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날씨
-겨울만 지나면 늘 쾌적하다.
2월이 하루 남았다. 이곳 시간으로 2월 28일. 한 달에 두 편 쓰자는 각오가 무색하게 겨우 하루 남기고 허겁지겁 브런치에 접속했다. 오늘은 산책하며 걷기 운동하는 대신 손가락 운동을 해야겠다. 그런데 살짝 서늘하다. 본격적인 손가락 운동 전 워밍업이 필요하다. 차 한잔 마시며 손을 풀어주지만, 손끝이 조금 차갑다.
오늘 아침 기온은 7도. 실내 온도는 10도. 지은 지 70년 된 목조 주택의 실내 온도는 바깥 온도보다 2~3도 높은 정도를 유지한다. 정오. 현재 구글에 표시된 기온은 14도. 실내 온도는 13도. 뒷마당 햇살 아래 체감온도는 20도 이상. 실내는 식품 저장고 같다. 춥지는 않지만 선선한 온도. 손가락 마디를 풀어주려고 뒷마당으로 나왔다. 기미, 주름 생기든 말든 밭일할 때 쓰는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햇볕 아래 앉았다. 몸은 따뜻하지만 피부는 뜨겁다.
샌프란시스코 인근 베이지역, 그중에서도 반도 지역의 날씨는 일 년 내내 가을 같다. 한국의 초가을부터 가을까지의 기온 변화를 보인다. 한국에서도 이른 가을 한낮은 덥듯이 여기도 그렇다. 봄, 여름, 가을 맑고 따뜻한 날 바깥 온도, 특히나 햇살 아래 체감 온도는 상당히 높다. 덥다기보단 뜨겁다. 피부에 레이저를 맞는 느낌이다. 겨울은 보통 12월에서 2월까지인데 이때는 기후가 전반적으로 서늘해지고 비가 자주 내린다. 이 기간을 지나면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가 이따금 안개로 덮이는 날 외에는 공기에서 습기를 느끼기 어렵다.
한동안 캘리포니아는 겨울에도 강수량이 적어 가뭄에 호수와 강이 말라갔다고 들었다. 그런데 지난겨울 그러니까, 22년 말에서 23년 3월까지, 북캘리포니아는 잦은 폭우와 바람 때문에 지반이 무너지고, 커다란 나무가 쓰러지는 등의 사고가 많았다. 우리가 도착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겨울 폭풍이 왔다. 며칠 비가 계속 내렸고, 낡아빠진 지붕으로 물이 샜다. 캘리포니아의 온화한 기후만을 기대했던 터라, 겨울 폭풍에 당황했고 비 좀 내렸다고 물이 새는 것에 어처구니없었다. 식당 전등을 타고 물이 흘러서 식탁을 빼고 그 자리에 양동이를 몇 개 가져다 두었다. 집주인에게 얘기했더니 비가 그치면 조만간 수리한다 할 뿐이었다.
겨울 폭풍은 한 번으로 족하지 않았다. 몇 번 더 불어닥친 뒤에 물을 잔뜩 머금은 천장은 기어이 무너지고 말았다. 낡은 지붕을 겨울이 오기 전에 진즉 수리해 놓았다면 없었을 사고였다. 지붕 아래 단열재로 넣어둔 솜은 물을 잔뜩 머금으며 무게를 불려 나갔고 천장의 합판은 무게를 못 이기고 무너졌다. 무너진 때가 애들이 등교한 뒤였던 터라 사람이 다치진 않았다. 집주인에게 수리를 요구했고, 우리는 이곳에 온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때 집을 비우고 호텔서 일주일간 머물렀다. 아이들 등하교 때문에 남편이 재택근무를 해야 했다. 천장만 수리해 놓고, 집주인은 지붕은 수리하지 않았다. 집주인이 보낸 관리인이 보고는 지붕 전체를 고쳐야 한다고 집주인에게 말했으나 집주인은 지붕을 고쳐준다는 말이 없었다.
