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시작은 보잘것없는 파리 한 마리로부터 시작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쩌면 내가 ‘파리목의 곤충’인 ‘파리(fly)’를 하찮게 여긴 탓에 벌을 받은 건 아니었을까.
자대배치를 받은 첫날 저녁이었다. 아직 이등병의 계급장도 달지 못한 ‘짬찌’의 눈으로 바라본 내무반의 분위기는 너무도 살벌했다. 선임들의 눈빛은 날카롭거나, 우수에 차 있거나, 광기에 서려 있거나, 염세적이었다. 하나같이 말을 붙이기 어려운 인상이었다고나 할까. 대학생 시절 꽤 선후배들의 사랑을 받았었던 나였기에, 내 안에 인간 전반에 대한 두려움은 거의 거세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판이었다. 오로지 ‘계급’만으로 유지되는 소사회 안에서 나의 지위는 최하위였고, 마치 초식동물이 된 얼굴로 사색이 되어 내무반에 짐을 풀었다.
보통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선임들이 신병에게 꽤 관심을 보이지 않던가. 수많은 질문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했고, 재치 있는 대답으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던 나였다. 그러나 나의 예상과는 달리 선임들은 나 따위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훗날 나와 막역한 친구 사이가 된, 당시 일병이었던 ‘윤○모’ 일병은 나를 잠시 냉소적으로 쳐다보더니 이내 시선을 거두고 자신의 안경알을 묵묵히 닦을 뿐이었다. 다소 살집이 있고 안경을 쓴 ‘윤○환’ 일병은 구석에 앉아서 무슨 책을 읽고 있었다. 배우 권상우를 닮은 ‘지○훈’ 이병이 유일하게 건조한 인사를 건넸다.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너 이름이 뭐야? 대답은 크게 하는 게 좋을 거야. 모르는 거 있으면 나한테 이것저것 물어봐. 아, 선임들 군번이랑 이름 다 외워야 하니까 내가 적어줄게. 수첩 있지?” 등의 말을 해줬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앞에서는 차갑고 뒤에서는 따뜻하게 챙겨주는 성격의 친구였지만, 당시 내 눈에는 그 친구가 상당히 크게만 보였다. 나보다 불과 몇 달 먼저 들어왔다는 사실에, 이다지도 큰 위압감을 느끼게 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다. 이곳은 훈련소의 생활관이 아니다. ‘평등’은 사라지고, 계급과 계급으로 나뉘는 불평등이 지배하는 세계. 내무반이었다.
저녁이 어떤 기관을 통해 들어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자대에 배치받은 날, 저녁을 먹으러 갈 때조차 긴장의 연속이었다. 군부대의 구성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대대’ 아래에 ‘중대’가 있고, ‘중대’ 아래에 ‘소대’가 있다. 소대 내에서도 ‘분대’로 나누어지는 구조다. 나는 ‘1대대 3중대 1소대 1분대’에 소속되어 있었고, 이를 ‘3CO 1P 1S’라고 불렀던 것 같다. 어쨌든 매우 생소한 용어들을 익히느라 내 뇌는 이미 과부하가 온 상태였다.
병사식당으로 이동할 때도 분대별로, 각 분대의 ‘분대장’이 선두에 서고 분대원들이 뒤에서 열을 맞춰서 걸어가야 했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간부를 만나거나, 타 중대의 선임을 만나면 분대를 이끄는 최고선임이 경례를 해야 했다. 나는 아직 ‘보호기간’ 비슷한 상태였으므로, 같은 분대원들의 식판조차 들지 않고 맨손으로, 맨 뒤에서 따라 걸었다. 그때까지도 나의 내면은 바들바들 떠는 초식동물 그 자체였다. 끊임없이 처음 보는 선임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외우느라 바빴다.
병사식당에서 식사할 때 역시 긴장과 배움의 연속이었다. 각 분대의 최고선임인 분대장이 숟가락을 들고 “먹자”라고 말할 때까지 분대원들은 모두 입을 다문 채 자신의 식판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분대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분대원들은 일제히 “식사 맛있게 하십쇼!”라고 외치며 숟가락을 들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10년도의 규칙은 엄격했다. 밥을 먹을 때 쩝쩝거리는 것 금지. 숟가락과 젓가락을 양손으로 동시에 사용하는 것 금지. 잡담 금지. 그래도 다행인 건 훈련소에서처럼 ‘식탁에 팔꿈치 닿는 것 금지’까지는 면한 것 같았다.
