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호(tahoe lake)

-미국 사는 즐거움, 여행.

by 백수아줌마

샌프란시스코에서 차로 4시간 30분을 달려 캘리포니아와 네바다의 경계에 이르면 타호 호수가 있다. 최대 수심 501미터로 미국에서 두 번째로 깊은 호수라고 한다. 산으로 병풍을 친 고도 높은 곳의 담수호, 물가에 이르면 두 손을 모아 한 모금 마셔보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물이 맑다. 물을 떠마시는 대신 손을 물에 담그고 한번 씻어 본다. 손을 씻으며 감정의 찌든 때들도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든다.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어 호수 주위를 살핀다. 맑은 하늘, 그만큼이나 맑은 호수. 온통 파란 가운데 진록의 침엽수들이 빽빽하다. 가슴 깊이 숨을 들이쉬고 내신다. 청량한 순간. 4시간 넘게 차를 타고 온 노고가 가신다.


지난여름 한국에서 돌아와서 며칠 뒤 타호에 갔다. 샌프란시스코 베이에어리어(San Francisco Bay Area)에 살면 한 번쯤은 꼭 가본다는 곳. 처음에 타호에 갈 때는 미뤄둔 숙제를 마친다는 느낌이었다. 산속에 호수면 호수지 뭐 특별할 게 있으랴 싶었다. 오판이었다. 누구나 꼭 한 번은 가보라고 추천할 때는 이유가 있었다. 넓은 그릇에 맑은 물. 그저 보는 것만으로 솔바람차 한 잔, 우전차 한 잔 마신 듯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탁 트인 청량감은 호수 자체가 풍기는 기운은 물론, 호수를 둘러싼 환경의 깨끗함에서 비롯된 듯하다. 한국이었다면 호수를 둘러싸고 있을 법한 매운탕 집, 뜻 모를 이름의 카페, 민박 간판 하나 볼 수 없었다. 호수의 풍경을 해치는 어떤 것도 들어서지 않았다. 숙소와 식당은 다운타운에만 모여있었다. 덕분에 경치를 있는 그대로 감상할 수 있었다. 첫날은 타호 호숫가의 명소 몇 군데를 둘러보고 다음 날은 호숫가에서 물놀이를 했다. 한 낮 온도가 22도였던가, 햇볕은 따뜻했지만 물놀이하기엔 물이 차가웠다. 그럼에도 다수의 사람들이 비치(beach)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더러는 카약을 탔다. 아이들에게도 카약을 타 보게 했다. 처음으로 카약을 타 본 아이들은 매우 즐거워했다. 그 후로 타호에 또 가자는 말을 여러 번 했다.


타호에 다시 가겠다는 약속은 6개월이 지난 2월 마지막 주말에 지켜졌다. 이번엔 타호에 쌓인 눈을 보러 갔다. 1년 2개월 옷장에 두었던 다운 점퍼를 입고 도착한 타호. 일 년 내내 눈을 볼 수 없는 서부 해안가에서 산속 고도 높은 곳으로 오니 코가 시렸다. 오랜만에 말할 때 입김을 뿜게 하는, 찬 공기를 느꼈다. 타호는 눈폭풍이 심할 때는 스키장에서 눈사태로 다수의 부상자가 생기는 곳으로, 눈보라가 심할 때는 이곳에 이르는 도로가 차단된다. 우리가 갔을 때는 눈이 오지 않았고 타호에 이르는 주요 도로는 모두 제설작업이 끝나 있었다. 그러나 여름에 둘러보았던 주요 명소 중에는 눈이 쌓여 접근이 불가능한 곳이 많았다. 길가에 치워진 눈의 높이가 1미터 가까이 되어 눈으로 담을 이루었다. 눈과 흙이 켜켜이 층을 이루어 티라미수 케이크의 단면과 같았다. 겨울의 끝자락, 눈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여 입자가 굵고 단단했다. 그래서 눈길을 걸으면 사박사박 보다는 바스락바스락에 가까운 소리가 났다. 아이들은 장갑을 끼고 눈을 모아 눈사람을 만들며 겨울 다운 겨울을 만끽했다.

여름에 타호에 갔을 때는 전형적인 미국 식당에 가서 피시 앤 칩스와 샐러드, 햄버거 등을 먹었다. 콜라 없이 먹기에 너무 느끼했다. 콜라를 주문하자니 음료 값에 팁까지 더 추가될 것을 생각하니 너무 돈이 아까웠다. 게다가 음식은 탄산을 먹지 않고 물을 마시면서 요리 자체에서 맛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던 터라 느끼함을 꾹 참고 접시를 비웠다. 서버는 몇 번을 필요한 게 없냐고 물어보는 상냥함을 보였지만, 우리 가족은 끝내 소다를 주문하지 않는 인내심을 보였다. 남은 음식을 싸들고 나갈 때 식당 안으로 들어오던 손님 하나가 일부러 밖으로 나가서 문을 열어 주었다. 종업원이 아님에도 내 손에 든 포장 상자를 보고 문을 열어 주는 친절을 보여서 고마웠다.


이번 겨울엔, 지난번 느끼함을 떠올리고 타이 식당으로 갔다. 똠얌꿍 누들, 볶음밥, 고기 채소 볶음 등을 주문했다. 종업원은 태국에서 이주한 듯이 보였다. 남편이 종업원에게 "컵쿤캅."이라고 하니, 종업원은 한국말로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음식은 간이 좀 세긴 했지만, 소다가 필요하지 않았다. 물을 마시면서 충분히 음식 자체를 즐길 수 있었다. 뜨뜻한 국물을 마시고, 볶음밥을 먹으며 추웠던 몸을 데웠다. 싸갈 것 없이 그릇을 싹싹 비웠다. 즐겁고 든든한 식사였다.


여름에 타호를 다녀오는 길에 구릉의 풀들은 노랗게 마른 건초였는데, 겨울엔 비가 많이 온 덕에 길가의 풀들은 푸릇한 초록이었다. 겨울의 끝자락, 봄과 같은 날씨 덕분에 체리 나무인지, 사과나무인지 과수원에 핀 하얀 꽃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저녁 무렵 현관을 열고 들어선 집에서는 서늘한 냉기가 돌았다. 지은 지 70년 넘은 집에서는 썩은 나무 냄새가 풍겼다. 짐을 정리하고 온수 온도를 올린다. 라면을 끓여 먹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다. 전기장판을 켜고 일어나면 월요일 아침. 아침 온도 10도. 코끝은 차갑지만 아이들의 학교 가는 옷차림은 두껍지 않다. 한낮은 따뜻하다. 밀브레에 와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가고 또다시 봄. 우리 가족은 매일 아침 눈을 비비며 일어나 세수를 하고 하루하루를 꼬박꼬박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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