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들 부디 건강하세요. ]
설마 했던 일이 실현되는 것은, 그 이후에 다가올 시간들마저 미궁으로 만든다.
2월 둘째 주가 좀 넘어서니 코로나 19의 발병률이 점점 잠잠해지는 듯해, 다행이다 싶었다. 3월에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겠구나, 비록 계획에 없던 2월 휴가였지만 아무쪼록 잘 쉬었다 안심하던 틈에, 무려 하루에 백 명이 넘는 확진자가 늘기 시작했다. 심지어 사망자 숫자도 함께.
결국 휴강이 아닌 폐강으로 1분기 수업은 끝이 났고, 학교 개학은 일주일 연기됐다. 앞으로 1,2주일이 고비라고 한다. 3월 안에는 상황이 무조건 소각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잠깐, 이 말은 2월에도 들었던 말 아니었나? 2월 휴강 확정 때만 해도, 긍정적인 미래를 연상하며 3월쯤에는 괜찮아지겠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신종플루나 메르스 때도 못 느꼈던 아득함이 기약 없는 무기력을 생성시킨다. 더 이상 이 시간을 어떻게 잘 쉬면서 보낼 것인지가 중요치 않았다. 처음에는 전염병으로 직업을 잃을 수 있는 걸 받아들이느라 에너지를 소비했다면, 지금은 이 사태가 과연 지나가긴 할 것인가에 신경이 뭉쳐있다. 계속되는 뉴스속보가 가슴을 답답하게 하고, 먼지처럼 떠도는 유언비어들이 눈을 뿌옇게 만든다.
과연 이 시점에서 강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쌓여있는 재료 더미를 보니, 주저앉아 울어도 될 것 같은데 모든 건 지나간다는 한풀의 희망이 고단하게 버티고 있다. 그동안 읽지 않았던 책들을 뒤적거리고, 앞으로 아이들과 같이 나눌 수업들을 구상하고, 내 그림도 그리며 오늘과 내일을 직면하는 수밖에 없겠지. 그러다 보면, 정말로 모든 게 지나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미궁의 시간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잘 흘러가 주길 기다리는 것이 강쌤의 최선일 것이다. 모두들 부디 건강하시고, 4월에는 꼭 만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