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닦다 문득 세면대를 바라본다. 오늘따라 유난히 분홍색 물때가 도드라져 보인다. 검색해보니 ‘분홍색 물곰팡이’란다. ‘그렇구나’ 하고 만다. 그리고 느낀 감정을 글로 적어본다. 나에게 있어서 글을 쓰는 행위는 일종의 정리, 또는 치유행위이다. 병원에 가지 않고도 내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하나의 치료인 셈이다.
집의 상태는 거주자의 정신세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를테면 방이 지저분하고 방치된 것들이 많을수록, 거주자의 마음도 지쳐있거나 우울할 수 있다. 나의 경우가 그랬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방에는 여러 택배 상자가 위태롭게 쌓여 있었다. 반듯하게 쌓아 놓은 것도 아니고, 툭 치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택배 상자의 탑. 마치 잠시라도 의지의 강도가 떨어지면 내 인생이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은 불안함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옷은 또 어떠한가. 한쪽에 세워둔 빨래 건조대에는 여러 종류의 옷가지와 옷걸이가 무질서하게 걸려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치우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행히도 최근 방을 한차례 청소했다. 우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택배 상자를 모두 뜯어서 종류별로 분류하여 정리했고, 모아서 밖에 배출했다. 옷가지와 무질서한 옷걸이들도 옷장에 무사히 들어갈 수 있었다. 한참 청소기를 돌렸고, 책상 위 불필요한 것들은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버렸다.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내가 생활하는 공간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오늘 세면대에 여전히 남아 있는 분홍색 물곰팡이를 발견하고도 제거할 의지가 없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내 마음에 무슨 문제가 남아 있는 걸까.
연애를 시작한 지 어느덧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내가 ‘가족’과 ‘친구’가 아닌 여자친구라는 존재에게 사랑받기 시작한 지도 한 달이 되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 감사한 일이다. 전혀 다른 우주를 가지고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이것을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과정. 사랑이란 참 신비로운 감정이다. 덕분에 나의 불안했던 정신에 많은 안정이 찾아왔고, 공허했던 마음이 따뜻하게 채워졌다. 나를 사랑해주시는 부모님께는 죄송한 마음이지만, 가족이 채워줄 수 없는 2%의 사랑이 있는 법이다. 그 2%가 채워지지 않는 인간은 불행하다. 그 말은 곧, 인간은 늘 2%가 부족해서 공허함과 불행함을 느끼는 존재라는 견해다. 물론 이것은 나의 견해.
어쨌든 나는 사랑을 받으면서 감사하게도 그동안 돌보지 않던 나 자신을 더 돌보게 되었고, 청소를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오늘 물곰팡이 하나 제거할 힘이 아직 부족하다고 느낀 이유는 ‘고용 불안’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나는 거의 5년 가까이 꾸준하게 일을 해왔다. 즉, 직장이 있었다. 출근길은 늘 고통스러웠지만, 매달 정해진 날짜에 월급이 꽂히는 인생을 살아왔다. 물론 이것이 결코 당연한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이 패턴이 익숙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얼마 전 실직했다. ‘계약 해지’라고 하는 게 더 올바른 표현이려나. 꽤 부당한 과정을 통해 뒤통수를 맞는 느낌으로 해지당했다. 그 후 바쁘게 다른 직장을 찾아보느라 두 군데 더 지원했지만 불합격. 제아무리 자존감이 높고,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는 나라고 해도 누적되는 분노와 불안을 외면할 순 없었나 보다. 즉, 고통을 충분히 소화 시킬 틈 없이 계속 달려왔던 것 같다.
다가오는 월요일에 면접이 있을지도 모른다. 또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부랴부랴 그날 다른 직장에 또 지원서를 낼 예정이고, 그럼 또 화요일에 면접이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게 된다. 이런 불확실함. 불확실함이 주는 불안정함. 그 감정들이 알게 모르게 내 마음에 ‘물곰팡이’처럼 쌓이게 된 게 아닐까. 또는 이 상황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다시 떠오르는 분노, 그리고 원망의 감정. 이런 좋지 못한 감정들은 늘 ‘독소’가 있다. 그 독소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안에 쌓이게 된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내가 택한 자가 치유의 방법은 ‘글’에 있었다. 내 마음을 가장 면밀하게 해체하고, 어루만지는 방법 역시 글 쓰는 일에 있다고 생각한다. 술독에 빠져서 폭음하거나, 상처를 애써 외면하면서 “난 괜찮아!”라며 강한 척을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여자친구한테 안겨서 엉엉 울고 나면 마음의 독소가 많이 녹아서 빠져나갈지도 모르지만, 매번 상대방한테 기대기만 하는 연애는 건강한 연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물론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해본 적은 없지만). 지금 내가 불안하고 예민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그것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골똘히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많이 차분해졌다.
그래, 나는 지금 불안하다. 불안함을 인정하자. 다가올 면접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도 잘 모르겠다.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충분히 계획했음에도 여전히 불안하다. 하지만, 세상에 ‘불안함’이 하나도 없는 인간이 있을까? 누구나 크고 작은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고 본다. ‘불완전함’은 곧 어떤 형태로든 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나는 어쩌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직업을 가질 수도 있다. 또는 공부를 독하게 해서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또는 이번 주에 산 로또가 당첨되어, 그 어렵다는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고 결혼을 앞당겨서 꿈꾸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상상을 하다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고민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들은, 그저 신 또는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 분명한 건,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이 건강하다는 것. 내가 백수가 되더라도 나를 먹여 살리겠다는 귀엽고도, 고마운 마음을 가진 예쁜 여자친구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 그 행복을 충분히 느껴도 모자랄 시간에 스스로 괴롭히는 안 좋은 버릇이 오랜만에 나왔다는 것. 그리고 나 자신을 잘 다독여서 다시 덤덤한 형태로 마음을 ‘청소’했다는 것이다.
이제 홀가분하고 한결 더 강해진 마음으로 화장실 청소를 하러 가야겠다. 분홍색 물곰팡이와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