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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남 Apr 04. 2023

간소한 식단의 즐거움

 

싱그러운 참치샐러드


 몸이 아프다. 몸이 아프기 시작한 지 어느덧 7일 차. 병명은 아마도 감기. 자가 진단 키트로 두 번 검사를 해봤지만 음성. 콧물이 흐른다. 재채기가 난다. 기침도 나고, 침을 삼킬 때마다 목이 따끔거린다. 감기에 취해서인지 약에 취해서인지 온종일 나른하다. 미각을 잃었다. 그리고 새로운 즐거움을 얻었다. 그건 바로 ‘간소한 식단’. 


  이틀 전 저녁,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레를 마지막으로 먹었다. 구직급여 수급자이자 자취생으로 지내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하루도 빠짐없이 먹던 밥 친구 카레와의 연을 끊었다. 이별 이유는 미각 상실. 일부러 되직하고 향이 진한 카레를 데웠음에도 먹는 내내 카레 맛을 하나도 느낄 수 없었다. 코로나가 아니라지만 아마도 후각에 이상이 생긴 모양이다. 그래서 다음날 식단은 아래와 같았다.


닭가슴살 스테이크와 닭가슴살 큐브

   

  ‘아침 – 닭가슴살 스테이크, 닭가슴살 큐브’

  ‘점심 – 써브웨이 로스트치킨(빵은 위트, 소스는 올리브 오일, 소금, 후추)’

  ‘저녁 – 써브웨이 참치샐러드(소스는 홀스래디쉬)’ 


  어차피 무엇을 먹든지 맛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간소하게 먹고 싶었다. 그리고 역시나, 식감을 제외하고는 무엇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런데 묘한 쾌감을 찾았다. 바로 간소함이 주는 ‘허전함’의 쾌락이다. 닭가슴살 스테이크와 큐브는 먹고 나서 바로 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나마 샌드위치와 샐러드는 1시간 정도는 ‘뭔가 먹었다’라는 느낌이 유지가 되었는데, 그마저도 1시간이 지난 후부터 허기를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대체 무엇이 쾌감으로 승화가 된 것일까. 나는 약에 취해 몽롱한 뇌를 최대한 활발하게 만들어서 이 글로 남기기로 했다. 간소한 식단이 주는 즐거움을 아래와 같이 세 가지로 적어보고자 한다.

   

  첫째, 과식의 예방. ‘모자람의 미학’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 대부분 음식을 먹을 때 ‘포만감’이 느껴지는 지점까지 먹는 게 일반적이다. 포만감의 사전적 의미는 ‘넘치도록 가득 차 있는 느낌’. 어딘가 모순이 느껴지는 정의인 것 같다. 가득 차 있는 수준을 넘어서 ‘넘치도록’ 이라니. 즉, 까닥하면 과식으로 이어지기에 십상이다. 과식은 곧 음식을 먹을 때 행복했던 감정을 ‘불편함’ 또는 ‘통증’으로 치환시킨다. 나는 주로 언제 과식을 했는가. 불짜장이나 매운 카레를 먹을 때, 사랑하는 가족과의 식사 때, 사랑하는 사람과의 데이트 때, 주량 이상의 음주를 했을 때 등등. 내 이성의 범주를 넘어선 행복을 느끼는 시점에 과식이 이루어졌다. 반면 미각과 식욕을 잃고 내가 택한 식단에 과식이란 있을 수가 없고, 식사 후 배는 고플지언정 속은 잔잔한 바다처럼 평온하다.

     

  둘째, 체지방 감소. 네이버에만 검색해봐도 지방을 20% 이하로 제한하는 저지방 식단, 과일, 채소, 통곡물 등이 포함된 식단은 체지방 감소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다이어트 식단에는 늘 채소와 닭가슴살이 함께한다. 몸이 아파서, 약을 먹기 위해 먹는 식단이 체지방 감소에까지 도움이 된다니. 이것 또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식욕이 왕성할 땐 운동을 병행하면서도 지키기 힘들었던 간소한 식단을, 몸이 아프고 나서야 숨 쉬듯 편하게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셋째, 비움을 통한 배움. 오늘만 해도 아침저녁으로는 닭가슴살 스테이크와 큐브를 먹었고, 점심에는 역시 샌드위치를 먹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먹자마자 소화되는 느낌이었고, 곧이어 뱃속에 ‘빈’ 공간이 생김을 느꼈다. 공간이 비어있기 때문에, 다음 끼니때 새로운 음식으로 이 배를 채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어떤 음식이 들어오든지 감사한 마음으로 먹을 마음이 채워진 것이다. 세상만사가 이러한 이치를 담고 있는 듯하다. 무엇이든 비우지 않으면 채울 수 없다. 옆자리를 비우지 않으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없고, 시간을 비워두지 않으면 새로운 직장을 구할 수 없다. 은행 계좌도 처음 개설했을 땐 텅 빈 상태였고, 우리 어머니께서 빈 상태였던 덕분에 감사하게도 내가 어머니 뱃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렇게 나는, 간소한 식단을 통해 비움의 가치와 채움의 이치를 어렴풋이 배웠다.

     

  그냥 입맛이 없고, 뭘 먹어도 맛을 못 느껴서 적게 먹은 걸 가지고 유난스레 글을 늘어놓은 것 같긴 하다. 가까운 미래에 약을 끊고(어감이 좀 이상하다.) 감기에서 해방되어 다시 이 글을 읽으면 약간 머쓱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 글을 읽을 미래의 나도 ‘나’라는 영혼공동체로 이어져 있다. 오늘의 내가, 조금은 더 나아질 내일의 나를 영혼으로 응원해본다. 


  나야, 몸이 아프더라도 마음만은 건강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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