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연습 중

-미국 운전면허 취득 어렵고, 힘들다.

by 백수아줌마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나는 왜 이토록 운전을 두려워하는가? 내가 첫째로 뽑은 이유는 어려서 차를 타 본 경험이 없다는 점이다. 아버지는 가난했다. 그렇다고 소형차 한 대 못 살 형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술을 너무 좋아하셨고, 음주운전을 걱정한 어머니가 차 구매를 한사코 반대했다. 어머니 딴엔 보험비며 기름값 등의 지속적인 지출도 계산했을 것이다. 온 가족이 차에 타서 산이든, 바다든 놀라가 본 적이 없다. 차를 타본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고등학생 때까지 차 탈 때마다 멀미가 심했다. 대학생 때 다들 운전면허를 취득할 때 나는 차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었고, 훗날 내가 차를 구입하게 될 즈음 면허를 취득하면 되겠지 생각하며 운전면허 취득을 미뤘다.

언제였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대학생이었을 것이다. 오빠가 면허를 취득했다. 오빠는 남자들은 대개 학생 때 면허를 꼭 따는 분위기에 휩쓸려 면허를 취득했던 것 같다. 아마도 오빠의 운전면허 비용은 어머니가 내주셨을 것이다. 여동생은 결혼 후 경기도로 이사하면서 애들을 태워야 한다고 운전면허를 취득하더니 지금은 차 몰고 고속도로를 탈 정도로 운전에 능숙해졌다. 다 같은 환경에서 자랐는데 동생은 도전하고, 나는 도전하지 않았다. 나는 쌍둥이를 키우면서 쌍둥이 유모차에 둘을 데리고 어린이집과 병원 등을 다니느라 팔다리가 욱신거릴 정도로 힘이 들었으면서도 면허 딸 엄두를 못 냈다. 차를 운전할 자신이 없었다. 동생을 보건대, 내가 운전 못하는 것을 두고 환경 탓할 수는 없다.


운전면허와 비슷하게 세 남매 중 나만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오빠는 어린 시절 세 발 자전거에서 시작해서 보조장치가 있는 두 발 자전거를 타며 자전거 타기를 익혔다. 그 두 발 자전거를 오빠가 잃어버렸을 때 자전거를 배우지 못한 두 딸을 위해 부모님은 자전거를 더 사주지 않았다. 운동 신경이 좋았던 동생은 초등학교 6학년쯤 학교 운동장에서 어머니 자전거로 연습해서 혼자 자전거 타는 것을 깨쳤다. 나는 학교에 자전거 타고 갈 것도 아니고, 굳이 자전거는 배워서 뭐 하냐는 둥 무관심한 척했다. 실은 내심 자전거 타는 것을 두려워했다. 몇 번 시도해 봤는데 넘어질 거 같은 흔들림이 싫었다. 그 후, 대학생이 되어 동아리에서 일산 호수 공원에 가서 자전거를 탄 적이 있는데, 자전거를 가르쳐 준다던 친구가 뒤에서 자전거를 잡아주다 놓았다. 나는 앞으로 '으어어어'하고 가다가 할아버지를 치었다. 할아버지는 엄히 혼내되 학생이었던 나를 용서해 주었다. 자전거로도 사고를 낼 수 있었다.


속도감 있는 것, 사고가 날 수 있는 것, 탈 것이라는 점에서 차와 자전거는 비슷하다. 스키나 스노보드도 비슷하다. 직장에 다니며 생활비 외에 문화생활을 영위할 여유가 생기면서 처음으로 스키장에 갔다. 스키보다는 스노보드가 왠지 만만해 보여서 시도했다. 강사에게 간단한 설명을 듣고 초급자 코스에서 내려오길 몇 번. 스노보드를 타고 내려온 것이 아니었다.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다리보다는 엉덩이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균형을 못 잡아 넘어지기도 했지만, 겁이 유난히 많았던지라 조금만 기울어질 거 같아도 자의로 넘어졌다. 그때의 경험 뒤로 스키나 스노보드를 배우려는 마음을 싹 지웠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건대, 내가 운전을 하지 않는 이유의 기저에는 '불안'과 '저조한 운동신경'이 깔려 있다. 동생처럼 운동 신경이 좋았다면 '할 만하다'는 생각을 하고 도전했을 텐데, 내게 '자전거'와 '스노보드'는 높은 산이었다. 그러니 '차'는 어떠하랴. 차를 운전하다가 어디에 박거나, 혹은 사람을 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불편해도 차를 운전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크면서 차를 운전할 필요도 점차 줄어들었다. 거미줄처럼 촘촘한 서울의 대중교통 덕에 웬만한 곳은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가능했고, 초등학교 6학년이 되자 아이들은 내 도움 없이도 가까운 곳으로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었다. 아마도 미국으로 올 일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까지 운전면허를 취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미국으로 이주를 준비하며 가장 힘들었던 일은 운전면허 취득이었다. 캘리포니아는 장기 거주민에게 한국 운전면허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 반드시 캘리포니아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한국에서 운전 연습을 전혀 하지 않고 미국으로 가면 면허 취득이 훨씬 험난할 듯하여 우선은 한국 운전면허 취득을 시도했다. 남편의 미국 발령이 확정된 것은 아니었고, 그즈음 나는 몇 가지 교육을 받고 있던 중이라 멀리 일산에 있는 운전 학원을 다니는 것이 용이치 않았다. 그래서 집 근처 시뮬레이션 학습장에 등록하고 기능을 배웠다. 시뮬레이션으로 아무리 연습해도 실제 차를 운전하는 것은 달랐다. 게다가 지나치게 긴장해서 떨어지는 일도 번번했다. 서부 면허 시험장에서 탈락하고 버스로 월드컵 경기장으로 와서는 불광천변을 하염없이 걸었다. 집까지 걸어오면서 탈락의 쓰라림을 달랬다. 봄에 시작하여 여름이 되도록 기능 합격을 하지 못했다. 무려 4번을 떨어지고 나서 일산 운전 학원을 등록했다. 그곳에서 기능시험을 합격하여 5번 만에 겨우 기능을 합격했다. 주행 시험도 순조롭진 않았다. 1번 실패한 뒤 2번째 되어 겨우 합격했다. 시험관이 합격은 주지만 주행 연습이 많이 필요하며 주행 연습 충분히 한 뒤에 도로에 나와야 한다고 주의를 줬다.


