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언제나 너를 응원한다.

by grim jari



#18. 언제나 너를 응원한다.



오늘도 5살 초록이는 현관 앞에서 공룡 모형을 한 손에 쥐고 흔들며 나를 반겼다.

미슈 성새님, 곤룐이네요 곤룐!

우와, 멋진 공룡이네! 얘는 이름이 뭐야~~?

00 사우루스라는 공룡은 몸이 길었고 꼬리는 도마뱀처럼 얇았다. 초록이의 형은 7살이라 공룡에 관심이 없는지, 책상 앞에 얌전히 앉아있다. 매번 형만 미술 한다고 불만을 토로하던 초록이도 함께 수업을 하게 됐는데, 사실 그림을 그린다기보다, 나와 한 시간 동안 논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후후. 확실히 5살은 꽉 껴안고 싶은 매력이 있다.


평소 그림을 즐겨 그리는 여자아이가 아니고서야, 5살 남자아이가 그림을 제법 그리는 경우는 드물다. 일단 재료를 다양하게 제시해, 흥미로운 관심 갖기를 유도하며 미술을 재밌게 즐기는 법부터 경험해야 한다. 수업이 4번 정도 진행됐을까? 초록이가 연필을 쥐는 손에서 제법 힘이 느껴졌다. 색칠하는 건 팔이 아프다고 재잘대던 입이 꼭 다물어졌고, 형을 따라 다양한 톤의 색연필을 꺼내기 시작했다.



무제-1 사본.jpg 사람과 나무



수업 주제를 완성하고 나면 남은 시간에 사람과 사물을 스케치하는데, 그날따라 초록이도 왠지 사람을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입을 크~게 벌리며 기지개 켜는 사람은 팔이 위로 올라간다고 직접 동작을 보여주며, 종이에 예시 그림을 그려주니 초록이의 미간이 좁혀지며 집중하는 게 느껴졌다. 그러더니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리며 만세 하는 사람을 그리는 게 아닌가. 이기세를 몰아 키가 큰 나무도 그려보자 했더니, 가지가 쭉쭉 뻗은 나무 모양도 얼추 나왔다. 나는 어머님보다 감격했고, 초록이에게 칭찬세례를 왕왕 몰아줬다. 형도 놀라며 초록이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어느새 00 사우루스 공룡은 저기 침대 쪽으로 가있었다.


나는 초록이가 그림을 잘 그려서 좋기도 했지만, 뭔가 해보려고 애쓰는 그 모습이 이뻤고 충분히 칭찬받아야 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5살의 집중력은 20분도 버티기 어려운 법인데, 무려 50분 수업 시간을 지켜주지 않았나. 물론 중간에 5번 정도는 벌떡 일어나고, 공룡을 책상에 올려놓거나, 공룡 소리를 크게 내긴 하지만 말이다. 결국엔 수업도 사회화 과정의 일부이고, 초록이의 어느 공간을 채워주기 위한 훈련일 것이다. 나는 조금 덜 힘들게, 조금 더 재밌게 하는 방법을 일러 주는 역할밖에 할 수 없겠지만, 기꺼이 자처했으니 열심히 응원하겠다.

마트에 가서 00 사우루스를 찾게 되면, 초록이에게 하나 선물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