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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남 Apr 07. 2023

통화의 힘

  감기 10일 차. 칩거 생활 6일 차. 불타는 금요일을 보내고 있을 친구들을 떠올리면 괜스레 서글퍼지는 저녁이었다. 그런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준 세 건의 통화가 있었다.


  첫 번째 통화는 같은 직장에서 일하던 동료 동생들과의 영상 통화. 원래 나도 참여하기로 했던 모임이었는데, 지독한 감기를 옮겨선 안 되기에 불참하게 된 것. 그들의 메뉴는 치킨, 닭발, 떡볶이. 단어만 보아도 조건반사로 침이 고였다. 반면 내 현실은 닭가슴살, 샐러드, 귤 두 개. 참으로 단출하고 간소한 메뉴가 아닐 수 없었다. 


닭가슴살은 이 일을 기억할 것입니다.


  게 눈 감추듯 건강식을 먹어 치우고 넷플릭스나 보려는데 이들에게서 영상 통화가 왔다. 난 과학기술의 발전에 고마움을 느꼈다. 7분가량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잠시나마 그들의 회식 자리에 동참할 수 있었다. 반가운 얼굴들을 보았고,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마음이 배불렀다. 휴대폰으로 영상 통화를 하는 게 일상이 되리라고는 과거에 생각할 수 없었다. 가까운 미래에는 바로 앞에 통화하는 상대방을 홀로그램으로 구현해서 대화를 나누거나, 체온이나 촉감까지 느낄 수 있는 기술 시대가 도래하지 않을까.


  두 번째 통화는 여자친구와의 통화. 여자친구와는 장거리 연애인지라, 보고 싶어도 1~2주 간격으로 만나고 있다. 그런 우리에게 ‘전화’라는 통신 수단은 마음의 거리를 가깝게 유지 시켜 주는 소중한 과학기술이다. 눈을 감고 수화기에 귀를 대고 있으면, 바로 내 옆에서 나랑 얘기를 나누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휴대 전화가 보급되기 이전에는 편지나 소포를 주고받거나, 공중전화로 연정을 나눴겠지. 물론 그렇게 연애를 했더라도 그 방식만의 애틋함이 있었겠지만, 현시대를 살아가는 나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지금, 이 순간’ 애틋함을 나누고 싶다. 그리고 그럴 수 있음에 위안받는다.


  마지막 세 번째 통화는 부모님과의 통화. 원래는 주말에 부모님 뵙고, 할머니 댁에 가려고 했었다. 이것 역시나 감기로 인해 좌절. 하지만 부모님의 따스한 음성은 자칫 좌절할 뻔했던 마음을 번쩍 일으켜 세워줬다. 현대의 가족은 여러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떨어져 사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30대가 되어 독립도 하고 싶고, 직장 근처에 자리를 잡고자 자취를 시작한 지 N년 차. 혼자 지내는 게 익숙할 법도 한데, 가끔 혼자서 끙끙 앓는 밤이나 입맛이 없는 날이면 부모님과 동생 생각이 난다. 자취 생활의 장점이라면, 오롯이 나만의 시간에 몰입할 수 있고, 부모님 걱정 덜 끼치면서 내 행동에 책임지며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점. 그래도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을 매일 볼 수 없다는 건 늘 아쉬움을 남긴다. 이 마음을 달래주는 데에도 역시 통화가 특효약인 것 같다.


  통화의 힘은 ‘정(情)의 전달’에 있는 것 같다. 물론, 실제로 마주하고 있는 사람과도 사실 오롯이 나누기 힘든 게 정이고 진심이다. 영상 통화로도 아직 그 사람의 미묘한 표정까지는 전달되지 않지만, 통화를 하는 상대방의 정을 느낄 수는 있다. 문자 언어로는 담아내기 힘든 미묘한 감정의 떨림을 ‘통화’라는 행위를 통해 꽤 밀도 있게 담아낼 수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점점 빠른 속도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들을 앞서가고 있지만, 적어도 지금 누리고 있는 ‘통화’라는 문명의 혜택을 통해 ‘나와 당신’이라는 소중한 인연의 끈을 늘 사부작거리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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