식당 천장이 무너졌던 뒤로, 바람이 거칠게 불거나 비가 많이 올 때면 다른 방 천장이 무너지지 않나 걱정했다. 이번 겨울과 비교해 보니, 지난겨울은 바람도 유난했다. 어느 날은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 모습이 비 맞은 생쥐처럼 홀딱 젖어있었다. 우산을 써도 바람에 뒤집히는 바람에 온통 젖은 채로 걸어온 것이었다. 2월 지나면 비바람이 멈출 거라던 예상과는 다르게 3월에도 비는 줄기차게 내렸다. 기상이 좋지 않을 때면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드나드는 비행기들이 낮게 운행했다. 그런 날은 집 위를 나는 비행기의 배가 무슨 색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낮게 나는 비행기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지붕에 붙여 놓은 기왓장(-두꺼운 기와가 아니고 지붕에 붙여 놓는 장판 같은 조각들)이 두둑 뜯겨 나갔다. 그것들을 사진 찍어서 집주인에게 보내며 지붕 수리를 줄기차게 요구했다. 곳곳이 지붕 수리를 하느라 밀렸는지, 혹은 늦게 신청했거나 가격이 저렴한 곳을 골라서 흥정하느라 그랬는지 지붕은 7월에 고쳐졌다.
지붕이 고쳐진 뒤로는 안심하고 잠을 잘 수 있었다. 늦은 감이 있었지만 정말이지 3월 지나 4월부터는 비 냄새 맡기 힘들었다. 날은 점점 따뜻해져서 5월부터는 밤에 전기장판을 켜지 않고 잠을 잘 수 있었고, 여름이 되고부터는 실내에서 털신을 신지 않았다. 그러나 6월에도 한낮 온도 25도를 넘는 날은 드물어서 뒷마당 수영장에 호기롭게 들어갔다가 덜덜 떨며 나오곤 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사는 카운티의 날씨다. 베이 지역 날씨는 지역에 따라 기온 차가 심하다. 우리 동네에서 긴 팔 입고 리버모어 쇼핑몰 갔다가 더워서 땀을 빼는 일이 있는가 하면, 샌프란시스코에 가벼운 차림으로 갔다가 바람이 몹시 불어 피부에 닭살이 오소소 돋는 일도 있었다. 지난겨울 장마 외에는 베이 지역의 날씨는 듣던 대로였다.
이번 겨울에 북 캘리포니아엔 비바람이 심하지 않았다. 지난겨울 엘 카미노 드라이브의 가로수였던 커다란 유칼립투스 나무가 쓰러지며 통행이 막히고 정전이 되는 피해를 입었다. 이번 겨울에는 지난겨울처럼 폭풍으로 인한 사고가 잦진 않았다. 카운티 내 몇 군데가 정전된 날이 있었으나 지난겨울 대비한 때문인지 아니면 이번 겨울 폭풍이 온순했던 때문인지 피해가 크지 않았다. 집 뒤 스퍼트레일(산책로)의 키가 큰 유칼립투스 나무들을 겨울 전 모두 베어냈으나 의외로 비바람은 순했다. 뉴스에서 듣기로는, 남 캘리포니아는 비 피해가 컸다고 한다. LA는 SF에서 차로 내리 7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야 갈 수 있는 곳이다. 기후와 식생은 비슷해도 날씨는 다를 수밖에 없다.
정오에 시작한 글쓰기가 어느덧 2시가 되었다. 한 문단 쓰고 세탁물을 건조기에 넣고, 또 한 문단 쓰고 이불을 뒷마당에 펼쳐 놓고, 다시 한 문단 쓰고 집에 배달된 식품을 정리하고 나니 아이 하교 시간이 되었다. 두 시간 햇볕에 아래 있었더니 옷에서 햇볕 냄새가 난다. 학교에서부터 걸어온 아이 머리에서 햇볕 냄새가 난다. 눅눅했던 이불에서도 햇볕 냄새가 난다. 이제 3월, 일몰시간이 늦어져 한낮의 태양을 즐길 날이 많을 터이다. 날씨도 매일의 생활도 좀 더 온순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