주행 강습을 두 번 받았지만, 실제 차를 몰고 도로로 나갈 자신이 없었다. 직진이나 우회전, 좌회전은 할 수 있지만 주차를 할 수가 없었다. 빠른 속도는 정신이 아찔해지므로 규정속도 내로 가면 뒤에서 누군가는 경적을 울렸다. 빨리 가라는 재촉이었다. 결국 사람들이 적은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몇 번 연습하다 말았다. 이주 준비를 하느라 차는 팔아버렸다. 한국에서 내 운전 경력은 이것이 전부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인근 도시로 이사 왔다. 남편은 산 마테오 DMV에서 3번 떨어지고 4번 만에 겨우 합격했다. 운전 시 준수해야 할 점에 대한 숙지가 안 된 채로 한국에서 운전 경력만 믿고 응했다가 번번이 떨어졌다. 차도 손에 익은 차가 아닌, 그때그때 빌린 차거나 임시로 모는 차여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세 번째 시험에서는 감독관의 주관이 깊이 개입했던 듯하다. 그 사이 한인 자동차 딜러에게 사기 비슷한 것을 당하고 구입했던 중고차를 환불받았다. 중고차는 못 믿겠다던 남편은 대출을 받아 테슬라를 주문했다. 우리 형편에 버거운 지출이었다. 13년 탄 포르테에 비하면 테슬라는 언감생심 건들 수 없는 비싼 차였지만, 남편은 지금 아니면 언제 타 보겠냐며 질러버렸다.


작년 6월 나는 여름에 한국에 가기 전 필기시험을 치렀다. 돌아와서 주행 시험을 위한 연습을 하려 했지만, 미루고 미루다 겨울이 가까워져서야 남편과 연습을 시작했다. 몇 번 남편과 연습할 때마다 남편은 심장 마비가 올 것 같다, 두통이 가시지 않는다며 불평했다. 일주일에 한 번 혹은 이주에 한 번 연습하니 연습할 때마다 내 실력은 원점으로 돌아가 있었다. 주차는 매번 힘들었다. 그렇게 시험을 미루고 미루다 주행 시험을 위한 허가 기간 내 시험 한 번을 못 볼 것 같았다. 허가 기간은 딱 1년, 그런데 6월엔 바로 한국으로 가니 5월까지밖에 시간이 없었다. 결국 근처 드라이빙 스쿨을 찾아서 예약했다. 한인 강사를 만나려면 칼트레인 타고 산타클라라까지 가야 한다. 그러느니 차라리 집으로 픽업을 오는 근처 학원이 낫겠다 싶었다.


첫날 수업 이후 멀리 가더라도 한인 강사에게 배울 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한국 운전면허가 있고, 주차와 차선 변경이 어렵다고 했음에도 강사는 아무도 없는 공영 주차장에 가서 우회전, 좌회전만 시켰고 갓길 주차 방법에 대해선 연습을 많이 해 보라 하고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차가 한 대도 없는 곳에서 차선 변경 한 번 시도하게 한 뒤 수업은 끝이었다. 공영 주차장으로 가고 집으로 오면서 운전은 강사가 했다. 2시간 강의에 실제 연습은 1시간 정도였다. 돈이 아까웠다. 리뷰 테러를 하려다가 강사가 한 동네 사람이라 언제 재수 없게 마주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리뷰를 아예 하지 않은으로써 소극적인 불만족을 표시했다.


