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만나기 어렵다.

병원 이용할 때마다 한국 돌아가고 싶다.

by 백수아줌마

미국 오기 전에 소아 정신과에서 아이 ADHD를 진단받았다. 의사는 약물 치료를 권했지만, 부작용 또는 약물 중독이 걱정되어 치료를 거부했다. 6개월 뒤 출국하기 때문에 치료를 이어서 받을 수 없다면 단기간의 약물치료는 무의미할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니 참 미련했다. 환자에게 맞는 정신과 약을 찾고 복용량을 조절하기까지 수개월 시간이 걸리므로 처음 진단을 한 의사에게서 약물 처방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출국하기 전까지의 황금 같은 시간을 주저하다 날려버린 것이다. 미국으로 이주 시 소아정신과 이용이 어려우면 어쩌지, 언어장벽을 극복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 주저했던 탓도 있다. 그럴수록 한국 의사의 신뢰할만한 처방전이 필요했다. 미국에서 한인 의사를 찾을 수 없다면 이전 처방 기록을 토대로 약을 처방받을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미국 정착 후 처음 6개월 동안은 아이의 현지 적응을 최선으로 했기 때문에 학업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7학년에는 과제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8학년이 되면서 과제가 많아졌고 난도가 어려워지면서 학업 부진이 심각했다. 과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 밀리거나 안 해서 담당 과목 교사에게서 주의하라는 메일을 받기도 했다. 8학년이 되고 처음 분기(trimester-삼 분기 중 1분기)에는 성적이 괜찮았는데 11월에 부비동염과 편도선염으로 학교를 한 달 정도 빠지는 바람에 밀린 과제가 쌓였고 학교 복귀하고서 이를 처리하지 못했던 것이다. 겨우 좇아가고 있던 학업 흐름이 일시에 뒤엉켰다. 아이는 과제에 우선순위를 두고 차근차근 해결하지 못하고 미뤄두다가 아예 과제를 잊고 말았다. 한국에서처럼 담임이 학사관리를 해주고 의사소통이 좀 더 원활하거나 한국어 수업이었다면 이와 같은 누락은 없었을 것이다. 부담이 크니까 미루고, 미루다 보니 잊어버린 것이다.


문제는 지금 당장의 학교 숙제에만 있지 않았다.


미국 중학교에서 학습 시간표는 학생마다 무작위로 정해주는데, 학생들이 수업 교실을 찾아 돌아다녀야 하니 쉬는 시간에 놀고 떠들 새가 없다. 혹 과목마다 변동 사항이 있으면 과목 교사에게 또는 같은 과목을 듣는 학생에게 일일이 물어보고 확인해야 한다. 고등학생이 되면 대학생이 전공 필수, 교양 필수, 선택 과목을 수강신청하듯이 본인이 수강신청해서 학사 관리를 해야 하니 학생들마다 시간표가 제각각이다. 학생 개개인이 학사 관리를 해야 하며 졸업 크레디트를 채우지 못하면 졸업이 불가할 수도 있다.


아이는 8학년이고 5월에 졸업하면 8월엔 고등학교에 입학해야 한다. 지금도 8학년 수업을 좇아가기 버거운데, 9학년이 되면 학업 부담은 아이를 더 힘들게 할 것 같다. 그런데 아이의 주의 집중력은 개선의 여지가 없으니 학력 저하가 나날이 누적되었다. 고등학교 가서 학사 관리는 제대로 할 수 일을지 의문이다. 낙천적 성격의 아이도 슬슬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ADHD가 학업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감정 조절을 못해 소리를 지르거나 거친 행동을 하여 자매 관계, 부모 관계가 모두 어긋나는 일이 종종 생긴다. 이는 전적으로 아이 탓은 아니다. 나는 좋은 엄마는 아니다. 나는 다혈질이며 한때 우울증을 앓았고 일관되지 못한 양육태도를 보였다. 유아 시절 애착 관계에도 문제가 있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아이가 힘들게 할 때는 밉다가도 속상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공존한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예쁘다고 내 딸이 사랑스러울 땐 더할 나위 없이 예쁘다. 못난 엄마지만 못난 수준에서 사랑한다. 내 딸은 이런 나를 사랑한다. 이점은 얼마나 다행인가 모른다. 하지만 이따금씩 아이가 감정 조절을 못하고 내뱉는 말은 아빠는 물론 자매에게도 상처가 된다. 아이 역시 거친 말로 되돌려 받으며 상처를 받는다. 아이의 장애를 등한시하던 남편도 아이에게서 모진 말을 듣고 보니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나 보다. 소아 정신과를 찾아보란다. 제안이 아닌, 일종의 명령 같은 언사였다. 미국땅에서 소아정신과 의사를 찾는 곳은 온전히 나의 몫.


