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어둠이 허물을 벗을 때.

by grim jari


#17. 어둠이 허물을 벗을 때.



연초 1월을 끝으로 6개월이 지나서야, 다시 아이들을 만났다. 이전보다 적은 인원이라 수업 분위기가 아늑하고 단란하며, 아이들의 참여도와 집중력이 높아졌다. 일주일 중 이틀 동안 총 6명을 만나는데, 단체수업보다 그들의 손에 잡힌 펜의 움직임을 잘 관찰할 수 있어 좋다. 한 명 한 명 이름을 꼭꼭 부를 수 있으니 애정을 표현할 수 있고, 어떤 점을 어려워하는지 확실히 캐치할 수 있다. 6년 전, 방문미술 수업을 할 때와는 전혀 다른 것들이 보이고 느껴진다. 어느 때보다 더 일에 집중하고, 제 역할을 하고 사는 것 같아 기분이 편안하다.


한동안 책도 못 읽었다. 심지어 정리벽이 있는데도, 트렁크에 여기저기 흐트러져 있는 재료 가방이 쳐다보기 싫더라. 독서는 일종의 휴식 도구였으니 시선이 두줄 이상 지나지 못한 건, 아마 지금은 쉴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트렁크 속의 색연필과 팔레트에 쌓인 먼지를 보면, 안 그래도 갑갑한 가슴에 다시 흙먼지 바람이 불 것 같았다. 일을 안 해서 갖는 무기력을 넘어선, 무능력에 대한 사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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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가지 발버둥을 쳐가며, 적막한 터널의 반 이상은 꾸역꾸역 걸어온 것 같다. 다들 정체된 상황이 답답한지, 센터 실장님께서 성인 민화 강좌를 실시간 방송 형식으로 함께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셨고, 나는 주저할 이유가 없으니 내민 손을 덥석 잡았다. 낯선 방식이라 어설픈 결과물이 나올 수 있으나, 시도하지 않는다면 나 또한 어설픈 모습 그대로 정지할 것 같다. 참 애썼다 그것으로 되었다 라는 책 제목도 있지 않나. 그 문장처럼 그것으로 될 수 있도록, 남은 시간을 잘 그려내고 싶다.

부디 여러분들도 각자의 터널에서 방향을 잘 잡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