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입니다.
우리 집 고양이가 죽었다. 벌써 일주일도 더 된 일이다. 어느덧 내 방 창문으로 침투한 아침 햇살이 내 부은 눈을 쪼고 있지만, 매트리스 밖으로 나갈 엄두는 나지 않는다. 방문을 열면 언제나처럼 꼬리를 세우고 느긋하게 걸어와, 밥 먹는 자기 등을 두들겨 달라는 양순이가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양순이는 이제 없다. 양순이는 죽었다.
이재(異才). '남다른 재주'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특별한 재주 없이 살아온 인생이다. 불행은 한 번에 찾아온다고 하던가. 그 말은 맞는 것 같다. 기간제 특수교사인 나는 유난히 추운 겨울 방학을 맞이하게 되었다. 학생 수가 줄어들어 재계약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 말을 들은 건 방학식 전날이었다. 약 4년간 사귀었던 여자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건 그로부터 이틀 뒤였나. 그리고 거짓말처럼, 양순이는 바로 다음 날 내 곁을 떠났다. 너만은 내 편이라고 믿었는데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려지지 않아, 우리 미래가. 미안해, 오빠.”
참 짧고 간결했다. 이제 곧 30대를 바라보는 그녀 입장으로는, 몇 년째 임용고시에 실패하는 내가 늘 불안했을 것이다. 그 불안에 불을 지핀 게 이번 재계약 실패. 난 그녀를 잡을 명분도, 용기도 없었다. 그동안 고마웠다는 나의 말 한마디로, 우리는 마침표를 찍었다. 그녀는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다. 냉정한 건지, 강인한 건지. 아니면 더 흘릴 눈물도 없을 만큼 나에 대한 기대가 메말라 버린 건지. 먼저 돌아서서 걸어가는 그녀 뒷모습이 점점 뿌옇게 흐려졌던 기억이 난다. 그것도 벌써 일주일도 더 지난 일.
***
잠에서 깬 지 2시간은 지난 것 같지만, 난 여전히 이불 속이다. 슬픔이 페이스트리처럼 겹겹이 쌓여서 내 몸을 짓누르는 것 같다. 우울을 머금고 점점 무거워진 이불에, 압사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망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내 손가락은 무의식적으로 쇼츠를 넘기고 있다. 무미건조한 뇌가 도파민에 절여져 쩍쩍 갈라지는 것만 같다. 그때였다. 어떤 알고리즘이 이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손가락이 멈춰 섰다.
<겨울엔 살이 더 잘 빠진다? 겨울철 러닝이 다이어트에 유리한 이유>
안경을 쓴 6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의사가 겨울철 러닝의 장점에 대해 침 튀기며 설명하는 영상이었다. 갈색 지방, 백색 지방 등 어려운 말이 가득했지만, 요약하자면 겨울철에 뛰는 게 지방 연소에 효과적이라는 내용이었다.
“나도 그 정도는 안다고. 근데, 아는 것과 행하는 건 차이가 있잖아? 이런 날씨에 밖에서 뛰면 죽어.”
듣는 이가 아무도 없는 방에 홀로 누워, 이딴 말이나 거창하게 읊조리는 나 자신이 순간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하핫 하고 발작적인 웃음이 터졌다. 웃음은 점점 고조되고, 발작은 기침이 되고, 이내 눈물이 되었다.
‘정신병이다.’
합격 여부와 상관없이, 특수교육학을 공부했던 나는 ‘주요우울장애’의 진단기준에 대해 떠올리게 되었다. ‘흥미나 즐거움의 상실’, ‘우울 기분’. 다른 기준에 이 두 가지는 꼭 포함되어야지 주요우울장애의 조건을 충족한다고 알고 있다. 그 밖에 식욕 감소나 폭식, 과한 수면이나 불면증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고. 방학 후 어느새 9일이나 지났지만, 뭘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누군가와 대화를 한 적도 없었다.
단절.
아마 지금의 나를 가장 잘 요약해주는 단어가 아닐까. 경력 단절. 관계 단절. 양순이 단절. 대화 단절. 단절이 단절로 이어지고, 이러다 내 존재가 세상과도 단절되는 건 아닌지 순간 두려움이 엄습했다. 방광이 쿡쿡 쑤셨다. 아무리 우울해도 배는 고프고, 화장실은 가고 싶다. 이런 생리적 욕구로부터 영영 자유로울 수 없는 게 인간이 아닐까. 먹고, 싸고, 자고, 먹고, 싸고, 자다가 죽는 게 인생일까. 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며 찌뿌둥한 몸을 간신히 일으켰다. 아야야.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프다. 너무 오래 누워 있던 탓일까, 아니면 그만큼 나이를 먹어서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간신히 방문을 열었다.
끼익. 소리와 함께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본다. 문을 갑자기 열면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던 양순이가 깜짝 놀랄 때가 있었기 때문에 생긴 버릇이다. 문을 열자, 싱크대 앞에 채 다 먹지 못해 남은 사료가 눈에 들어온다. 또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무래도 눈물샘이 고장났나 보다. 양순이는 이제 여기 없다.
