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와 함께 오랜만에 누워서 영화 <얼굴>을 봤다. 작년에 개봉한 작품이고, 난 이 영화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는 상태로 보게 되었다. 그리곤 곧 몰입하게 되었다. 눈 깜빡이는 시간조차 아깝다고 느낄 만큼 집중해서 보다 보니, 어느새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다. 영화를 보며 느꼈던 점을 잊기 전에 글로 적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이 작품은 관객에게 여러 메시지를 던진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얼굴’이 가지고 있는 이중성, 즉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페르소나와 ‘민낯’인 아니마의 충돌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1970년대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이자 ‘노동자’인 프롤레타리아와 나쁜 부르주아로 그려지는 백주상(임성재 배우, 이하 주상)의 계급 간 갈등, 또한 여성 인권 문제와 건강한 페미니즘 운동의 정당성에 대해서도 논해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인 ‘The ugly’를 근거로 ‘외모지상주의’라는 다소 흔한 아젠다를 가지고 작품을 논해보고자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여성 중 가장 대조적으로 그려지는 인물은 공장의 노동자 정영희(배우 신현빈, 이하 영희)와 다큐멘터리 PD 김수진(배우 한지현, 이하 수진)이다. 이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통해 감독이 던지는 여러 메시지 중 하나에 대해 좀 더 깊게 논해 보고자 한다.
영희와 수진의 공통점은 누군가의 ‘민낯을 드러내고자 하는 자’라는 점이다. 영희는 자신이 일하는 공장에서 자기 사수인 재봉사 이진숙(배우 차미경, 이하 진숙)이 공장주인 주상에게 당한 성폭행을 묵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실을 드러내려고 치열하게 싸운다. 수진 역시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화제성과 시청률을 위해서만 취재를 하는 듯 보였으나,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수진은 이미 공소시효도 끝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 세상에 고발하고자 한다. 영희와 수진, 두 사람은 누군가의 추악한 민낯을 은폐하거나 묵인하기보다는, 세상에 ‘공개’하고 합당한 처벌을 받게 하고자 하는 의협심을 가진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희와 수진의 차이점은 ‘얼굴’에 있다고 생각한다. 영희는 영화 전반에서 줄곧 ‘괴물같이 생겼다, 못생겼다, 기분 나쁘게 생겼다’ 등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그에 반해 수진은 인터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나이 든 사람들의 환심을 사거나, 애교를 부려서 타인의 민낯을 들추는 등 ‘상대적으로 준수한 얼굴’을 무기로 서서히 진실에 수월하게 다가가게 된다. 만약 영희의 얼굴이 못생기지 않았거나, 또는 예쁜 얼굴이었다면 그녀는 다른 결말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주상의 범죄를 고발할 때 주변 사람들에게 더욱 많은 지지를 받았을지도 모르고, 그녀의 주장에 더 힘이 실렸을지도 모른다. 또는 애초에 시각장애인인 임영규(배우 권해효, 배우 박정민, 이하 영규)와 결혼을 하는 일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재봉사 진숙의 시다를 하기보다, 그녀 자신이 재봉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재력이 있는 누군가를 만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삶을 살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얼굴’ 또는 ‘외모’ 하나 가지고 이 작품을 논하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다소 옹졸한 해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고찰이란 것은 수많은 주제 중 어느 하나를 골라 깊게 파고드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예나 지금이나 외모가 곧 능력이고, 권력이고, 돈으로 귀결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물론 영희가 살았던 시대의 여성 인권이 처참한 수준이었고, 수진이 사는 현대의 여성 인권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핸디캡이 존재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줄곧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영희 ‘얼굴’에 대한 신랄한 평가는, 결국 그녀가 옳은 말을 하든 정의롭든 그 가치를 왜곡시키고 말살시키는 결말에 이르게 된다.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는지는 사실 잘 모른다. 어쩌면 인터뷰나 영화 해석 등을 찾아보면 명쾌한 답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불쾌함’과 ‘씁쓸함’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매스컴에서 ‘기적’이라고 불리는 살인자 영규의 이중적이고도 추악한 민낯, 진실을 다 알고 나서도 결국 은폐하려고 하는 아들 동환(배우 박정민)의 비굴함, 부와 권력을 휘두르며 여성을 소모품 취급하는 주상의 추악함. 그리고 동환의 비굴한 부탁을 듣고 수진이 건넨 “닮았네요, 아버지랑.”. 이 대사를 듣고 나는 인간이라는 개체 전반이 가지고 있는 ‘민낯’의 불쾌함을 느꼈고, ‘얼굴’로 인해 멸시받고 살해당한 영희라는 인물에 슬픔을 느꼈다.
정정한다. 인간 전반이 가지고 있을 민낯이 아닌, ‘나’라는 인간의 민낯을 본 것만 같아 불쾌함을 강하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외모지상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오만하게도 타인의 외모를 숨 쉬듯 자연스레 평가하고, 그 사람의 가치를 재단하는 만행을 저지르며 살아가는 인간이 아니었을까. 나는 어떤 가면으로 내 ‘진짜 얼굴’을 가리고 살아가는 걸까. 여전히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