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ㅡ맛

글-맛:케빈에 대하여(라이오넬 슈라이버)

2012.08.03/(주)알에이치코리아

by grim jari
글-맛: 글이 가지는 독특한 운치나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재미


낭만 서점 팟캐스트에서 '케빈에 대하여'를 듣게 됐다. 예전에 영화로 본듯한데 책도 있었군. 간략한 줄거리만 들어도 케빈이 궁금해졌다.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인기가 많았는지 표지에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난 내 엄마가 되는 게 두려웠던 게 아니라, 보통 엄마가 되는 게 두려웠던 거야. 난 내가 부러워할지도 모를 여행을 하고, 미래가 여전히 닻을 올리고 있고 미래의 지도가 아직 그려지지 않은 다른 젊은 탐험가를 위해 출발점 역할이나 하는, 영원히 정지된 닻이 될까 봐 두려웠어.
-p59


사소한 것, 하지만 분노는 원래 다 그런 거야. 다만 그게 하찮아 보였기 때문에 난 억눌러야 한다고 느꼈을 뿐이야. 그런 면에서 분노란 본질적으로 우리가 표현하지 못하게 이의를 제기하는 것, 다시 말해 그것은 감정을 유독하게 만드는 불평 자체라기보다는 침묵, 몸에 독을 넣어 오줌으로도 뽑아낼 수 없게 만드는 것에 더 가까운 거야, 그런 이유로 내가 덜 숙성한 보졸레를 닮은 크랜베리 주스를 조심스럽게 골라 어른 행세를 하려고 애쓰는 동안 내 깊은 곳에선 버릇없는 새끼가 똬리를 틀고 있었지. 당신이-남자아이-이름들을 떠올리는 동안, 난 내가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야 할 모든 것- 기저귀 갈기, 밤잠을 설치기, 축구 연습장까지 태워주기-들을 떠올리며 내 뇌를 고문했어.
-p93


주된 내용은 케빈의 엄마 에바의 생각과 감정을 남편에게 편지로 서술하는, 혹은 고백하는 내용으로 흐른다.


​에바는 정말로 엄마가 되길 원하지 않았던 걸까. 난 그렇게 느껴지진 않는데, 책의 맨 뒷장 문장은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던 엄마'로 에바를 정의한다. 과연 아이를 낳기 전에 자신의 삶이 닻을 내릴까 봐 단 한 번이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나. 뻔히 예상되는 육아로 뇌가 지끈거림을, 아기의 탄생을 성스럽게 여기지 않는다고 속단할 수 있을까.


​에바는 그저 곧 닥쳐올 변화에 대해 직감하고 불안해했던 건 아니었는지.


그렇긴 해도 난 그 밑에 놓여 있는 게 두려웠어. 밑바닥에서 내가 내 인생을 증오하고, 엄마가 된 것을 증오하고. 당신이 날 이렇게 만들었단 이유로, 내 일상을 똥오줌과 케빈이 좋아하지도 않는 쿠키들의 영원한 흐름으로 만들었다는 이유로, 당신 아내가 된 것까지도 증오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될까 봐 두려웠어.
-p295


아이 때문이 아니라도 결혼을 후회할 일은 많지만, 육체적 정신적으로 에너지를 뽑아가는 케빈을 양육하는 에바는 그야말로 삶의 총체적 난국을 맞는다. 케빈은 마치 에바를 원하지 않는 것 같고, 아빠를 인형처럼 주무르는 것 같으니 부부 사이에 균열은 막을 수 없다.



난 그 애가 결코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나에 대한 친밀함을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 그건 우리가 함께 이런 은폐 공작을 벌이고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숨기고 있는 바로 그 폭행의 순간에 케빈 역시 탯줄의 어마어마한 힘으로 인생 전체가 확 끌려가는 느낌을 가졌을 것이기 때문이야. 그때만은, 나도 내가 그 애 엄마라는 걸 깨달았어. 그렇게 그 아이도 피터팬처럼 놀이방을 몹시 놀라 횡단하는 동안, 자기가 내 아들이라는 걸 깨달았을 거야.
-p314


에바 특유의 연속적이고 망상적인 성향도 흔한 건 아니지만, 케빈의 지략적인 생존법도 여간 보통이 아니다. 둘은 닮았지만 다르게 사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당신이 둘 중에서 케빈이 훨씬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아. 하지만 내가 보기에 케빈은 이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 그리고 그것이 상관하는 것들을 갖고서 궁극적으로 이 세상을 좌절시키기 위해 여기에 온 반면, 셀리아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으로 인생을 살 가치가 있는 걸로 만들 것인지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확신으로 이곳에 도착한 거였어. 떨쳐낼 수 없는 그 끈적끈적한 것을 갖고서 말이지. 분명히 그건 일종의 지능을 구성하는 거야.
-p355


버리는 것을 긍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선 지극히 예술가가 되어야 해. 그리고 파괴에는 소유권이 있는데, 그건 바로 친밀함이야. 파괴에도 책정이 있다는 뜻이야. 그런 식으로 케빈은 데니 코빗과 로라 울포드를 자기 품에 꼭 껴안고 그들의 심장과 취미들을 모두 빨아들였어. 파괴는 욕심보다 조금 복잡한 것에 지나지 않는, 오판에서 비롯된 일종의 서투른 탐욕의 자극을 받는 건지도 몰라.
-p386


에바는 케빈과 너무 다른 여동생 셀리아를 낳는다. 그리고 사랑을 주고 딸에게 다시 되돌려 받는 애착관계가 되지만, 안타까운 사고로 셀리아는 눈을 잃고 에바는 케빈을 의심한다. 정황은 그렇지만, 사실은 알 수 없는 상황에 나도 케빈을 의심했다. 고정관념이 생긴 걸까.


​미국에 청소년 집단 총살 사건이 이렇게 많이 일어나는 줄은 몰랐다. 책에서 서술된 사건만 해도 마치 졸업식처럼 주기적이다. 그중 케빈도 동참했고, 완벽한 계획으로 총살은 성공한다. 허구라도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다.


​혼자 남은 에바는 남편에게 매일 편지를 쓰고, 케빈에게 면회를 간다. 결국 그녀만 살아남았다. 그것이 주는 케빈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표현이 섬세하고 길게 표현된 구절이 많아 책이 두꺼운데, 몰입도가 좋아 금방 읽었다. 누구 잘잘못을 규명하기 어려운 것 소재였다. 그저 그런 일이 안 일어나길 바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케빈에 대하여, 영화로 접하신 분들께 다른 느낌의 책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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