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신변잡기

불안

-불안하더라도 오늘을 살며, 내일을 살 것이다.

by 백수아줌마

어느 것이 먼저였을까? 불안에 불안이 이어진 결과 우울을 만들었는지, 우울함이 원인이 되어 늘 불안했는지 모르겠다. 이유야 어찌 됐건 내 마음은 우울했고, 의식의 전면엔 불안이 일었다. 우울은 내 마음의 기저에 흐르는 강이었다. 바닥 깊은 곳에서 고요히 흐르고 있어서 의식하지 못했다. 자의식은 가난과 고독을 만나 언제든 우울을 양산했다. 숨을 들이쉬며 산소를 받아들이고 내쉬며 이산화탄소를 뱉어내듯이, 가난하고 외로운 나는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들이쉬고는 우울을 뱉어냈다. 우울은 내게 익숙한 감정이었다. 쓸쓸함을 풍기며 조용히 흐르는 강. 그것이 내 마음의 풍경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어수선하고 분주한, 신경질적인 소음이 수면을 흩어 놓았다. 물결이 잔잔해지면 잠시 불안을 내려놓고 쉬지만, 가벼운 바람만 불어도 수면은 흔들렸고 감정은 불안으로 이어졌다.


가정의 무사안일이 어느 순간 깨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불안감은 일상생활 중에도 불쑥불쑥 찾아들었다. 뭔가 잘못될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 우연히도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감내하고 극복할 수 있다는 통제력이나, 자기 효능감이 없었다. 그래서 불안했다. 자신을 믿지 못했고,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하지 못했다. 지금이 인생에 가장 좋은 때라고 믿으며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어찌 될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불안한 예감을 덮어버리려는 정신적 타협에 불과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불안했다.


내 불안의 시작은 언제쯤일까?


첫눈에 서로 반했던 연인과의 추억은 이별 뒤엔 우울한 기억이 되었다. 행복했던 기억은 고통이 되었다. 일하다가도,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다가도 문득 그에 대해 떠올리면 눈물이 흘렀다. 나는 그를 사랑했고, 그는 나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고, 내 이기심이 그를 끊어냈다. 나는 그의 짐을 같이 짊어지고 싶지 않았다. 결혼을 계획하지 않았다면 사랑이 끝나기 전에 이별을 맞진 않았을 것 같다. 우울했지만, 불안하지는 않았다. 나는 다른 사랑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남편을 만났다. 설레지 않았다. 서로에게 반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나의 평가는 ‘사귈 만하다.’였다. 그의 평가도 비슷했을 것이다. 그의 나에 대한 인상은 ‘나쁘진 않네.’였다. 애욕을 갖춘 20대 후반 두 남녀가 연애를 시작했다. 둘은 맞지 않았다. 어설픈 연애는 파국을 맞아야 했지만, 내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외롭다는 이유로 그를 붙잡았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는 연애에 종결을 내야 했지만, 이별을 통보하기엔 왠지 미안했을 것이다. 내가 쓸쓸해 보였을 테니까.


끝이 났어야 했던 두 남녀 사이에 변화가 생겼다. 이제 헤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날, 술을 잔뜩 마시고는 그에게 전화했다. 욕을 했던 것 같은데 뭐라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가 내게 찾아왔고, 그날 두 생명이 잉태되었다.


이란성 쌍생의 출현은 내 삶의 궤도를 확 비틀었다. 임신 당시에 결혼을 염두하고 만났던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의 감정은 미온적이었다. 회사에서는 승진을 두고 경쟁자에게 밀렸다. 자존심이 상했고 스트레스로 머리가 빠지긴 했지만, 좌절하진 않았다. 일하고 싶었던 분야로 진출을 도모했다. 선배의 소개를 받아 이직을 준비했다. 직장도 애인도 모두 끝내야 했다. 그러나 정신의 우울감은 신체에는 소멸에 대한 위기 신호를 보냈다. 정신이 우울함에 잠식되자, 생의 본능은 욕정을 태우고 난자를 만들어냈다. ‘번식하라!’ 몸은 충실하게 반응했다. 새 생명을 보살필 의무가 생겼다. 이직을 포기했다. 지금의 남편에게 임신을 알렸다. 고민하지 않았다. 그즈음 내 생명 윤리에 낙태는 죄악이었다. 그리고 내심 앞으로 평생 지키고 사랑할 대상이 생긴 것이 기뻤다.