화장실에 다녀온 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다시 매트리스 위에 누웠다. 그리곤 애벌레처럼 이불을 뒤집어썼다. 암막 커튼마저 없는 내 방은, 지나치게 우울해질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난방을 떼었어도 냉기 가득한 공기, 벽지에 검게 들러붙은 곰팡이. 내가 이 집과 함께 서서히 죽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다시금 나를 엄습했다. 나는 습관처럼 또 핸드폰을 본다. 습관처럼 검지를 위로 아래로 움직인다. 그때, 문득 떠오르는 기억.
‘아, 내가 여자친구랑 같이 러닝을 한 적이 있었구나….’
바로 작년 가을, 동네 경기장 트랙을 꼭 한 바퀴 반 정도 함께 뛰었던 적이 있었다. 겨우 1km 조금 넘게 뛰었었는데, 그녀는 힘들다고 했다. 하기 싫은 일이지만, 남자친구의 취미에 맞춰 주겠다고 고생한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뛰려고 샀던 커플 운동화는 여전히 내 집 신발장 안에 있다.
‘혹시 곰팡이라도 슬지 않았을까…?’
어차피 떠난 사람 러닝화에 곰팡이가 슬든 성에가 끼어있든 무슨 상관이냐만은, 난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신발장으로 향했다. 끼익. 이번엔 망설이지 않고 방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양순이는 더 이상 이 집에 없으니까.
***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정신을 차려보니 트랙 위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양순이가 떠나고 정확히 6일 만의 외출이다. 그런데 그게 ‘운동’을 위한 외출이었다니. 영하의 날씨라서, 겹겹이 껴입고 나온 차림새가 왠지 어색하다. 러닝을 기록하기 위한 어플도 몇 달 만에 켜본다. 간단한 스트레칭을 마치고,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몇 km나 달릴까. 5km쯤 달릴까. 대략 6바퀴 정도를 돌아야 했던가….’
처음에는 이런 생각으로 뛰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내 차가운 공기가 폐를 찌르기 시작하고, 무릎과 발바닥에서 신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추운 날씨에 쓴 바라클라바 때문인지 눈썹엔 작은 고드름이 맺히는 게 느껴졌다. 점점 뇌도, 생각도 멍해져 간다.
<…시간, 29분 38초. 거리, 5km. 평균속도입니다. 시간당….>
기계적인 알림 소리가 들리고, 달리기를 멈췄다. 숨은 가빴고, 심장은 여전히 바삐 뛰고 있었다. 나는 살짝 풀린 동공으로 앞을 바라보며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떠올렸다. 내가 살면서 ‘측정 가능한 성과’를 냈던 적이 있었던가. 임용고시에 합격한 정교사로서도, 미래를 함께하고 싶은 연인으로서도, 다정한 보호자(또는 집사)로서도 난 어느 것 하나 잘한 게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건 ‘측정 가능한 성과’ 그 자체였다. 거리, 시간, 페이스, 심박수. 내 삶에서 증명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뚜렷한 무언가. 눈앞에 보이는 숫자는, 최소한 오늘 내가 5km 넘게 달렸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러닝에 중독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매일 5km씩 뛰었다. 때로는 병적인 집착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매일 찍히는 러닝 기록과 그래프는, 내가 여전히 살아있고, 살아가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
그로부터 약 3주의 시간이 흘렀다. 집에 가면 여전히 거의 누워서 지내는 일상이지만, 난 매일 뛰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도. 차가운 공기를 마시고 내뱉으며 한참을 뛰고 있는데,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왜 오늘은 몇 km째 뛰고 있는지 알림이 안 울리지?’
나는 달리다 말고 핸드폰으로 기록을 확인했다. 그리고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분명 시간은 27분 31초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거리와 평균 페이스가 0이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어플은 켜져 있었지만, 거리가 전혀 측정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당황해서 기록을 멈추고 다시 눌렀더니, 그제야 기록이 되기 시작했다. 순간 화가 치밀었다. 지금까지 약 30분 동안 내가 했던 일들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는 것만 같았다. 무엇하나 이뤘던 게 없었던 내가, 그나마 살아보겠다고 기록하는 일인데. 이 숫자만이 지금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해준다고 생각했는데. 그때였다.
“힘들면 오늘은 여기까지만 뛸까? 뭐, 오늘만 날도 아니고. 다음 주에는 조금 더 뛰어보자 자기야!”
혼자 씩씩대고 있는데, 내 옆을 지나가는 커플이 나누는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2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커플은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내가 그녀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힘들면 여기까지만 하자. 오늘이 끝이 아니잖아. 그녀와 함께 보폭을 맞추며 뛰었던 이 길에서, 우리가 끝났음을 다시금 떠올렸다. 난 다시 호흡을 골랐다. 나도 모르게 발이 움직여지고, 보폭이 빨라진다.
어느새 난 다시 뛰고 있다. 그리고 생각한다. 오늘은 분명 금요일인데, 평일 낮에 동네를 뛸 수 있다는 건 내가 ‘아직’ 기간제 교사라는 증거다. 집에 돌아가서 신발장을 열면 가지런히 놓여있을 240mm 러닝화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이였단 증거다. 여전히 치우지 못한, 당분간 치우지 못할 사료 그릇은, 양순이가 나와 살았었단 증거다. 숫자가 무너져도, 기록이 망가져도 난 여전히 뛰고 있다. 내 발은 멈추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앞으로, 또 앞으로도 살아간다. 양순이는 여전히 내 가슴 속에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