처음엔 보험사 앱에서 인네트워크(in network) 의사를 검색해 봤다. 직접 대면 진료를 받고 싶었으나 신규 환자를 받고 바로 예약이 되는 곳을 찾기 어려웠다. 몇 군데 메일을 보내거나 서툰 영어로 사무실에 전화를 돌리고 나서 안 된다는 답신을 받다 보니 조바심이 생겼다. 그래서 보험사에 소아 정신과 의사를 소개해 달랬더니 소아 정신과 임상 간호사를 소개해줬다. 허탈했다. 그래서 미루고 미루다 인도계 미국 의사에게 화상진료를 예약했다. 정신과 의사 및 상담사 등 소속 의료 공급자들을 연계해 주는 매체의 웹사이트를 통해 예약해서 의사 사무실로 직접 문의한 것이 아니었다. 중개업체에 서식을 올리고 진료 문의를 메시지로 주고받던 중 의사에게 영어가 서툴다고 하자 한국인 의사를 모두 찾아봤냐는 질문이 왔다. 한국인 의사를 찾지 못해 문의한 것이었는데 그런 질문을 받으니 혹시 내가 못 찾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컴퓨터를 켜고 옷소매를 걷어올렸다. 구글 검색으로 또 다른 정신과 의사 및 상담사 등을 소개하는 웹사이트를 발견했다. 어차피 화상진료면 같은 주 안에 있는 다른 의사면 어떠랴. 직접 방문을 염두에 두고 지역을 베이 에어리어(샌프란시스코 만을 둘러싼 지역. 산호세에서 샌프란시스코 사이. 베이를 기준으로 이스트 베이와 웨스트 베이가 있다)로 제한해서 찾다 보니 한인 의사를 찾을 수 없었다. 딴엔 보험사를 신뢰하여 예약 가능한 곳을 문의했고 임상 간호사만 소개해 줬을 때 한인 의사가 있다 한들 신규환자 접수를 안 하는 것일 테지하고 안이한 생각을 했다.


이번엔 지역을 넓혀서 검색했다.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LA엔 과연 한인 정신과 의사들이 있었다. 그중 내 보험사를 취급하는 몇몇 의사에게 메일을 보냈다. 회신이 올 것인지 모르지만, 일단은 일요일에 예약해 둔 화상진료를 취소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업체에 전화해서 화상진료 취소가 되는지 문의하니까 평일 기준으로 2일 전에 취소해야 한단다. 현시점 금요일. 2일 전이지만 주말이 껴서 위약 수수료 150불을 지불해야 한다. 내 보험 코페이(copay: 기본 진료비)는 50불. 보험사에 문의하니 화상 진료는 초기진료라도 50불 코페이만 내면 나머진 보험사가 보장한단다. 일요일 진료는 보되 메일 보낸 곳에서 답신이 오는 것을 지켜봐야겠다.


한국어가 모르는 의사에게 보이려고 한국에서 받아온 검사지를 구글 번역기를 써서 자료 올리고 일부 번역이 안 되는 곳은 수기로 써서 사진으로 올리는 등의 일이 헛수고였다. 그런들 어떠하랴. 언어 장벽 없이 나와 아이가 한인 의사에게 상담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아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말이다.


정신과 의사는 언어 장벽, 문화 차이 등의 이유로 한인 의사가 꼭 필요하지만, 일반 의료는 구글 번역기를 써서 진료를 받아왔다. 그렇지만 매번 병원 이용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너무 불편하다는 점이다. 비용이 비싼 것은 차치하고 의사 만나기가 너무 어렵다. 일반 주치의는 그나마 보기 어렵진 않지만 며칠 기다리는 것은 감내해야 한다. 이비인후과 전문의는 몇 개월 대기가 기본이다. 그러니 한인 소아정신과 의사 만나기 쉽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다.

