로 치기엔 너무 짧은 기간이었다. 급여 수준이 낮은 것이 문제였다. 초임 강사 월급은 전에 받던 월급의 반 정도 되었다. 아이들에게 드는 돈은 점점 커지고, 은행 대출도 남아 있는 형편에서 강사 자리를 선뜻 맡을 순 없었다. 실직한 처지에 무얼 가리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창 일할 중년의 나이에 새로운 진로를 뚫는 것은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내는 전처럼 일반 회사에 취직하기를 바랐다. 김 씨가 안 되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쓸 것을 걱정했다. 그의 경력이 끊기고 단기 계약직으로 직업이 굳어질까 불안했다.

아내는 일하느라 김 씨의 일거수일투족을 볼 일이 없지만, 아이들은 달랐다. 점점 초췌해지는 아빠를 지켜보며 전처럼 바쁜 게 낫다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든 당장 시작하는 게 필요해 보였다. 아이들은 김 씨가 다닐 학원이 집에서 멀다는 점에 안도했다. 아빠의 어설픈 시행착오를 친구들에게서 전해 듣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결정은 결국 김 씨 몫이었다. 그는 곧 끝나가는 실업급여 기간을 헤아려 보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래, 어디에 소속되지 않은 채 있기는 처음이었다. 실업급여 기간은 일종의 유예기간이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 취직해야 한다. 그가 퇴직금으로 받은 돈은 은행에 넣어둔 상태 그대로였다. 계속되는 불합격 통보에 창업도 생각하고 있었다. 너나 할 거 없이 퇴직 후에 차린다는 치킨집을 열 자신은 없었다. 업무 인수 기간은 한 달이다. 그 기간에 준비하면 중등생을 대상으로 문법 및 독해 강의가 가능할 것 같다. 김 씨는 딱 6개월만 도전해 보고 반응이 좋지 않으면 다른 일을 찾아보겠다며 아내를 설득했다.

아침 일찍 학원에 가서 강사실 빈 책상에 앉아 강의안과 교재를 살펴보았다. 유명 강사의 수업 동영상을 시청하고 참고할 점을 메모했다. 원장과 점심을 먹고는 현직 영어 강사를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아직 서른이 안 된 청년이었다. 학원에서 강사를 하며 영문학 석사 과정을 마쳤고, 영어 전문 학원으로 옮길 예정이었다. 그에게서 가능한 한 많이 배워야 했다. 김 씨는 커피를 건네며 잘 부탁드린다고 했다. 다행히 선임은 서글서글하고 친절했다. 자신을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김 씨에게 부담스럽다며 윤 선생이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그는 김 씨에게 김 선생님이라 부르며 예우했다. 김 씨가 젊었다면 경쟁자로 보고 경계했을지 모른다. 그는 후임 강사의 나이를 듣고는 중년의 나이에 갑작스러운 실직을 당한 김 씨를 안타깝게 여겼다. 한편으론, 남들처럼 회사에 취직하지 않아 생긴 불안감을 다소 덜어냈다.

병원에서 관장을 받고 보름 동안 배변을 하지 못했다. 약국에서 관장약을 여러 개 샀다. 약사는 관장약을 자주 쓰면 나중엔 관장약 없이 배변하는 게 어려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수습 시작 전날, 김 씨는 관장약으로 묵은똥을 비워냈다. 산뜻한 몸으로 학원에 갔다. 회사에 출근해서 변을 보던 습관대로 학원에서도 똥을 눌 수 있기를 기대했다. 매일 배변을 시도했지만, 낯선 건물, 낯선 화장실 탓인지 변은 여전히 항문을 뚫고 나오지 못했다. 아침마다 학원 문을 열고 커피를 한 잔 타서 강의실을 돌아다니며 마셨다. 학원 환경에 적응하려는 방책이었다. 이런 노력에도, 수습 기간에 관장약을 한 번 더 사용했다. 관장약에 계속 의존할 것이 걱정됐다. 김 씨는 학원이 온전히 제 터전이 되면 편하게 똥을 눌 수 있을 거라고 자신을 달랬다.

한 달이 지났다. 정식 강사로서 첫 출근일. 김 씨는 와이셔츠를 반듯이 다려 입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버스를 타고 시계를 봤다. 학원엔 9시 전에 도착할 것이다. 도착지에 거의 다다를 무렵, 뱃속에 똬리를 튼 커다란 똥이 꿀렁거렸다. 이어 방귀가 피식 새어 나왔다. 대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지난 6개월간 밀어내는 데 골몰했던 항문은 이번엔 바짝 조이는 데 힘썼다. 매일 아침 출근길의 긴박감이 떠올랐다. 방울뱀이 꼬리를 흔드는 것처럼, 뱃속에 사르르 전율이 흘렀다. 긴장감이 바짝 들었다. 버스 노선을 힐끗 봤다. 학원까지 세 정거장 남았다. 한 정거장을 남겨두고 교통카드를 찍고 지갑을 가방에 넣었다. 문 앞에 서서 버스가 정차하기를 기다렸다. 버스에서 내려 학원으로 가는 최단 거리와 학원 문을 여는 가장 효율적인 동작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문이 열렸다. 잰걸음으로 학원으로 갔다. 정문을 열고 2층 화장실로 올라가자마자 바지를 내렸다.

“뿌드득, 북북, 뿌지직.”

머리가 나오고, 한참이 지나서 꼬리까지 다 나왔다. 드디어 해냈다. 김 씨는 주먹을 불끈 쥐고 똥 싼 값을 다하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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