운전 학원 프로그램 중, '총 세 번의 수업과 한 번의 시험을 위한 차량 대여 세트'에서 한 번의 수업은 지난달에 썼다. 당시 강사 말이 데일리 시티보다는 레드우드 시티 dmv가 낫다고 하여 그곳으로 예약하려고 보니 한 달 뒤였다. 첫 수업 후 시험까지 배운 것을 잊지 않으려면 매일 조금이라도 운전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아, 집 근처만 혼자 몇 번 차를 몰고 돌아봤다. 제발 사고 나지 않기를, 보안관에게 걸리지 않기를 바라며 조심조심 운전 감을 익혔다. 지식 시험 합격 후 받는 운전 허가증은 캘리포니아 운전면허 취득자가 동승한다는 조건 하에 운전이 허락되기 때문에 아무리 동네일지라도 연습 면허로 혼자 운전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매일 늦게까지 일을 했고, 주말은 어디 먼 곳으로 여행을 가거나 혹은 주말에도 일이 있거나 피로를 호소했기 때문에 꾸준히 연습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제 두 번째 수업을 받았다. 첫 번째 강사와는 다르게 그는 가르치려는 열성이 넘쳤다. 설명은 구체적이었고, 어떻게 운전해야 하는지를 쉬운 말로 알려주려고 애썼다. 내가 영어를 잘 못한다고 하자 이해하는지 못하는지, 수시로 확인했다. 한국 운전면허가 있다고 하자, 레드우드 시티 dmv까지 엘 카미노 드라이브로 내가 운전해서 직접 가게 했고 가면서 3번 정도 차선을 바꾸게 했다. 내가 뒤차가 어느 정도 속도로 오는지 어떻게 아냐고 묻자, 거울에 뒤차의 전체 모습이 다 보여야 하며, 그 차가 점점 내게 가까워지면 빠른 속도로 오는 것이니 끼어들지 말아야 하고, 차가 같은 모습 그대로 유지 중이라면 내가 끼어들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것이니 끼어들 수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레드우드 시티를 돌면서 내게 운전할 때 주의 할 점과 내 잘못된 습관 등을 계속 설명하고 잘못을 반복하면 주의를 줬다. 시그널을 줄 때 피트로 설명 하면 내가 감을 못 잡을 수 있는 것을 알고, 회전하기 전 집이 서 너 개 있을 때 시그널을 주라고 알려주었다. 단순하고 명확해서 거리를 가늠하기 쉬운 설명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프리웨이를 타고 왔다. 2시간을 꽉 채워서 알차게 수업을 받아서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내게 아직 준비가 더 필요한 것 같다고 했지만, 이왕에 시험 날짜를 잡았으니 세 번째 수업은 DMV에서 실제 시험 보듯이 강습을 받으라고 조언해 주었다.


이번 주 일요일에 세 번째 강습을 받고 화요일에는 시험이 있다. 그때 시험에는 두 번째 강사가 동행한다. 그가 동행하면 힘이 될 것 같지만, 솔직히 내가 지금 운전할 준비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전보다 운전대를 잡았을 때 불안감은 줄어들었고, 동네에서 운전하는 것은 이제 조금 익숙해졌다. 그러나 시험관이 엄격하면 불합격할 확률이 높다. 부디 엄격한 시험관을 만나더라도 지나치게 긴장하거나 치명적인 실수를 해서 완주하지 못하고 주행 중에 불합격되는 일은 없길 바란다.


매일 조금이라도 운전을 해 보라는 동생의 조언에 따라 동네 한 바퀴 돌고 주차 연습. 이렇게라도 감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혹, 불합격해도 5월에 한 번 더 기회가 있으니 포기하지 말자고 다독이며 마음을 다잡는다. 운전하지 말고 포기하려다가도 운전하면 얻을 수 있는 편리를 생각하며 기운을 돋는다. 여기서 운전 연습하면 나중에 한국 가서 운전할 때 험악한 한국 운전 환경에 좀 더 적응할 수 있겠지 싶다. 계속 덤덤히 시험 보자 하지만, 많이 불안하다. 불안해서 쓴 글이 어느새 화면을 꽉 채웠다.


활자로 채워진 흑백에 동영상 하나를 올린다. 주말에 산호세로 구글 비지터 센터에 갔다. 풀셀프드라이빙을 무료로 한달 쓸 수 있게 해 준대서 남편이 주차할 때 테슬라의 풀셀프드라이빙 기술을 사용했다. 주차구역에 맞게 주차하는 것이 신기해서 동영상을 촬영해 뒀다. 자율주행서비스 구독료가 월 200불이었는데 100불 정도로 줄었다 한다. 일단 면허를 취득하면 테슬라 자율주행 서비스를 구독해서 애들 픽업을 내가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에러가 생길 수 있으니 자율주행서비스를 구독한대도 멀리는 못 갈 듯하다.


테슬라 주차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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