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념들이 수북하게 쌓이는 요즘. 지금 하는 일과는 별개로 소설을 한 편 더 쓰고 싶은 욕심을 늘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또한 아직은 생각뿐인 것 같다. 내가 쓰고 싶은 소재, 관심을 가지고 깊게 파고들고 싶은 주제를 찾는 일부터 난항이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가는 게 잘 사는 것인지 아직도 나는 잘 모른다. 그저 이렇게 글을 끄적이며 뭐라도 찾고 싶어 어둠 속에서 손을 휘적거리는 게 고작이다. 이 움직임이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주변을 둘러본다. 불이 꺼져 깜깜하지만, 스탠드 불빛으로 오롯이 빛나는 작은 책상 위의 공간을 기점으로. 굴러다니는 감기약 봉투. 여러 개의 립밤, 후추, 참기름, 그리고 바닥에 놓인 각종 잡동사니까지. 마치 내 정신 속 무질서한 세상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무언가가 쌓인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정리하지 않은 택배 상자가 쌓이고, 옷장에는 매해 늘어가는 옷가지들이 쌓인다. 신발장 속 몇 년 동안 신지 않았던 신발 위에는 곰팡이가 내려앉는다. 이렇게 쌓여가는 것들은 정신건강에 좋지 않은 것 같다. 쾌적하게 공간을 유지하는 게 이다지도 어려운 일이었다니. 꽤 긴 자취생활을 시작하기 전에는 몰랐던 일이었다.
사실 쌓이면 쌓일수록 좋은 것들도 꽤 있다. 계좌의 돈이 그러하고, 성공 경험이나 아름다운 추억들이 그러하다. 하지만 이런 것들도 늘 내가 원하는 만큼 순탄하게 쌓이지는 않는 법이다. 쌓는 과정에서의 고통이 동반된다. 그래서 인생이 어렵고, 잘 사는 게 어려운 거겠지. 삶은 늘 크고 작은 퀘스트의 연속이다. 책상 위에 무질서하게 올라간 것들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들도 다 내 기준대로 정리해 놓은 거였네?’
간 건강을 생각해서 먹고 있는 밀크씨슬, 그 옆에 있는 글루타민, 종합비타민, 아르기닌 등 내 건강을 위한 것들은 책상의 우측에 모아두었다. 닭가슴살을 그나마 더 맛있게 먹기 위한 참기름, 후추통, 즉석밥은 좌측에 있다. 바람에 흩날리는 나약한 머리카락을 고정하기 위한 스프레이와 노화를 늦추기 위한 올인원 로션은 전면에 있다. 다이소에서 구매한 플라스틱 책장도 마찬가지이다. 소설, 철학, 과학, 만화 등 각 장르에 맞게 꽂아두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어쩌면 미(美)의 기준이 ‘오늘의 집’ 같이 잘 정돈되고 꾸며진 사진들에 있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내가 지내는 곳이 더 무질서하고 불안하게 느껴졌던 것이 아닐까. 난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내 공간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돌아보니 내 인생도 마찬가지였다. 아등바등 살아온 것 같지만, 돌이켜보면 꽤 이룬 것도 많은 인생이다. 매일 내가 이루지 못한 것들을 떠올리며 괴로워하기보다는,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미룬이’라며 자책하기보다는, 서투르더라도 꽤 많은 것들을 적재해왔던 인생이라고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결론.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의미 있는 일들을 쌓으며 살아가자. 그리고 나를 더 칭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