아이가 부비동염과 편도염을 앓았을 때, 항생제를 써도 낫질 않았다. 아이 질환이 심해지기 전에 이비인후과에 가고 싶었지만 예약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결국 소아 주치의에게 다시 갔더니 편도농양이 의심된다고 하여 응급실에 갔다. 응급실 가서야 이비인후과 전문의를 볼 수 있었다. 아이의 질병은 편도농양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응급실에서 CT를 찍는 바람에 병원비가 얼마 청구될지 몰라 떨고 있는 형편이다. 디덕터블을 가볍게 초과하는 금액이 청구될 텐데 아웃오브포켓은 넘지 않는 정도일 것 같다. 11월 추수감사절에 이용한 응급실 병원비는 무엇 정산할 게 많은지 3월인 지금까지도 청구서가 오지 않았다. 주변에 문의하니 그럴 수 있단다. 정말이지 미국은 의사를 만나기도 어렵고 병원비도 비싸다.


한국에서였다면 응급실 병원비는 건강보험에서 공제하고 실비보험에서 보장하니 걱정이 없었을 것이다. 한국은 의료 수가가 정부의 통제 아래 있지만, 미국은 완전 자율이다. 어느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으면 저렴하게 받을 수 있지만 다른 병원에 가면 바가지다 싶을 정도의 금액이 청구되는 일도 있다. 환자는 병원의 진료비가 얼마가 될지 예측할 수 없으니 선별해서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미국에선 의료도 철저한 영리 추구가 가능하다. 병원비가 과다하게 청구되면 선뜻 내지 말고 흥정하라는 말이 인터넷상에 버젓이 돈다. 이런 것을 모르고 갔다가 덤터기 씌우듯 맞은 진료비를 지불한 적도 있고 검안과에서 보험사로 빌을 올리지 않아 보험 커버가 안 된 채 진료비 전액을 내서 검안과 직원과 한판 싸운 적도 있다. 어전케어(Urgent care), 응급실 및 몇 군데 클리닉. 경험이 쌓이다 보니 보험사도 병원도 꼼꼼한 재확인은 필수라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정신과 의사 대신 간호사를 추천하는 무성의함을 보인 보험사만 믿다가 좀 더 찾아보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과오를 저질렀다. 더 찾아볼 걸 하는 후회는 지난 일. 지금은 당장 혹시 있을지 모를 진료비 과다 청구에 미리 대비해야한다. 일요일 초기 상담 비용이 코페이 50불만 내도 되는지 거듭 확인했다.


한국의 의료가 민영화되어 있지만 전 국민이 국민 건강 보험에 가입되어 있고 의료 수가가 정해져 있으니 한국에선 병원 잘못 가서 병원비 과다 청구될 일은 드물다. 건강보험 급여가 되는 진료에 한해서는 말이다. 소아청소년과처럼 기피과가 생기지 않도록 수가 조정은 필요하겠지만 큰 틀에서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유지되길 바란다. 의료 접근성이 너무 좋으면 병원에 꼭 가지 않아도 되는 환자들이 생기고 그런 환자들로 인해 정작 진료가 급한 환자의 순서가 뒤로 밀리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반면 의료 접근성이 너무 떨어지면 환자가 조기에 치료를 못 받고 병을 키우는 일이 있을 수 있다. 아이가 아플 때, 병만 걱정하고 싶다. 미국에선 병 걱정, 돈 걱정이 함께 든다. 그 마저도 주재원 가족으로 와 있어 보험 보장률이 높은 편이라고 하는데도 이러하니 일반적인 사정은 더 나쁘리라 짐작한다.


아이의 소아정신과 의사를 찾는 과정으로 시작한 글이 미국 의료비로 끝난다. 워크인으로 예약 없이 전문의를 볼 수 있는 한국의 의료시스템은 편의성 면에서 최고라고 생각한다. 비용도 비싸지 않으니 한국의 의료 접근성은 나무랄 데 없는 것 같다. 한국에서 병원 자주 다니던 아이 데리고 미국 올 때 어느 정도 불편은 예상했지만 실제 겪어보니 더 불편하다.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일부 개선은 하되 큰 틀은 유지되길 바란다. 우리 가족은 몇 년 내로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거다. 그땐 맘 놓고 병원 다닐 수 있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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