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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남 Feb 10. 2023

『구의 증명』, 또는 사랑의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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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상대를 끝없이 기다린다는 뜻일까.

  이 소설은 지독하다. 지독하게 아름답다. 비장미로 가득한 작품이다. 첫 번째 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나의 배경지식은 허술하다. 어디선가 배운 듯한 ‘비장미’라는 단어의 정의가 명확히 떠오르지 않아 네이버 검색을 해봤다.      


‘소망하는 것이 현실의 상황에 부딪혀 실현되지 못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과 함께 일어나는 미의식’

    

  이것이 최진영 작가의 이 작품을 관통하는 미의식이지 않을까. 사실 되짚어보면 이 소설은 시놉시스가 대단히 참신하지는 않다. 다만 담백한 줄거리를 특유의 문체와 색채를 가지고 끝까지 끌고 갈 수 있는 작가의 흡입력이 대단한 작품이다. 내내 먹먹하고 무거운 감정으로 ‘구’와 ‘담’의 서사를 따라 읽어나갔다. 혹여라도 이 작품을 읽고 싶을 분들을 위해 그 어떤 스포일러도 남기지 않기로 했다. 오롯이 이 작품을 읽고 난 뒤의 감상으로 나의 글을 채우고 싶다.


  아무리 노력해도 불행을 피할 수 없다면, 그 불행이 나의 행동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면, 그저 불합리하게 주어지고 유전된 것이라면, 우리는 그 불행이란 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또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작가는 그 해답을 아마도 ‘사랑’에서 찾은 듯하다. 만약 작가의 의도를 내가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면 작가분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독자는 독자 나름의 능동적인 해석을 통해 작가, 그리고 작품과 소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의 권리니까.


  만약 한 개인이라는 소우주에서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마지막 남은 것이 ‘사랑’이라면, 그 사랑이 어떤 ‘비뚤어진 형태’라도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타인의 눈에는, 또는 ‘사회’라는 유기체 내에서는 혐오스럽다거나, 이기적이라거나, 추악하다거나, 비도덕적이라고 해석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사랑을 하는 개인에게 있어서 만큼은, 결코 부정당하고 싶지 않을 ‘순수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존재한다. 자신에 대한 사랑, 부모님의 자식 사랑, 형제자매 간의 사랑, 선생님과 제자 간의 사랑, ‘우정’이라고 불리는 친구들 간의 사랑, 연인 간의 사랑, 반려동물 사랑, 매운 음식 사랑, 카레 사랑, 나라 사랑 등등. 사랑이라는 개념은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다. 방금 언급한 사랑은 대체로 취향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적극적으로 비난받을 일이 없는 일반적인 형태의 사랑이다.


  그렇다면 다음 언급할 사랑은 어떤 느낌인가. 남자와 남자 간의 사랑, 여자와 여자 간의 사랑, 동시에 두 명 이상의 이성에 대한 사랑, 또는 동성과 이성 모두에 대한 사랑. 지탄받을만한 사랑인가, 아니면 시간은 걸리더라도 사회적으로 결국 존중받아야 할 사랑인가.


  마지막으로, 소아한테만 느끼는 사랑, 특정 신체 부위에 대한 사랑, 그 사람이 신던 양말이나 속옷에 대한 사랑, 시체에 대한 사랑, 마약에 대한 사랑, 마약을 하고 나누는 사랑, 함께 자살을 도모하며 느끼는 사랑. 이것은 사회적으로 강하게 지탄받고 실제로 성적인 충족을 위해 이행하게 되었을 때 처벌받게 되는 감정이다. 따라서 이 모든 감정을 ‘사랑’이라는 단어로 미화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감정은 결국 ‘하나의 인간’을 구원해 줄 유일한 열쇠임은 틀림이 없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범죄를 저지르거나,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해서는 결코 안 된다. 그건 인간의 길에서 벗어난 일이다. 그러나 법의 윤곽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는, 각자 개개인의 독특한 취향이 반영된 사랑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또 그것을 이해해주고 함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 두 사람의 사랑은 그들을 구원해 줄 메시아 같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구’가 결국 증명하려고 했던 것은, ‘나와 담의 사랑은 잘못되지 않았다’라는 ‘사랑의 증명’이 아니었을까.

오래간만에 쓴 글인데, 내가 다시 봐도 너무 난해하다. 좋은 글이 아니다. 명확한 글도 아니고. 난 무슨 글을 쓰고 싶었던 걸까. 어쩌면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머릿속에 떠다니는 무수히 많은 생각들을 정리하지 못했다는 핑계를 대본다. 사랑이란, 인간이라는 하나의 우주가 태어나 죽는 순간까지 끝없이 색과 형태를 바꾸기에 정의 내릴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형태의 변증법이다.               



참고문헌

     

최진영(2015), 『구의 증명』,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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