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신변잡기

낯선 곳, 낯익은 나

-오래전 여행

by 백수아줌마

홍성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50여 분이 지나 수덕사 정류장에 도착했다. 절 아래 상가를 벗어나 소나무로 우거진 길에 이르니, 그곳이 세속을 벗어나는 경계인 듯했다. 일주문을 지나, 오르막을 걸었다. 큰 누각을 지나 높은 돌계단을 오르면 좌우에 범종각과 종무소가 있는 너른 마당이 나온다. 바닥의 결이 매끄럽다. 시간의 입자가 흙이 되어 가라앉은 곳. 고개를 들어 전면을 응시하면,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 아래 세월의 먼지를 두른 대웅전이 고요하다. 천년 고찰의 대웅전은 빛바랜 단청일랑 그러거니 내버려 두고 반쯤 감은 눈 그대로 앉아 있다. 종무소 마당보다 몇 계단 높은 곳에 대웅전 마당이 있다. 그곳에 올라야 비로소 대웅전은 “왔느냐?”라며 알은체한다. 대웅전으로 가서 불상을 흘깃 보고 절의 기둥을 만져 본다. 고려 때 지어진 고찰의 무게를 배가 불룩한 기둥이 받치고 있다.


대웅전 구경을 마치고 종무소로 가서 사찰 수련회에 왔다고 알렸다. 수련복을 받고 안내받은 숙소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여자 수련생 숙소에 나이 많은 보살, 대학생, 직장인, 부모 따라온 중학생 등이 있다. 불상 앞에서 옷을 훌훌 벗고 수련복으로 갈아입었다. 입어 본 적 없는 개량 한복을 입고, 황하정루로 갔다.

사찰 수련회에 모이는 이들은 불자가 아닌 이들이 불자보다 더 많았다. 종교가 없는 사람은 물론 천주교 신자를 비롯하여 개신교 신자도 여럿이다. 개인적인 관심사로 검색하거나, 텔레비전이나 지면 광고를 보는 등 저마다 알게 된 경로가 달랐다. 수덕사 산사 수련회. 나는 텔레비전 광고를 보고 예약했다. 법복을 입은 사람들이 나란히 앉아 명상하는 장면을 보고 수련회가 심적 갈증을 해소할 방편일 수 있겠다 싶었다. 망설임 없이 생활비를 쪼개어 수련회비를 냈다. 방황하는 마음의 실체를 찾으려는 갈망으로 빈곤한 주머니를 털었다.

처음 수덕사에 갔을 당시 나는 학생으로, 주소지 인근에 있는 대학 부설 성당의 전례부 소속이었다. 그 덕에 수녀회나 수도회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접근이 쉬웠다. 100일 기도 프로그램을 신청하여 매일 기도하고 기도한 내용을 상담했다. 그러나 기도를 마치고도, 마음은 더 복잡했고, 외로움은 더 깊어졌다. 기도가 안식이 되지 않았다. 괴로웠다. 내 신앙에 대한 의심은 날이 갈수록 커졌다.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타지에 있는 수녀회로 오리엔테이션을 간 적이 있다. 그때 뵌 수녀님은 구멍 난 양말을 기어 신고도 밝은 얼굴이었다. 신앙이 있으면 행복해질 것 같아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나는 신자로 있는 내내 신을 의심했고, 그를 믿는 이들의 신앙을 의심했다. 나는 예수를 믿는 자들과 함께했으나 예수를 믿지는 않았다. 다만, 예수라는 이가 가난하고 장애 입은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에게 사랑을 전했다는 복음을 듣고 그를 흠모했을 뿐이었다. ‘나는 왜 이토록 가난하고, 외롭고, 서럽습니까?’ 울분이 목에 멍울처럼 자랐다. 쉬고 싶었다.


사찰 수련회의 시간표는 절의 하루 일정을 따랐다. 새벽 예불과 저녁 예불 시간에 참석하고, 하루 세 번 공양 시간에 맞춰 공양했다. 절이나 염불 모두 생소했지만, 눈치껏 따라 했다. 처음 미사에 참여했을 때도 주위 신자들을 따라 했다. 미사에 간다고 은혜를 받을 것 같지 않았다. 그저 신자로서 의무로 생각했다. 천주교 신자이면서 예불에 참여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타 종교에 대해 예를 갖춘다고 생각했다. 발우 공양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육식 없는 담백한 식단이 입맛에 맞았다. 절하는 것은 다소 힘들었다. 젊은 체력 덕에 108배는 거뜬했으나, 반야심경을 한 자 한 자 적으며 절하니까 땀으로 면티가 다 젖었다. 다음 날, 허벅지와 무릎 통증으로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들었다. 예불, 절, 발우 공양 모두 처음 겪는 일들이었지만 무리 없이 행했다.


