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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남 Apr 05. 2023

생명이다, 물은


  페퍼민트, 캐모마일, 그리고 루이보스티. 최소 주문 금액을 맞추기 위해 나는 세 가지 종류의 차를 앱 장바구니에 담았다. 내가 평소 즐겨 마시는 차다. 특히 페퍼민트를 좋아하는데, 효능을 떠나 치약에서나 느낄법한 청량함과 개운함을 머금은 차이기 때문이다.     


  간밤에 심한 기침으로 새벽 4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2시쯤 자려고 누웠는데 2시간 넘게 기침을 한 셈이다. 고통의 정도를 수치화 시킬 수는 없겠지만, 어제 내가 느낀 고통의 강도는 꽤 높은 수준이었다. 약에 취하고, 기침에 취해 신음하다 보니 ‘죽음’이라는 단어가 뇌리를 스쳐 갔다. 감기 정도로 이런 생각을 가진다는 게 꽤 엄살 같지만,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다가오는 ‘기침의 시간’이 두려워서, 따뜻한 차를 여러 잔 준비하게 되었다. 오늘 밤 이 차들은 나를 살리는 생명의 물이 될 예정이다.     


  ‘생명’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가장 먼저 ‘사람이 살아서 숨 쉬고 활동할 수 있게 하는 힘’이라는 정의가 나온다. 이는 인간을 포함한 동물, 그리고 식물 전반에 적용되는 힘이다.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필수요소는 너무나 많지만, 그중 물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오늘 유난히 물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이유는, 어쩌면 종일 내리는 비 때문일 수도 있겠다.     


  간만에 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비는 많은 것들을 씻겨준다. 식물은 물을 흡수해서 자란다. 빗물에는 생명이 깃들어 있다. 나는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로 몸을 씻는다. 그리고 내 몸과 마음이 정돈되도록 만든다.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에도 생명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오늘처럼 종일 집에만 있는 날에도, 나는 꼭 몸을 씻는다. 개운하게 씻고 나면 마치 죽어가는 듯한 퀭한 눈동자에도 생기가 깃든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의지가 돋아난다. 물은 생명을 머금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물리적 개념에서의 물이 아닌, 나를 살아가게 하는 물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 부모님의 사랑. 비록 떨어져 살지만, 혼자 사는 내가 건강한지, 아프지는 않은지, 밥은 잘 챙겨 먹는지 늘 전화해서 걱정해주시는 부모님의 수화기 너머 음성, 그 사랑은 생명의 수분을 가득 머금고 있다. 다음은 연인의 사랑. 평생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두 개의 소우주가 만나 사랑이라는 감정을 창조했다는 점에서, 연인 간의 사랑 역시 생명의 물기가 가득 차 있다. 또한 내 우주를 구축하고 있는 소중한 인연들, 하나뿐인 내 동생,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 아릿한 기억들, 언제든 꺼내 먹을 수 있는 추억들, 문밖에서 나랑 놀자고 울어대는 고양이들, 냉동실 가득한 닭가슴살, 어느 때고 데울 수 있는 카레. 이 모든 것들이 물이다. 나를 살아가게 만드는.     


  물은 생명을 머금고 있다. 수분을 잔뜩 머금은 것들은 나를 살아가게 만든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생명을 듬뿍 줄 수 있는 물이 될 수 있을까. 더운 날에는 시원한 냉수가,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차 한 잔이 될 수 있을까. 내면에 건강한 수분을 가득 머금고 살아가고 싶다. 입안에서 화한 페퍼민트 향이 맴도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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