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부터 길치였다. 길치란 길에 대한 감각이나 지각이 매우 무디어 길을 바르게 인식하거나 찾지 못하는 사람을 뜻한다. 초등학생 땐 교회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길에 ‘다른 동네’를 우리 동네로 착각해서 잘못 내린 적이 있었다. 당연히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었고, 나는 생소한 동네를 헤매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다행히 내 집 주소와 전화번호는 외우고 있었고, 고맙게도 어떤 아주머니가 나를 도와주셔서 부모님과 눈물의 상봉을 했던 기억이 있다.
한번은 강남역에서 길을 잃어버렸던 적도 있었다. 그땐 고등학생이었는데, 가족들과 만나서 돈까스를 먹으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아버지가 랜드마크가 될만한 큰 건물들의 이름을 알려주었는데, 나는 길을 찾지 못해서 15분 정도면 도착할 거리를 1시간 동안 헤매서 도착했다. 자세히 알려줘도 찾아오지 못하는 나를 보며 혀를 끌끌 차시던 아버지가 떠오른다. 얘가 커서 사람 구실은 할 수 있을까 걱정하던 눈빛이었을까. 다행히 지금은 스마트폰 지도앱을 통해 어디든 잘 찾아다니는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
요즘은 군대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하던데, 뭐 당연한 얘기지만 내가 군 복무를 하던 2010년에는 스마트폰은커녕 전화도 눈치를 보며 하던 시절이었다. 전화기의 유무와는 별개로, 길을 잘 찾는 능력은 군인에게 정말 중요한 능력이다. 태생적으로 길에 대한 감각이 떨어지던 내가 겪은 또 다른 에피소드를 소개하고자 한다.
5분 대기조 훈련. 내가 기억하는 용어다. 한참을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아서 검색을 통해 기억을 소환했다. 일정 숫자 이상의 병력이 주둔하는 병영이나 숙영지에서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하여 군대에서 운용하고 있는 부대를 ‘5분대기조’라고 한다. 줄여서 ‘5대기’. 침대에 누워 자다가도 사이렌이 울리면 5분 이내로 현장에 진입해 군인으로서 장비를 갖추고 싸울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을 말한다.
기억을 더듬어 떠올린 훈련을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생활관에서 자고 있을 때 사이렌이 울린다. 모두 벌떡 일어나서 자기 관물대에 있는 물건들을 더플백에다 ‘때려’ 박는다. 빠르게 군복으로 환복한다. 이등병들은 행정실로 뛰어가서 총키를 받아와, 총기함을 연다. 각자의 총을 가지고 빠르게 내려가서 더플백을 특정 지역에 쌓는다. 각자 분대별로 정해진 지역으로 뛰어가서 자리를 잡는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을 간부들이 체크한다.
5분 대기조 훈련은 꽤 긴박한 훈련이고, 익숙해지면 전날 미리 더플백에 짐을 ‘예쁘게’ 쌓기도 하고, 심지어 미리 군복을 입고 취침하기도 한다. 하지만 첫 훈련 당시 난 이등병이었고, 우리 소대는 소위 말하는 FM을 강조하는 부대였기 때문에 편법은 허용되지 않았다. 나는 분대장의 설명을 전날 듣고, 어느 지점으로 모여야 하는지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길치라는 데 있었다.
훈련 당일. 사이렌이 울렸다. 나는 빠르게 더플백에 내 짐을 때려 넣고, 군복으로 빠르게 갈아입었다. 그리고 행정실로 뛰어가 열쇠를 받아왔고, 신속하게 총기함을 열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더플백을 쌓으러 갈 때부터 생겼다. 무거운 총을 맨 채, 그보다 더 무거운 더플백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허둥지둥 밑으로 내려갔는데 일단 어디에 더플백을 쌓아야 하는지도 찾지 못했다. 허둥지둥 부대 근처를 뛰어다니고 있었는데 이를 지켜본 옆 생활관 선임이 고함을 쳤다. “미친놈아! 반대쪽이야! 정신 안 차려!” 나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반대편을 향해 뛰었다. 그곳에는 온갖 더플백들이 쌓여 있었다.
짐을 내리고 나서도 문제였다. 분명 어디로 오라고 했었는데, 그 장소가 어딘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것이었다. 아니 애초에, 자대에 배치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여서 그랬는지 도무지 내가 가야 할 장소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무작정 ‘위로’ 뛰었다. 나와 함께 참호에 들어가기로 한 선임을 찾아 헤맸다. 아마 내 기억으로 1분대 이○환 일병이 포함된 참호에 들어갔어야 했던 것 같은데, 나는 전혀 다른 ‘3분대’ 지역으로 뛰어갔다. 그곳의 선임들은 나한테 욕을 한 바가지 했다. “저기 보이지? 저쪽으로 뛰어가! 지금 너 때문에 늦어지고 있어!” 난 정말 땀을 줄줄 흘리면서 겨우 도착했다. 얼굴은 사색이 되었고, 이미 다른 선임들과 후임들은 얼굴에 위장크림을 바르고, 근처의 나뭇가지나 나뭇잎을 통해 방탄모 위장을 마친 상태였다. 허둥거리며 나뭇잎을 모으고 있었는데 아뿔싸, 심지어 방탄모도 쓰지 않은 채로 찾고 있었는데 대대장 눈에 딱 걸렸다.
“몇 소대지?” 대대장이 물어봤다.
“...이병 문*우, 1소대입니다.” 이 대답을 하고 나는 알았다. 아, 정말 끝장이구나. 이런 훈련에서조차 허둥지둥거리다니. 아마 대대장이 물어봤던 이유는 내가 포함된 소대의 소대장과 부사관에게 한 소리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보통 소대장과 부사관이 털리면 그다음은 분대장, 그리고 분대원 순서다. 지금 생각해봐도 참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길을 잘 찾는 인간이었다면 그토록 시간이 지체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늦게까지 정신없이 나뭇가지를 찾아 헤매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날 정말로 ‘길치가 잘못’인 줄 알았다.
전역 후 길치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사전적 의미에서의 길치는 생활에서 여러 불편을 겪을 수는 있지만, 스마트폰 또는 타인의 도움을 통해 얼마든지 원하는 목적지로 이동할 수 있다. 문제는 ‘인생의 길치’가 되는 일이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언제든 방황할 수 있다. 지금 내가 걷는 길이 옳은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언제든 상황에 따라 방향을 틀어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동안 내가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는 일도,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도 찾아오는 법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살다 보면 길을 잃을 수 있는, ‘잠정적 길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언제든 미아가 될 마음의 준비를 해야만 한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아 헤맬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결국 길치로 살아가는 건 잘못이 아니다. 다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길을 찾으려는 의지, 우리는 그것을 잃어서는 안 된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열심히 헤매고 있을, 세상의 모든 길치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