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2.15 / (주)민음사
글-맛: 글이 가지는 독특한 운치나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재미
지금은 끝났지만, 종종 교보문고 팟캐스트를 듣는다.
세계문학전집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파리대왕'을 듣게 됐는데, 리얼한 낭독 때문인지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마음속엔 갖가지 기억이 가득 남아 있었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멧돼지를 모두가 둘러쌌을 때 그들이 알게 된 사실, 한 살아 있는 생물을 속이고, 자기들의 의지를 거기에 관통시키고, 맛있는 술을 오랫동안 빨듯이 그 목숨을 빼앗아버렸다는 사실에 대한 생생한 기억으로 가득 차 있었다.
-p101
소년들의 잊지 못할 첫 살인이다.
묘사가 직접적이라 생명체의 목숨이 사라지는 장면과 소년들의 광기 어린 눈동자가 영상처럼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그 패들은 얼굴에 칠을 했어. 다들 알잖아. 얼마나 그것이....."
다른 소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을 가리는 색칠이 얼마나 사람의 야만성을 풀어놓아 주는 것인가 하는 것을 그들은 속속들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p259
얼굴을 다 가린 것도 아니고, 약간의 칠로 다른 무리와 차별을 둔 것이 야만성까지 열어주다니.
이 문장을 읽고 나니, 사람의 '얼굴'이란 게 많은 의미가 있다 싶다.
인간 본성의 결함에서 사회의 결함의 근원을 찾아내려는 것이 이 작품의 주제다. 사회의 형태는 개인의 윤리적 성격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지 외관상 아무리 논리적이고 훌륭하다 하더라도 정치체제에 따라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이 작품의 모럴이다. 마지막의 구조되는 장면을 제외하고선 전편이 상징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어른의 세계가 의젓하고 능력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그것은 섬에서의 어린이들의 상징적 생활과 똑같은 악으로 얽혀 있다. 장교는 사람 사냥을 멈추게 한 후 어린이들을 순양함에 태워 섬에서 데려갈 준비를 한다. 그러나 그 순양함은 이내 똑같이 무자비한 방법으로 그 적을 사냥질할 것이다. 어른과 어른의 순양함은 누가 구조해 줄 것인가?
-p320
'파리대왕'을 짧게 요약하자면, 전후 설명 없이 섬에 난파된 소년들의 상황이 시작되고 리더가 생기더니 무리가 나뉘고, 반란(살인)이 일어나며 결국 어른의 개입으로 소년들은 구조된다.
책 끝부분의 설명을 읽으면 당시 사회 분위기와 책의 흐름이 연결돼서 이해가 더 잘 된다. 1999년에 발간됐는데, 내용이 현재 사회와 다를 바 없다. 과연 소년들은 천성이 악해서 살인을 했을까. 장교는 소설에 등장한 유일한 어른으로서 소년들에게 그에 맞는 역할을 한 걸까.
오랜 세월을 지나 지금 읽어도 작가의 근본적인 질문은 여전히 살아있다, 그래서 세계문학전집인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