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광욕

태양 에너지를 충전하다.

by 백수아줌마

애들 학교 보내고 어제 보다 만 '닭강정' 시리즈를 완주했더니 몸이 으슬으슬하다. 밖은 따뜻해도 그늘진 집안은 냉장고처럼 서늘하다. 뒷마당으로 나와 돗자리 깔고 누워서 유튜브 보다가 그마저도 피곤해서 바닥에 붙어 있었다. 뜨거운 햇살에 반건조 오징어가 될 것 같다.

봄 되니 도마뱀에 동면에서 깨어 햇볕을 쬔다. 방해 않고 나도 햇볕을 쬔다.

어제 아이 adhd 화상진료를 받았다. 인도계 미국 소아정신과 의사.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다. 형식적인 문답이.오갔다. 진료 목적 및 아이의 행동, 기분 등을 묻는 질문에 답하고 약 복용 시 주의할 점을 물었다. 묻는 말에 떠듬떠듬 답변할 수는 있지만, 잘 알아듣지를 못한다. 그래서 남편의 도움을 받았다. 아이는 아이대로 자기 방에서 따로 얘기했다. 어제 처방받은 약이 동네 약국에 준비가 됐단다. 어제가 일요일이었는데 월요일 오전에 약국에서 연락이 왔다. '아, 이 동네도 그 약을 항시 타는 아이들이 많은가 보구나.' 좀 이따 나가서 약국에서 약 타야겠다.


어제 오전 지녁 진료를 앞두고 긴장했던 탓인지 아이는 유난히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잠을 깨우는 아빠에게 성질을 냈고 아빠도 화가 나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타이르고 혼내고 반복. 어떤 날은 하루에도 몇 번씩 풍파가 있다. 약을 먹으면 아이가 좀 더 차분해지고 주의 집중력도 생긴다고 하니 지캬봐야겠다.


ADHD를 진단받은 아이 말고도 다른 아이도 요즘 아빠에게 매우 반항적이다. 내게 반항하며 대든 것은 이미 오래전. 딸들은 엄마와 수시로 다투다가도 엄마의 입장을 금세 이해하고 풀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아빠와는 다르다. 굵은 목소리와 덩치는 성체 아닌 자식들에게 본능적으로 경계해야 할 대상이 된다. 그럼에도 사춘기 아이들은 끌어 오르는 성질을 조절 못하는가 보다. 딸들과 갈등이 생기면 남편은 말없이 게임만 했다. 어제도 그랬다. 화창한 날씨와는 대비되게, 집안에는 목과 가슴을 누르는 무게감이 공기를 짓누른다. 그런 중에도 갑자기 스파크가 튀어 대기에 균열이 생길 것 같은 긴장감도 돈다.


저녁엔 낮시간을 짓누르던 무게감을 덜어내고 긴장감을 풀려고 귀찮다는 남편을 졸라 동네 마트에서 고기와 소시지를 사 왔다. 뒷마당 테이블에 버너를 올리고 삼겹살과 소고기, 이탈리안 소시지를 구웠다. 저녁이라 날씨가 서늘해서 다들 외투를 입고 둘러앉았다. 남편이 고기를 구워서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자기보다 자식들 배부터 채우는 아빠의 부성애를 애들이 진실되게 느끼길 바랐다. 사람도 동물이니 먹이 주는 사람이 누군지 분명히 알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고기를 구워서 나눠 준다고 부모의 권위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때만이라도 너희를 이토록 돌보고 살피는 부모이니 이빨을 드러내지 말라는 의도를 전달하고 싶었다.


식사를 마치고 하늘을 보며 북두칠성, 북극성, 오리온자리 등을 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밤엔 별이 총총하다. 주변 밝은 빛이 없으니 별 보기 좋다. 별자리 앱을 열어 다른 별자리들을 탐색하며 캠핑 온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밤에 날아가던 비행기가 하늘을 긁고 갔다. 별똥별이었으면 좋았으련만.

어젯밤은 별구경, 오늘 낮엔 일광욕. 이러한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낀다. 바닥에 바짝 붙어 몇 가지 지난날을 생각해 본다. 내가 내린 중요한 결정들, 그중에서 내 인생의 방향을 180도 바꾼 것은 아이들의 출산이었다. 나를 희생했다는 생각보다는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이지 못했다는 마음이 더 크다. 부모로서 모범이 못됐다. 자책감에 빠진다고 더 나은 사람이 되진 않는다. 오히려 회피하게 된다. 다시 생각해 본다. 엄마 아닌, 그저 그런 사람으로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유해한 인간은 아닌데 유익한 인간도 아니다. 딱히 타인에게 이롭게 산 적 없다. '그래, 아주 나쁜 짓하며 살진 않았으니까 앞으로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거니까 이제 털고 일어서자.' 식물처럼 무기력할 때 햇볕을 쬐면 기분이 나아진다. 뒷마당에 몸을 널어 말렸더니 기운이 난다. 이젠 털고 일어나 약을 타러 가야지. 애들 오기 전에 집안 청소도 쓱쓱 해둬야겠다.

골든게이트 파크에서 산 양난, 트레이더죠에서 산 튤립,히야신스,몬스테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