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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남 Aug 07. 2023

#001화 @시작은 평범했습니다

  평범하다.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 초록색 창에 ‘평범하다’를 검색하면 이렇게 나온다. 말 그대로 내 군 생활의 시작은 평범했다. 내 군 생활이 꼬이기 이전, 자대배치를 받기 전 훈련병 시절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2010년 1월 4일,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수도권과 강원도 등을 비롯한 중부 대부분 지역에 폭설이 내렸다. 언론에서는 ‘100년 만의 폭설’이라고 칭하면서 피해 상황을 보도했다. 나는 바로 다음 날인 1월 5일 ‘제306보충대대’로 입대했다. 차마 부모님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아, 보충대대 정문 앞에서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혼자 들어갔다. 아마 전날 하늘이, 울고 싶은 나를 대신해 펑펑 울어준 게 아닌가 싶었다.     


  신병교육대대(이하 ‘신교대’)에 입소하여 소대 생활관에 배정되었다. 10년도 더 된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마 10 생활관에 배치되어 21번 훈련병으로 불렸던 것 같다. 이름 대신 ‘21번 훈련병’으로 불리게 되니, 내 고유의 정체성을 상실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게 되었다니. 어딘지 더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신교대에서의 첫날밤이 아직도 기억난다. 소등이 끝나고 불 꺼진 천장을 바라보며 눈만 깜빡거리고 있을 때 누가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내가 무서운 얘기 하나 해줄까? 우리 이제 659일 남았어.” 그가 그 말을 마치기 무섭게 곳곳에서 한숨과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실 신교대 생활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유튜브만 검색해봐도 ‘요즘’ 신교대에서 어떤 생활을 하는지 상세하게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당시 내가 느꼈던 선명한 감정들을 몇 가지 단어로 정리해두고 싶다.     


  첫째, 유대감. 훈련소에서 같은 생활관 동기들과는 소위 ‘전우애’라는 것이 끈끈하게 생겼었다. 모두가 빡빡머리였고, 사회에서 어떻게 지냈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는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야 하는’ 동기이자, 전우일 뿐이었다. 우리가 친해지는 데에는 다른 특별한 계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서로를 ‘~번 훈련병’이 아닌 이름으로 불러주는 사이, 부모님이나 연인에게 전화 한 통을 하기 위해 훈련 또는 작업을 할 때 치열하게 경쟁하는 사이, 심적으로 더 힘들어하는 동기를 위해 소중한 전화 한 통을 양보하는 사이,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짬밥’을 먹는 사이,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눈을 끝도 없이 치워야 하는 사이. 그 모든 시간 속에서 우리의 전우애는 자연스럽게 두터워졌다.     


  둘째, 소녀시대. TV도 없었던 그 당시, 생활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소녀시대의 ‘Oh!’는 우리 훈련병 모두의 구원이자,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고단한 훈련과 작업을 마치고, 점호 전에 틀어줬던 걸로 기억한다. 사회에서는 그다지 ‘환장’하지 않았던 아이돌의 노래가, 우리의 군 생활을 버틸 수 있게 만들어 준 ‘노동요’가 되어 가슴 속에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금세 익힌 멜로디를 걸걸한 남성들이 ‘떼창’하는 광경은, 그 일원이 되어보지 않고선 평생 겪어볼 수 없을 뜨거운 경험이었다.     


  마지막으로 셋째, 유머. ‘유머’는 군 생활을 관통하는 가장 숭고한 가치이자 ‘생명줄’이었다. 훈련이나 작업에 지치고, 헤어지고 들어온 전 여자친구가 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고, 사랑하는 부모님과 가족들의 얼굴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 날, 마음의 생명줄은 쉽사리 헐거워진다. 헐거워진 생명줄을 단단하게 동여매는 방법을 우리는 ‘유머’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다소 유치한 ‘놀이’가 있다. 이름이 ‘안나○’인 동기가 있었다. 매우 유머러스한 ‘형’으로, 나이는 우리보다 한 살이 더 많았지만, 그가 성격이 워낙 좋았던 탓에 친구처럼 지냈었다. 그는 생활관 동기의 이름을 가지고 언어의 유희로 삼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안나이지리아프리카니발싸개새끼룩끼룩셈부르크라잉넛트볼트라이앵글라이더크로스타크래프트’까지 중간에 숨을 쉬지 않고 한 번에 말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유치한 놀이였지만, 우린 서로의 이름에 ‘유머’를 부여하여, 이런 식의 주문과 애칭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정말 ‘숨이 넘어가도록’ 웃으면서, 훈련병 시절을 견뎌낼 수 있었다. 어쩌면 그가 만들어낸 놀이는 단순한 ‘단어의 연장 작업’이 아닌, ‘생명줄의 연장 작업’이 아니었나 싶다.     


  훈련을 모두 마치고 자대배치를 받던 날. 동기들과 서로 껴안고 울던 기억이 난다.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함께 동고동락하며 서로에게 엄청 정이 들었던 우리였다. 무사히 훈련을 마친 서로를 격려했고, 앞으로의 군 생활 역시 잘 헤쳐 나갈 것이라며 서로를 독려했다. 나 역시 생활관 내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완수했으므로, ‘당연히’ 자대에서도 즐겁게 생활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평범하고 순탄하게’ 군 생활의 첫걸음을 내디뎠던 기분이었다. 그 기분이 박살 나기까지는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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