잉태의 기쁨은 짧았다. 임신 내내 나는 한 마리 동물과 같았다. 임신 5주부터 지독한 입덧에 시달렸다.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감각이 극도로 예민했다. 공기에서도 냄새가 났다. 평소에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에서 냄새가 났다. 메스꺼움과 구토가 쉴 새 없이 몰아쳤다. 자는 시간 외에는 막히는 도로 위 고속버스에 앉은 채 멀미하는 느낌이었다. 나의 생존과 태아의 성장을 위해 마지못해 음식을 먹었다. 입덧에 괴로워하면서도 음식물의 성분을 늘 확인했다. 몸에 해로운 것은 먹지 않았다. 회사에서 일하다가 지치면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았다. 입덧은 임신 6개월 즈음엔 없어졌다. 입덧은 줄었지만 임신 초부터 출산할 때까지 현기증으로 괴로웠다. 현기증으로 길에서 주저앉거나 앞이 보이지 않아 넘어질 뻔한 적이 여러 번이었다. 조산기가 보여 입원한 적도 있다. 임신 막달엔 배에 두드러기가 났지만 약을 바르지 못했다. 그때 두드러기가 배에 흉터로 남았다. 출산할 때까지 아이들이 잘못되지 않을까 불안에 떨었다. 새끼를 밴 동물로서 지닌 본능적인 불안이었다.


출산하고도 나는 여전히 한 마리 동물에 불과했다. 모유 수유하려고 대학 병원을 찾아가 분만을 했지만, 모유가 잘 나오지 않았다. 젖이 충분히 불어 있지 않아 조금 나오다 말았다. 수유하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분유를 같이 먹이며 6개월을 끌다가 갑상샘 질환을 발견하고는 젖을 말렸다. 오로지 아이들을 키우고 먹이고 지키는 것이 생의 목적인 것처럼 살았다. 남편이 있지만, 난 혼자였다. 남편은 나의 고통을 조금도 공감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오로지 내 피와 살과 눈물로 키웠다.


아이들이 돌 즈음되었을 때 다시 임신했다. 산후 처음으로 남편에게 성교를 허락했다. 월경을 시작하지 않아 방심했던 탓이 크다. 이번엔 고민했다. 아이를 낳아서 키울 자신이 없었다. 임신한 뒤로 내 삶은 통제 불능이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을 바꿀 수 없었다. 그와 나의 관계는 조화롭지 못했다. 그는 아이들을 볼모로 내가 그를 붙잡은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 그와의 관계에서 나는 늘 그의 뜻대로 끌려다니는 편이었다. 내 아이들을 지켜야 했으므로 나는 인내했다. 그러나 그와의 결혼 생활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몰랐다. 둘도 벅찬데 셋을 혼자 감당할 수 없었다. 나의 아이이기도 하지만, 그의 아이를 더는 낳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아기집이 생기자마자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다. 나는 생명을 없앴다.


아이들은 크고 작은 질병을 앓으며 자랐다. 수술을 받기도 했다. 둘을 낳아 키운 어미가 가질 법한 자부심은 없었다. 정신은 생명을 없앴다는 죄의식에 짓눌렸다. 죄의식은 불안으로 이어졌다. 나의 실수로 아이들이 잘못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아이들과 있을 때는 아이들 돌보느라 분주하다가도,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면 무력감에 텔레비전만 넋 놓고 보았다. 통제 불능의 상태였다. 소중한 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미래에 불행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채웠다. 환경을 개선해야 했다. 남편과 이혼하든 결혼을 유지하든 경제적으로 나아지면 환경에 대한 통제력이 생길 것 같았다.


아이들이 다섯 살이 되자 다시 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마땅한 일을 찾지 못했다. 아이들 양육이 우선이었기에 뭐든 양육에 장애가 되면 선뜻 맡기 어려웠다. 아이들이 좀 더 자랐을 때 아이들의 협조를 받아, 자잘한 자격증을 공부했다. 육아만 하다가 책을 보니까 단맛이 났다. 잊고 지낸 익숙한 것들을 다시 접하는 반가움을 느꼈다. 경제적으로 자립하려고 취업을 위한 시험에 도전했다. 일 년 반 준비한 시험에서 떨어졌다.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한스러웠다.