나는 이미 기가 빨린 상태라 식사에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를 제외한 다른 선임들은 이미 식사를 끝낸 상태였다. 모두가 내 식판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때 가장 인상이 험하고 성격이 나빠 보이던 ‘이○환’ 일병이 나를 보며 소리쳤다.
“야, 신병. 우리가 너 먹는 거 기다려줘야 하냐? 빨리빨리 안 먹냐?!” 밥을 좀 느리게 먹는 게 죽을죄라도 되는 듯, 그는 충혈된 눈으로 나를 쏘아봤다. “죄송합니다.” 내가 그날 식사 시간에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그 이후로도 이 문장은 한동안 내 군 생활의 동반자가 된다. 생전에 무슨 죄를 그렇게 지었는지,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그 이후로도 혀가 빠지도록 반복했던 것 같다.
식사를 마치면 저녁 인사는 다음과 같다. “식사 맛있게 하셨습니까!” 이는 불특정 다수의 선임이 대상인 인사말로, 그냥 지나가다 마주치는 모든 선임 또는 간부한테 습관처럼 해야만 했던 인사말이었다. ‘딱보’로 각자의 식판을 깨끗이 설거지하고 내무반으로 돌아가는 길은, 마치 남은 나의 군 생활만큼이나 길게 느껴졌다.
그렇게 내무반에 도착했고, 청소했다. 청소가 끝나면 반드시 샤워해야 한다. 나는 ‘행동이 빨라야만 선임들에게 인정받는다.’라는 신념으로 샤워 역시 5분 정도로 끝마치고 내무반에 와서 ‘정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윤○모 일병에게 욕을 먹었다. 사유는 ‘샤워를 대충 하고 왔다는 것’. 아니 밥은 천천히 먹으면 욕을 먹고, 샤워는 빨리 끝내면 욕을 먹는 것인가.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렇게 나의 뇌는 점점 더 과부하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대부분의 선임이 샤워를 마치고 돌아와 TV로 아이돌의 뮤직비디오나 보고 있었던 그 무렵, 내 군 생활을 결정적으로 박살 내버린 ‘그 사건’이 터졌다.
위잉-
내 귀를 거슬리게 만드는 소리. 한 마리 파리였다. 꽤 커다란 파리가 내무반을 종횡무진 비행했다. 선임들도 은근히 신경 쓰이는지 TV를 보는 와중에도 종종 눈으로 파리를 좇는 듯 보였다. 드디어 내가 나설 차례였다. 학창 시절 ‘곤충 킬러’로 활약하던 내가 뭔가 보여줄 차례였다. ‘지금 내무반을 방황하는 저 파리를 제거한다면, 내 존재감을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을 거야.’ 나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른 선임들은 내가 뭘 하려고 하는지 눈치조차 못 채고 있었다. 나는 방금 샤워를 마친 수건을 손에 꽉 쥐었다. 충분히 젖어 있었기 때문에 휘두르면 파리채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파리가 내 시야에 들어왔던 찰나에, 나는 풀스윙으로 수건을 휘둘렀다.
쨍그랑!
그리고 순간 난 내 귀와 눈을 의심했다. 바닥에는 파리 대신 조각난 형광등의 파편들이 나뒹굴었다. 파리를 대신해서 산산이 조각난 것은 내무반의 형광등이었다. 아니, 정정한다. 그것은 남은 내 군 생활이었다.
난 당연히 상황을 수습하려고 했다.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져와서 바닥을 청소하려고 했다. 혹시나 선임들의 군화에 들어갔을지도 모를 유리 조각들을 내가 직접 확인하고, 혹시 생길지도 모를 사고에 대비하고자 했다. 하지만 당시 나는 ‘노란 견장’을 양어깨에 달고 있었던 ‘2주 대기’ 기간이었다. 이 기간에는 선임들을 보고 그저 ‘배우기만’ 하는 기간이었다. 일종의 수습 기간. 즉, 나에게는 실수를 만회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내 자리에 앉아서, 입에서 육두문자를 읊조리며 청소를 하는 상병, 그리고 병장들의 모습을 고통스럽게 지켜볼 뿐이었다. 분명 한겨울이었지만,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