닳아버린 숫자들

하루에 스며든 풍경들

by 달유하

햇살이 어둠에 눌려 가려질 때

무거운 발걸음으로 겨우 도착한 현관 앞


힘없이 팔을 들어 도어락을 눌러보니

반질반질 닳아버린 숫자 몇 개가

어서오라고 웃어보였다


매일 먼지묻은 손 끝으로

힘겹게 숫자를 하나씩 눌렀지만


너는 여전히 경쾌한 소리를 내며

오늘의 끝을 열어 주곤 했지


누군가는 비밀번호일 뿐이라 말하지만

피곤에 휘어진 아침에도

무겁게 돌아오는 저녁에도


너는 닳아버린 몸으로도

나를 반겨주는구나


닳아버린 너의 얼굴을 볼 때마다

언젠가 그 얼굴을 바꿀 때가 와도


그 숫자들은 내가 지나온 날들과

조용히 함께하겠지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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