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뭐냐고 묻는다면, ‘러닝’을 빼놓고 대답하긴 어려울 것 같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취미’란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 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최근의 난 러닝을 취미라고 말할 정도는 되지 않을까.
이틀 연속으로 술을 마셨다. 음주도 취미라면 취미라 할 수 있겠지만, 건강한 취미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십분 양보해서 ‘정신건강’에는 가끔 도움이 된다랄까. 나름 속죄하는 마음으로, 주말과 이별하고 월요일을 겸허히 받아들이자는 마음으로 러닝을 하고 왔다. 올해 들어 12번째 러닝이었다.
취미로 하는 러닝으로써 나만의 몇 가지 규칙이 있다. 첫째, ‘주문’이다. 내가 뛰는 수원월드컵경기장은 한 바퀴가 약 800m 정도 된다. 따라서 5km를 뛰기 위해서는 6바퀴를 조금 넘게 돌아야 한다. 애초에 생각을 좀 비우고자 뛰는 게 목적인지라, 진짜 생각 없이 뛰다 보면 몇 바퀴를 돌았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이를 방지하고자 나는 일종의 주문처럼, 나만의 페그워드를 만들어 뛰곤 한다. ‘일(1)’본 카레는, 코코‘이(2)’찌방야, ‘삼(3)’선 짜장 먹고 싶다, ‘사(4)’천 짜파게티 먹고 싶다, ‘오(5)’리 불고기 먹고 싶다, ‘육(6)’개장 먹고 싶다…, 이런 식이다. 메뉴가 가끔 바뀌긴 하지만 거의 이런 패턴이다.
둘째, ‘남과 비교하지 않기’이다. 러닝을 하다 보면 여러 고수를 목격하게 된다. 뛰는 자세가 좀 엉성하다고 느껴지는 통통한 체형의 남자분이 나를 추월하더니 어느새 저 멀리 점이 되어 사라진다거나, 딱 봐도 우리 아버지보다 연세가 많으신 분이 나보다 훨씬 빠른 페이스로 뛰신다든지, 나보다 근력이 부족해 보이는 여자분이 깃털같이 가벼운 몸놀림으로 나를 앞질러 가는 걸 목도하곤 한다. 특히 이런 고수들은 마라톤 대회에 나가보면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일일이 비교하다 보면 내 하찮은 신체 능력에 의욕이 떨어지곤 한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러닝에 있어서 만큼은 절대 남과 비교하지 않기로. 비교 대상은 ‘어제의 나’로 족하다. 어제의 나보다, 지난주의 나보다 단 10초라도 기록을 단축했다면, 느리지만 분명히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일 테니까.
셋째, ‘머리를 비우기’이다. 러닝을 취미로 갖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러닝을 즐길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복잡한 머릿속을 느슨하게 풀어주는 ‘이완제’로써 러닝을 즐긴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잘살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 암 투병 중이신 할머니에 대한 걱정 등은 퇴근 후에도 무겁게 내려앉아 뇌를 뭉치게 만든다.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를 풀어주듯, 머리를 비우고 내 페이스대로 묵묵히 뛰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조금은 평온해지는 것을 느낀다.
나는 결코 운동지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자각하고 있었고,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없던 재능이 생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와는 다르게 SNS에서 나랑 친분이 있던 친구들이나 동생들이 마라톤 대회에서 거둔 뛰어난 성적을 종종 보게 된다. 마음으로나마 박수를 보내곤 한다. 저마다의 이유로 바쁘게 살고 있을 테고, 무소식이 희소식인 만큼 일부러 연락해서 약속을 잡을 여유는 서로 없겠지만, 그들의 사진에 조용히 ‘하트’를 눌러본다. 다들 저마다의 이유로 지독하게, 또는 간절하게 그들만의 ‘취미’를 그들만의 페이스로 이어나가는 중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