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선 작가의 『내밀 예찬』을 읽었다. 이 작가와 나는 전혀 모르는 사이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는 김지선 작가를 ‘에세이 선배’라 칭하기로 마음먹었다.
에세이는 내가 좋아하는 문학의 갈래이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소설처럼 미리 시놉시스를 정교하게 설계할 필요도 없으며, 분량의 제한도 없다. 그럼에도 에세이를 잘 쓰는 게 어려운 이유는 형식적인 면에서 가장 유연하기 때문 아닐까.
김지선 작가의 글을 보면서 ‘참 글을 잘 쓰시는구나.’라며 감탄했다. 내가 독자이자 후배로서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김지선 선배 글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참신한 소제목. 점심 이탈자, 낄낄의 중요성, 지루함의 발명 등의 소제목은 글을 읽기도 전에 흥미를 유발한다. 독자가 흥미를 유발하게 만드는 장치로서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둘째, 과하지 않은 문학적 표현. ‘간장 종지 크기의 사랑’이라는 글에는 ‘여러 관계를 위한 여러 개의 간장 종지’라는 표현이 나온다. 작가 본인이 가진 사랑의 총량, 또는 관계를 위한 에너지의 총량을 ‘간장 종지’에 빗대어 표현하는 등, 작가는 적재적소에 맞는 문학적 표현을 양념으로 쳐서 평범한 글을 문학작품으로 승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셋째, 적절한 글의 난이도. 너무 쉬운 글은 지루하다. 반면 너무 어려운 글은 읽으면서 화가 난다. 글의 난이도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일은, 마치 찌개를 끓이면서 먹는 사람의 입맛에 맞게 간을 맞추는 숭고한 행위와도 같다. 고도의 테크닉과 섬세함, 그리고 배려가 요구되는 일이다. 작가의 글은 쉽게 읽히지만, 가볍지 않다. 각각의 글을 읽고 난 뒤 지금의 나와 내 삶을 돌아보도록 만들어준다.
위에 압축한 세 가지 장점 이외에도 김지선 작가의 글을 통해 내가 배울 점이 많았다. 물 흐르듯 편안한 전개, 늘어지지 않는 깔끔한 문장, 적절한 글의 분량,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소재, 기승전결이 확실한 글의 구성 등. 작가가 어느 대학교를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같은 ‘국어국문학과’ 졸업생이라는 점에서, 왠지 모를 동질감과 질투심마저 느꼈다.
졸업 후 내 본업은 글 쓰는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글에 대한 애정이 꽤 식은 채 지내왔다. 그러던 중 이번 독서 모임을 계기로 여러 책을 읽게 되었고, 독후감을 쓰고, 다른 회원님들이 쓴 글을 읽을 기회가 생겼다. 덕분에 내 글을 돌아보게 되었으며, 내 글이 생각보다 편하게 읽히지 않고, 현학적이며, 주제가 뚜렷하지 않고, 나만의 세계에 갇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회원님들 중에도 별로 어려운 단어를 쓰지도 않았는데 술술 읽히고, 깊이 있는 글을 쓰는 분들이 있었다. 감탄스러웠다. 동시에 나의 글을 더욱 정교하고 깔끔하게 다듬고 싶다는 열망이 피어났다.
얼마 전 독서 모임 회원님들 몇 분과 조촐한 회식 자리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한 회원님이 ‘좋은 글은 하나만 가지고 쓰는 글’이라는 명언을 제시했다. 돌이켜보면 내 글은 항상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패션으로 치면 ‘미스’매치였던 적이 많았다. 하나의 글에 하나의 주제만 가지고도 무수히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어야 함에도 내 글은 샛길로 빠지기 일쑤였다. 이번 모임을 통해 좋은 글을 접하고, 다양한 분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어서 스스로 ‘내밀한’ 성장을 이루고 있지 않나 싶다. 감사한 시간이다.
참고문헌
김지선(2022), 『내밀 예찬』, ㈜한겨레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