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03 / 까치
글-맛: 글이 가지는 독특한 운치나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재미
'싱크로니시티'를 보다 알게 된 에리히 프롬의 책.
사랑의 기술은 읽어봤는데, 이 책은 더 본질적이라 완독까지 이해하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에크하르트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자신을 열어서 "비우는 것", 자아에 의해서 방해받지 않는 것이 영적 부와 힘을 얻는 전제라고 가르친다. 또한 마르크스는 사치야말로 빈곤과 마찬가지로 큰 악덕이며, 우리는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풍요롭게 존재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p34
비우려면 우선 열어야 하는구나.
풍요롭게 존재한다는 문장만 봐도 마음이 든든해진다.
자아 즉 에고를 비워야 영적인 삶이 가능한 걸 알지만, 오히려 채우는 게 더 쉬운 현실이 늘 함정이다.
"나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라는 말 대신에 "나는 문제를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주체적 경험은 배제된다. 나는 나의 감정들을 내가 소유한 무엇으로, 즉 문제로 변형시키고 있다. "문제"란 모든 종류의 어려움에 대한 추상적인 표현이다. 나는 문제를 소유할 수는 없다. 그것은 소유할 수 있는 성질의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문제 편에서 나를 소유할 수는 있다.
-p42
문제를 소유할 수 없다는 시선이 뜻 모를 해방감을 준다.
왜 불편한 감정을 물건처럼 소유하게 더 익숙한지 모르겠다.
소유해 고통에 시달리느냐, 배제시켜 벗어나느냐의 문제.
"소유적 인간"은 자기가 가진 것에 의존하는 반면, "존재적 인간"은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 자기가 살아 있다는 것, 기탄없이 응답할 용기만 지니면 새로운 무엇이 탄생하리라는 사실에 자신을 맡긴다.
-p59
존재양식의 지고의 목표는 보다 깊이 아는 것인 반면, 소유 양식의 지고의 목표는 보다 많이 아는 것이다.
-p68
소유와 존재의 미묘한 차이를 쉽게 구분한 위문장들이 책의 핵심 같다.
우선 존재하기 위해선 용기.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이해하는 자유란 일체의 지배적 원리를 벗어던지는 자유가 아니라 인간의 실존 구조에 맞게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자유(자율적 제약)이다. 이것은 인간에게 가장 적절한 발전을 보장해 주는 법칙들을 준수함을 의미한다.
-p120
한동안 뜻도 제대로 모르고 '자유'롭고 싶다고 남발하던 시절이 있다.
성장을 위한 제약들을 준수하는 용기와 노력하는 행동이 자유를 향한 시작인 걸 알고부턴 마냥 황홀하지만은 않더라.
소유는 사물과 관계하며, 사물이란 구체적이며 묘사할 수 있는 것이다. 존재는 체험과 관계하며, 체험이란 원칙적으로 묘사할 수 없는 것이다. 묘사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물(persona), 우리 모두가 쓰고 있는 탈, 우리가 내세우는 자아이다.
-p128
내적 체험을 아무리 잘 묘사해도 직접 경험치 않으면 알 수 없는데, 타인의 페르소나가 아닌 존재의 본질을 느끼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문득 지금껏 무수히 남발했던 '너를 이해한다'라는 말이 이젠 조심스러워진다.
'소유냐 존재냐'는 한 문장을 제대로 씹어 먹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 책이다.
어느새 눈만 읽으며 페이지를 넘길 때가 있어 다시 되돌아가 읽기 일쑤였다.
가슴에 남는 문장 역시 많았던 책이다. 여유를 두고 읽고 싶은 분들께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