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6
#096
늦잠을 잤다.
줄곧 혼자 다니다가 소영을 데리고 다닌다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긴장을 많이 했나 보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콜라바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렸는데,
버스를 한 번 놓치고 나니 한참을 기다려도 좀처럼 버스가 오질 않는다.
하지만 덕분에 천천히 뭄바이의 아침을 살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차도가 과연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엉켜 있는 도로의 차들과
한 번도 같은 숫자가 없이 지나가는 다양한 버스들,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경적소리와
뿌연 스모그가 가득한 도시에 스며드는 햇빛,
시선을 어디로 돌려도 가득한 사람들과
사람들.
뭄바이로 오는 비행기에서 옆에 앉은 남자에게 뭄바이에서 최고는 뭐냐고 물은 적이 있다.
‘People’이라고 하길래 그냥 같이 웃었는데, 오늘 아침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아, 오늘 아침에 드디어 목걸이를 잃어버렸다.
13년을 넘게 계속 내 목에 걸려있었던 금 목걸이를-
어머니가 할머니께 예물로 받으신 이 수수한 목걸이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내게 주어진 뒤로 줄곧 나와 함께 했다.
심지어 군대 훈련소 시절에도 항상 주머니에 지니고 있는 등
도저히 내려놓질 못하던 물건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갔다.
나만이 홀로 그 의미를 간직한, 세 개의 링 반지가 연결된 채로-
오히려 올 것이 드디어 왔구나라는 생각에 의외로 담담했던 것 같다.
그동안 나와 함께하며 나를 잘 지켜주었고, 덕분에 많이 행복했다.
충분히 서로에게 정성과 사랑을 다했다고 생각하니까 미련은 없었다.
아쉽지만, 안녕.
새로 비슷한 목걸이를 찾아볼까 잠깐 생각했지만,
이내 그것은 진실이 아니라 끼워 넣는 식의 이야기라고 생각이 되었다.
의미를 아무리 부여해도 거짓에는 가치가 없다.
콜라바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지쳐서 식사를 먼저 하고 다시 정류장으로 돌아오기로 한다.
눈에 보이는 근처 식당에 무심코 들어서니, 라자스탄에서 만났던 재형 군이 나를 반기며 뛰어왔다.
뒤에선 그의 여자친구도 날 보며 환한 얼굴로 세차게 손을 흔들고 있다.
우리는 당연히 합석하여 서로의 일정은 또 까맣게 잊은 채로 한참을 떠들었다.
두 친구도 고아로 향할 예정이라고 한다.
다시 고아에서 만나기로 하고 서로의 운을 빌어주면서 식당을 나왔다.
다시 정류장으로 돌아가 기어코 버스를 타고 콜라바에 갔다.
기대하지 못한 휑한 거리의 모습에 조금 당황하여 지나는 이에게 길을 물었다.
아마도 영어를 모르는지 그냥 모르는 척 지나치다가,
이내 돌아서 손으로 반대방향을 가리켜주고는 별 말없이 다시 길을 간다.
일단 그가 알려준 방향으로 걷기로 했다.
바다내음이 어느새 가득하다.
쭈욱 뻗은 도로 오른쪽으로는 금세 바다가 나타났다.
멀리 거대한 문(Gate)같이 생긴 건축물이 보였다.
게이트 오브 인디아(Gateway of India)였다.
1911년 영국의 조지 5세와 메리 여왕의 방문을 위해 세워진 거대한 건축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도의 독립 후 영국군이 마지막으로 인도를 떠날 때 지났던 문도 바로 이곳이란다.
역사도 역시 사람들의 시간, 선명한 사실과 동시에 크고 작은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항구로 가서 배를 타고 바다로 잠시 동안 나갔다가 돌아오는 것으로
대항해시대의 옛 정취를 느끼게 해주는 크루즈선에 탑승해본다.
점점 멀어지는 인도문을 뒤로하고 인도양 바다로 떨어지는 붉은 해를 바라본다.
온통 붉어진 세상을 뒤로하고 다시 저 멀리 서서히 다가오는 육지로 조금씩 파도를 탄다.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사진기를 꺼냈지만, 결국은 한 장도 찍지 않았다.
소영이가 그런 날 보면서 조용히 대신 사진을 몇 장 찍어줬던 것 같다.
머리칼과 볼을 스치는 바람을 맞으면서, 문득 내가 어디에 있는지가 실감이 났다.
그래.
나는 지금 여기, 인도 뭄바이에 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