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등 사건’ 이후 나는 나쁜 의미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태도는 기본적으로 위축되었고, 선임들의 눈치를 더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실수를 만회해야만 해’라는 생각으로 가득했고, 어떻게든 ‘문제아’ 타이틀을 떼고 싶었다. 매일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다른 시련이 나를 찾아왔다.
파리를 잡는답시고 형광등을 깨버린 내가 왠지 안쓰러웠는지, 하루는 내무반에서 내 건너편에 자리를 잡고 있던 ‘윤○환’ 일병이 자기 쪽으로 오라고 나를 불렀다.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아마도 일과와 청소를 마치고 샤워까지 끝낸 상태였던 걸로 기억한다. 군복이 아니라 생활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이병 문*우!” 나는 습관처럼 관등성명을 하고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는 퍽 다정한 태도로 내 어깨를 두드려줬다.
“너무 기죽지 마. 누구나 실수할 수도 있는 거니까.” 그의 따뜻한 말을 들으니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남자들의 세계에서 눈물을 보인다는 것은, 내면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일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꾹 참았다. 고마운 마음과 함께 그에게 친밀함을 금세 가질 수 있었다. 그는 나를 챙겨주고 싶었는지 여러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여자친구는 있어?”
“헤어졌습니다.”
“아, 그럼 뭐 좋아하는 거라도 있어? 사회에서 뭐 좋아했었어?”
“노래 부르는 거 좋아했습니다.”
“음(아마도 윤○환 일병은 노래에는 영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럼 야동(야한 동영상) 좋아해?”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의 질문이 내 인식을 더 악화시키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방심하고야 말았다. 나는 그가 19금 동영상을 좋아한다고 판단하고, 그의 수요를 충족시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합니다.”
“그래? 어떤 거 좋아해?”
“죄송합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야동도 장르가 있잖아. 어떤 장르 좋아하냐고.”
그렇다. 드라마나 영화, 문학에도 다양한 장르가 있듯, 그가 알고 싶었던 것은 나의 ‘19금 취향’이었던 것이다. 나는 눈을 반짝이며 웃음을 띤 채 ‘그런’ 질문을 하는 그가 다소 무례하다고 생각했고, 그에게 얕보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장르를 머릿속에서 찾았다. 아마도 그는 내가 가학적이거나 피학적인 취향의 장르를 말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대답은 형광등처럼 그의 예상을 깨버렸다.
“저는 **물 좋아합니다.”
“뭐?! **물?!” 아직도 안경 안쪽으로 동공이 확장되어 당혹스러워하는 그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으로 히로인을 괴롭히고, 농락하는 게 좋습니다.”
“야, 이거 미친놈이었네. 너 괜찮은 거야? 아,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이상하네. 너 상담이 좀 필요할 거 같은데? 하, 잠깐만 건너가서 일기 쓰고 있어 봐.” 예상과는 달리 심각했던 그의 반응. ‘내가 또 무슨 실수를 한 걸까.’ 나는 금세 또 풀이 죽어서 묵묵히 수양록을 작성하고 있었다. 윤○환 일병은 그의 동기인 ‘신○호’ 일병 쪽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귀에 대고 속삭이는데, 건너편에 앉은 나도 충분히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소리였다. 마치 같은 생활관에 있는 다른 선임들도 다 들으라는 느낌이었다.
“야, 쟤 **물 좋아한대.” 그 말을 들은 신○호 일병은 작은 눈을 찡그렸다. 그는 대각선 끝에 앉아서 나를 흘끔 바라봤다. 보통 사람은 마치 해충이나 더러운 것을 바라볼 때 저런 표정을 짓지 않나. 나는 ‘또 실수했구나’ 싶었다.
우울하게 다음날 작업과 일과를 마쳤고, 샤워를 마치고 또 수양록을 작성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지○훈 이병이 다가와서 물어봤다.
“야, 너 **물 좋아한다고 했다며?” 나는 힘이 빠졌지만, 다른 대꾸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진짜 좋아하냐?”
“아닙니다. 그냥 농담 삼아서 그렇게 대답했을 뿐입니다.” 그에게는 진심을 전할 필요가 있었다.
“...휴. 아니, 그냥 좀 평범할 수 없어? 괜히 특이한 척하지 말라고. 벌써 소대에 소문 다 났어. 너 **물 좋아하는 이상한 놈이라고. 그냥 걱정돼서 얘기해주는 거야.” 이렇게 말하고 그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나는 자대배치 후 일주일도 되지 않아 두 가지 타이틀을 차지하게 되었다. ‘자대배치 첫날 형광등을 깨고, **물을 좋아하는 특이한 놈’. 그 뒤로도 여러 선임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경멸’의 빛을 볼 수 있었다. 물론 나의 자격지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소문’이 퍼지는 속도는 정말 걷잡을 수 없었다. 원래 소문은 ‘진실’보다 발이 빠른 법이다.
지금 생각해도 조금 야속했던 건, 나를 경멸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수많은 선임이 과연 ‘야한 동영상’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사람들이었을까. 아마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성적인 취향’까지도 일반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일반적이라는 건 대체 뭘까. 평범한 남자 배우와 여자 배우가 몸의 대화를 나누는 것. 그 일반성에서 벗어난 모든 것들을 다 변태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이 글은 ‘수필’이기 때문에 ‘이렇고 저런’ 성적인 취향에 대해 상세히 서술할 수 없지만, 내가 알기로 정말 기묘하고 지독한 성향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기묘하고 지독하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나의 가치관과 도덕관의 안경을 쓰고 바라봤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닐까. 수요와 공급이 정확히 일치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사랑과 욕구를 즐길 권리가 있다. 그것이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만약 내가 ‘정말로’ ‘**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맞았다고 해도, 그 취향이 그렇게까지 무참히 짓밟히고 비난받을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첫인상의 덫. 아마도 나는 이미 그 덫에 걸려 있었던 것이었다. 파리를 잡겠다고 젖은 수건을 휘둘러 형광등을 깬 그 날, ‘쟤는 이상한 놈이야.’라는 생각이 생활관 내 선임들의 집단무의식에 산불처럼 번졌다.
‘특이한 놈’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는 19금에 대한 취향을 얘기할 때조차 ‘절제’가 필요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