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에 대하여

by 카미남

‘화(火)’를 검색해 보니 ‘몹시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서 나는 성’이라고 한다. 한자도 불을 뜻하는 ‘火’와 같다. 직접 검색해서 뜻을 찾아본 건 처음이다. 그만큼 화라는 감정은 내 삶에서, 더 나아가 인간의 삶에서 특별한 설명이 필요 없는, 매우 익숙한 감정이다.


하지만 익숙하다고 해서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엔 너무 고통스러운 감정이다. 요즘 들어 자주 차오르는 화를 다스리기 위해, 오랫동안 집에 묵혀두었던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책 제목은 『화를 다스리면 인생이 달라진다(긍정적 삶의 힐링 코치)』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나에게 인생의 전환점 같은 큰 깨달음을 주지는 못했다. 책 저자가 스님이다 보니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차원이 달라서일 수도 있고, 또는 내가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에 작은 그릇을 가지고 있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기에는 충분했다.


저자의 사상을 요약하자면, ‘화를 내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다. 화는 억누르거나 맞서 싸워야 하는 개념이 아니라, 그냥 애초부터 낼 필요가 없는 감정이다. 화를 내는 순간 행복한 감정이 사라진다. 따라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책을 읽는 과정에서 계속 의문을 제기하고 싶었다.


‘도대체 화를 내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지? 그리고,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인 ’화‘를 내는 게 뭐가 문제지?’

하지만 책을 다 읽어갈 즈음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 나름의 작은 깨달음을 글로 남겨서 곱씹고, 내 삶에 적용하며 살아가고자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게 되었다.


첫째, ‘화’는 ‘불’과 같다. 불과 같아서, 화를 내는 순간 모든 것을 태운다. 나는 화의 무서움을 최근 절실하게 느꼈다. 몇 달 전부터 내면에 화가 너무 쌓였고, 그걸 ‘스트레스’ 정도로 치부하고 ‘무시’했다. 그 결과 내 안에 가득 찬 화를 다스리지 못했고, 술을 먹고 감정의 임계점을 넘긴 시점에서 아무 죄가 없는 사람에게 화를 분출했다. 그 희생자는 바로 내 여자친구였다. 그저 술에 취한 내가 걱정돼서 전화했을 뿐인데, 내가 굉장히 공격적으로 말했다고 한다. 아무도 없는 길에서 고래고래 소리도 질렀다. 정말 너무 한심하다. 화에 잡아먹힌 나 때문에 내 여자친구는 그날 너무 큰 상처를 받았다. 내 사과를 받아준 게 고마울 정도로. 나는 2년 넘게 만난 내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를 ‘술’과 ‘화’의 끔찍한 조합으로 한순간에 태워버릴 뻔했다.


둘째, ‘화’는 누적된다. 이것을 분명히 인지하지 않으면 언젠가 또 소중한 사람 앞에서 실수하는 날이 생길지도 모른다. 나는 이것을 그 무엇보다 경계하며 살아가고자 한다. 전에는 화를 그저 누구나 받는 스트레스 정도로 치부했고, 이 정도도 조절하지 못하면 한심한 직장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퇴근 후 무산소 운동, 러닝, 또는 사람들과의 술자리 푸념으로 ‘풀렸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건 화의 본질에 전혀 다가가지 않았던 것이었다. 결국 화는 매번 겹겹이 내 안에 쌓이고 있었고, 더 이상 눌러 담지 못하는 순간이 오자 ‘뻥’ 하고 터졌던 것 같다. 물론 기폭제는 ‘술’이었지만.


셋째, ‘화’를 직시하고자 한다. 처음에는 울화 폭발의 기폭제였던 ‘술’ 자체를 끊으면 된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약 10일 정도 금주하면서 든 생각은, 그것은 본질적인 해결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술에 절여져서 감정의 제어가 느슨해지면,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이것은 정말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다. 많은 실수를 하게 만들었던 술, 그중에서도 ‘소주’를 가장 경계하며 평생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여자친구와도 약속했다. 그러나, 좀 더 본질적인 해결 방법은 바로 화를 직시하는 것이다. 내가 어떤 것 때문에 화가 났었는지, 어떤 일이 요즘 내 감정과 삶을 갉아먹고 있는지, 무엇이 나를 불행하다고 느끼게 만드는지를 수시로 마주하고자 한다. 그 원인을 글로든, 말로든 반드시 표현하고 정리할 계획이다. 그리고 ‘인정’하는 것이다.


‘아, 나는 이 일로 인해서 화가 났었구나. 난 그 순간만큼은 인간 이하였구나. 최악이었구나. 바닥으로 떨어졌으니, 다시 나 자신을 가다듬어야겠다. 왜냐하면, 화를 내면 지는 거니까.’


책의 저자인 스마나사라 스님의 견해에 따르면, 위와 같은 사고로 화를 대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 역시 그렇게 해보려고 한다. 애초에 화를 아예 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성인(聖人)이 아니고서는 그 경지에 이르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내가 ‘어떤 일로 화가 났구나’라는 것 정도는 똑바로 마주하고자 한다. ‘화’라는 감정을 제대로 마주하는 순간 그 감정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현상을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화가 많은 세상에 살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이유로 화를 낸다. 질투로, 자기혐오로, 오해로, 심지어 어깨의 가벼운 부딪힘만으로도 화가 나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범인(凡人)’의 한 사람으로서,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와 가장 가까운 내 연인한테까지 화를 표출하는 멍청한 짓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평생 나의 부끄러운 감정인 ‘화’와 마주하고, 원인을 생각하고, 그것을 활자화시켜서 나 자신을 다듬어가며 살아가고자 한다.


글의 끝자락에서 다시 생각해 보니 이 책이 내 삶에 던진 돌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그 파장은 꽤 길게 이어질 것 같다. 죽기 전까지 화를 다스리며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러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