남편에겐 내 인내가 보이지 않았다. 그의 눈엔 자신의 희생만 보였다. 시험에 떨어지자 남편에게서 가계에 보탬이 되도록 일자리를 구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도전에 실패한 뒤 좌절했던 내게 그의 요구는 목을 조르는 행위와 같았다.


두 아이에게 애정을 온전히 다 주지 못했다. 일관성 없는 훈육, 불균등한 애정 분배가 원인이 되었는지 아이들과의 관계가 안 좋아졌다. 엄마와 갈등이 잦았던 아이는 나날이 거칠어졌다. 엄마의 감정에 쉽게 동화되는 아이는 우울감을 느꼈다. 어느 날, 자지 않고 엄마에게 악을 쓰던 아이를 때렸다. 오래전부터 뚫려 있던 구멍이 확 벌어졌다. ‘내가 미쳤구나.’ 정신과 상담을 하고 우울증을 진단받았다. 나를 치유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나섰다. 남편에게는 일자리를 구하라는 말을 다신 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습관처럼 반복하는 그에게 어느 날 절규했다. “나를 미치게 하지 마!”


아이들은 1년 동안 놀이치료를 받았다. 나는 정신과 치료를 끝내고 아이들의 상담사로부터 부모 상담을 받았다. 나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도서관에 갔다. 아이들이 어릴 때 늘 책을 읽어 주었다. 책은 아이들과 나 사이에 유대감을 형성했다. 결혼 전엔 책 읽는 게 좋았고,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다. 편집자로서의 꿈은 좌절됐지만, 책 읽는 즐거움은 남았다. 책을 읽으며 이야기에 공감하고 분석하는 데 몰두했다. 독서 모임을 하며 자기 효능감이 살아났다. 넋두리로 남았던 말들이 글이 되었다. 불안을 글자로 옮겨 적었다. 불안에 압도당하지 않으려고 불안을 낱낱이 끄집어냈다. 정신에 모호한 안개로 있던 불안이 걷혔다. 불안을 문장으로 만들자 시야가 명확해졌다.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은 가슴속 구멍에 바람이 불었다. 아이들의 가슴에도 깊은 구멍이 뚫렸다. 절규하는 아이, 침울해하는 아이. 기질에 따라 반응은 달랐지만, 그들 모두 어두운 동굴을 지나왔다. 나만 아픈 게 아니었다. 내게 가장 소중한 아이들을 아프게 둘 수 없었다. 나 자신을 더는 망가뜨릴 수 없었다. 모든 불안한 생각을 끊으려고 노력했다. 엄마인 내가 안정을 찾자 아이들도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남편은 나의 요구를 들어주려고 노력했다. 내가 불편해하거나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개선했다.


아이들과 내가 불안에서 회복했을 때 사건이 발생했다. 남편과 나는 거액 사기를 당하였다. 소위 액땜한 셈 치기에는 금액이 너무 커서 심신의 고통이 컸다. 하지만 불안은 이것으로 끝내려고 한다. 지금보다 더 어려워지든, 나아지든, 나는 소중한 이들과 함께할 것이다. 그들은 무사히 자랄 것이고 복되게 살 것이다. 수없이 되뇐다. 믿는 대로 이루어지길.


남편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는 그대로 애썼다. 그는 가장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했다. 나는 주부로서 내 역할을 했다. 서로에게 가족으로서 헌신했다. 그럼 됐다. 마흔을 넘긴 지금, 그와의 관계에서 나름의 조화를 찾았다. 그와 나는 연인이 아니다. 그러나 자식들의 어버이로서 서로의 헌신을 기억한다. 배우자로서 서로의 아픔을 돌본다. 아이들에겐 사랑하는 마음과 더불어 미안한 마음이 늘 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의 자잘한 잘못에 발끈 성질을 낸다. 가슴 가득 사랑이 있고 그 사랑을 저들이 느끼기만 한다면, 서로에게 범하는 세세한 잘못은 잊힌다. 텅 빈 가슴을 사랑으로 채워야 한다. 그것은 이미 내게 있다. 가슴을 사랑으로 채우면 불안이 감소한다. 불행이 찾아들어도 감내할 힘이 생긴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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