수련회 프로그램 중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참선이었다. 참선을 시작하기에 앞서 앉는 자세와 호흡법을 배웠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숨을 관찰하라,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게 수를 세어라.” 호기롭게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반가부좌로 앉았지만 10분이 안 되어 몸이 틀어졌다. 매일 1시간 기도할 때 자세는 중요하지 않았다. 성서의 구절에 집중하며 기도 시간을 지키면 되었다. 절에서는 기도나 참선하기 전 몸부터 훈련하였다. 가만히 앉아 있으니까 어깨와 목이 뻐근하고 아팠다. 다리가 저렸다. 깜빡 졸면 죽비가 날아들었다. 회향하기 전날 밤, 용맹정진은 밤새워 참선하는 것이었다. 화두는 ‘이뭣고.’ ‘도대체 무엇이냐? 여기 앉아 있는 나는.’ 밤을 새웠다고 무언가 깨달은 바는 없었다. 단지 기도할 때처럼 성서 구절을 그러모아 애써 이미지를 그리고 상상하지 않아도 되어 편했다. 부처든 예수든 떠올리지 않았다. 방석에 앉은 나만 있었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의심하는 것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을 알려고 하는 나는 누구인가. 내 의식의 실체는 무엇인가. ‘신 앞에 선 나’가 아닌 ‘신을 의심하는 나’는 수련회가 끝나도 바뀌지 않았다. 신은 물론 내 신앙에 대한 의심이 풀리지 않았다. 불경을 적고 절을 하고, 참선 정진을 하여도 ‘의심하는 나’는 여전히 ‘의심하는 나’였다. 불교 역시 의심의 대상이었다. 수련회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내 마음을 알렸다. “좋다. 계속 의심하라.” “알았다.” 불신에 대한 고백을 죄스러워하지 않았다. 내 신앙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었다. 겹겹이 두른 막을 몇 겹 벗어낸 기분이었다. 홀가분했다.


낯선 곳에 와서, 낯익은 것을 찾았다. ‘신앙을 가진 나’보다 더 자연스러운 것은 ‘의심하는 나’였다. 참선하는 자리에 성서의 복음이 들어오지 않았다. 불경의 내용은 아는 바가 없으므로 그 역시 들어오지 않았다. 원 없이 의심했고, 생각했다. 이따금 사유에 지치면 의식을 비워 두었다. 시선을 던져두고 앉은 자리에 숨만 고스란히 남았다. 들이마시고 내쉬며 호흡의 변화를 관찰했다. 절하느라, 좌선하느라 다리는 욱신거리고 어깨가 저렸다. 그렇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제대로 쉰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온전히 마주할 수 있었던 대상은 예수가 아니다. 부처도 아니다. 오직 나. 그마저 나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나’를 찾는 여정을 여태 이어왔다. 내 정신은 시류에 흐트러지고, 감정의 질곡에 넝마가 되기도 한다. 감정과 생각이 오고 가는 중에 변함없이 유지되는 것은 그러한 ‘나를 들여다보는 나’가 내 몸과 의식의 주체라는 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 다니다 남편을 만나 결혼하여 두 아이를 낳아 키우는 지금, 수덕사에서 맺은 인연은 모두 연이 끊겼거나 잊혔다. 누구와 관계를 맺든, 어느 때, 어느 곳에 있든지 ‘나의 갈망은 무엇이며, 내 정체는 무엇인지’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자신이 누추하고 한심해 보일지라도 그것이 나의 정체는 아니다. 변하지 않고 고정된 것은 없다. 늘 변화한다. 과거의 모습에 묶일 필요 없다. 현재의 내가 고정된 것은 아니다. 미래의 나는 현재의 지위 및 신분의 연속일지라도 똑같은 나일 수 없다. 나는 나를 기억하기에 ‘낯익은 나’로서 있지만, 언제고 ‘낯선 나’가 되어 살 수 있다. 나는 미래의 낯섦이 지금 내 하루가 만들어낸 긍정적인 변화이기를 소망한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 수덕사를 다시 찾아가면 낯익은 듯 낯섦을 느낄 것이다. 과거에 산사를 찾았던 내가 지금의 내가 아니듯, 사찰 역시 바뀌어 있을 테다. 그래도 이따금 과거의 나로부터 낯선 중에 낯익음을 찾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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