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와 죽은 자를 위로한다.
죽음을 보았다. 누렇게 뜬 피부, 홀쭉한 볼. 살이 빠진 듯하면서도 어딘가 부은 것 같은 얼굴. 심장 박동을 나타내는 선이 수평으로 일직선을 그었다. 심정지. 김□□은 사망했다. 육신에 연결된 호흡기가 맥없이 식식거린다. 호흡기 외에도 체내에 약을 집어넣는 줄이 몇 개, 노폐물을 꺼내는 줄이 몇 개 더 있다. 잠시 뒤면 몸에 연결한 줄들이 모두 떼어질 것이다.
생이 다한 후가 있을까? 한 생이 끝나고 나면 다음 삶이 펼쳐질까? 잠시 저승에서 안식을 취하소서 기도하다가 이내 그만둔다. 사회에서 배운 일종의 행위 양식. 습관처럼 흐르는 눈물을 닦는다. 눈물도 어쩌면 학습일지 모른다. 화장지를 남편에게 건넨다. 그는 아버지를 잃었다. 아픔의 눈물을 흘린다. 아마도 가슴이 아릴 것이다. 그는 자신을 세상에 있게 했고, 온전히 자라도록 키워 낸 아버지의 죽음을 아파한다.
환자 김□□은 폐수종으로 입원했다. 그는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은 적이 있다. 폐수종의 원인으로 심장이 거론됐다. 의사는 심장 스텐트 재시술을 권했다. 급히 강원도 내에 있는 막내아들을 보호자로 불렀다. 심장 시술은 잘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날 밤, 미세 혈전이 뇌로 올라가서 뇌혈관을 막는 바람에 뇌경색이 왔다. 이번엔 큰아들이 호출됐다. 뇌경색 시술 결과는 참담했다. 뇌에 출혈이 생겼고, 뇌의 1/2이 손상됐다. 뇌는 한번 손상되면 회복 불가다. 나머지 뇌까지 손상되지 않도록 보전 치료에 들어갔다. 수술을 할 수 없다고 했다.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자 병원에서 보호자를 불렀다. 아들 셋은 의식 없는 아버지 곁에 가보지도 못하고 중환자실 밖을 서성였다. 병원에서 밤을 새운 다음 날, 아버지의 혈압이 회복되었다. 셋은 생계를 등질 수 없어 각자 일터로 갔다. 의사는 가망 없다는 말을 반복했고, 아들들은 최선의 경우 어디까지 기대할 수 있을지를 물었다. 의사는 포기하라 했고, 아들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혈압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왔다는 병원 연락에 아들들은 아버지의 회복을 기대했다.
의사는 뇌의 다른 부위까지 손상되는 것을 막으려면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뇌수술 당일에 아들 셋이 모두 호출됐다. 의사는 환자가 수술을 못 버틸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아버지는 수술을 이겼다. 뇌경색으로 의식을 잃은 뒤 환자 김□□은 한 번도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적이 없다. 중환자실에서 의료기기에 의존하여 연명했다. 자식들은 그렇게라도 버텨주기를, 결국엔 깨어나시기를 희망했다.
병원에서 세 번째로 호출했을 때는 임종을 준비하라는 주의를 받았다. 서울 사는 둘째 아들은 그의 가족을 데리고 내려갔다. 아들 셋은 병원 앞 모텔에 방을 잡고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지난밤의 무소식에 안도하며 강릉 맏이의 집에 모두 모였다. 서울 사는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더 사실 거라고 믿었다. 그녀는 자녀 등교 문제로 서울로 올라갈 생각을 했다. 긴장을 풀고 점심을 먹을 때, 병원 연락을 받았다. 때가 되었다.
중환자실 안은 분주 했다. 바삐 움직이는 의사들, 간호사들. 아버지의 침상은 비워져야 했다. 잠시 유족에게 아버지의 임종을 맞을 시간이 주어졌다. 자식들은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들어간 뒤 이십여 일 만에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겨우 얻어낸 이별의 시간. 3주 전, 심장 시술을 마치고 아버지는 함께 여행을 가기로 약속한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시술 잘 마쳤으니 이제 십 년 끄떡없다고. 자식들 역시 시술이 잘 됐다는 말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이날을 예상하지 못했다.
시술 당일 밤, 김□□은 뇌경색과 뇌출혈로 혼수상태에 이르렀다. 본인이 인지하지 못한 죽음. 생생한 삶이 절단되었다. 사자의 칼이 완전히 잘라내지 못한 명줄이 20여 일. 유족은 상실을 대비하지 못했다. 유족의 삶에 포개어졌던 고인의 삶은 끝났다. 해 질 녘의 여운 없이 일시에 빛이 사그라들고 어둠이 왔다. 생은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음에 목덜미를 내주었다. 목이 졸리는 순간 마지막 숨을 토하고는 고개를 떨구었다. 결국엔 졌다. 김□□은 본인의 칠순 생일을 하루 앞두고 세상을 하직했다.
[강릉 김 씨, □□파, □□□파, □□ 대손 김□□
강릉시 □□동 거주.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졸업.
교사로 근무하다 퇴직.
최□□와 결혼 후 이혼. 슬하에 3남을 둠. ]
그에 대한 기록은 이러했다. 사망 신고 후엔 각종 문서의 이름 옆에 ‘사망’이 찍힐 것이다. 갈 날을 알지 못한 죽음. 그는 유언이 없다. 다만, 평소 나눠줄 재산은 없으니 형제끼리 그저 화목하기만을 바란다는 말을 자식들에게 남겼다.
한 생이 갔다. 애도의 시간. 정해진 절차와 예법에 따라 상을 치른다. 장례 지내는 내내 상주에겐 고인의 목소리가 아른거린다.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조문객을 맞아 상주는 절을 한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다. 상조 회사의 진행에 따라 제사를 지낸다. 계약서 및 몇 가지 영수증에 서명한다. 밤을 새우고 부조금을 정리해서 장례비를 치른다. 운구차는 고인의 유년 시절에 살았던 마을과 직전에 거주하던 집을 지나서 매장지로 향한다. 구덩이에 관을 내리고 흙으로 덮는다. 장송곡을 틀어 놓고 흙을 밟는다. 노잣돈을 올리고, 산 자들은 곡을 한다. 곡으로 고인의 목소리를 지운다. 고인의 목소리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진다.
육신은 땅에 묻혔다. 혼백이 있는지 모른다. 고인의 넋은 온전히 저승으로 갔는가. 고인이 머물렀던 집에는 그가 쓰던 물건들이 고스란히 있다. 집기들이 정리되는 얼마간은 고인이 남긴 물건들이 자식들에게 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집이 정리되면 그가 세상에 자리했던 공간은 다른 이들의 삶의 자리가 될 것이다.
가족과 지인은 그의 개성을 기억한다. 무엇을 좋아했고, 무슨 말씀을 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렇게 누군가의 기억이 되어 머물다, 그를 기억하는 이들마저 가버리면 영영 잊힐 것이다. 무수한 죽음 가운데 하나. 한 생이 갔고, 남은 생들은 오늘을 산다.
장례, 먼저 간 자와 남은 자들을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