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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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헤맸다.
침대에서 일어나니 피로가 엄청나다.
딱히 몸이 아픈 건 아닌데, 뭔가 머리가 멍했다.
기차를 타기 위해서 CST역으로 가야 했는데
택시를 겨우 잡아 타고서야 아슬하게 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컨펌될 줄 알았던 기차표가 여전히 대기자 명단에 올라있다.
맙소사!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을 하는 나를 보며, 소영은 아직 잘 이해를 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녀에겐 이번이 인도에서의 첫 기차여행이다.
주저하면서도 일단 3등석 기차 칸에 올라탔다.
고아(Goa)만 생각하기로 했다.
가야 하지 않겠는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통로에 서있었는데,
좌석에 앉은 인도인들이 우리를 부른다.
낮이니 그냥 같이 끼어 앉아서 가자고 먼저 허락해준다.
하필 오늘이 이렇게 럭키(Lucky)한 날이라니, 타이밍은 알 수 없다.
너무도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모두에게 짜이를 석 잔씩이나 샀다.
어쨌든 이렇게 우리는 마음만큼이나 푸짐한 몸집의 인도인들 사이에서 여행을 시작했다.
기차에서는 MBA를 전공한 인도인 청년에게 인도의 경제에 대해서 듣기도 하고,
술과 약에 각각 절반쯤씩 취한 것 같은 모습의 영국인 아저씨에게 인생론을 듣기도 했다.
남인도로 내려갈수록 확실히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그동안 남인도를 최고로 꼽는 사람들을 꽤 만났는데, 조금은 그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소영은 마치 지나치는 풍경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창 밖으로 계속 시선을 두었다.
마침내 기차가 고아에서 가장 가까운 마드가온(Madgaon) 역에 도착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역에서 내렸다.
단순히 여행자들을 위한 도시만은 아닌 것 같았다.
기차에서 내려 한껏 숨을 들이쉬니 이내 얼굴에 크게 미소가 번진다.
고아에 도착!
고아는 사실 큰 단위의 지역명이고, 이 곳에는 다양한 매력을 가진 서로 다른 해변가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오기 전부터 여러 정보를 합해본 결과,
상대적으로 가장 정보가 없었던 아람볼 비치(Arambol Beach)로 가기로 했다.
청개구리와 같은 마음으로 아마도 평생을 살 것 같다.
아람볼은 막상 마드가온에서부터의 거리가 모든 해안가 중에서도 가장 멀었다.
그래도 이미 마음을 먹은 터라, 역에 나와 있는 오토 릭샤를 흥정해서 아람볼로 출발했다.
거의 한 시간이나 달렸을까, 선홍빛의 태양도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졌다.
짙어져 가는 어둠에서도 파도소리는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릭샤의 소음도 점점 어두워지는 풍경도
슬슬 지루해질 즈음, 운전수가 마침내 핸들을 멈췄다.
아람볼에 도착한 소영과 나는 한껏 기대에 찬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
여기가 드디어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고아다!
한눈에 봐도 저마다 히피스러운 복장을 한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리고는 복장과 분위기에 맞는 그런 느릿한 걸음으로 거리를 채웠다.
만족할만한 숙소를 찾기 위해서 한참을 돌아다녔는데,
곧 이곳에서는 일반 가정집과 호스텔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무래도 주민들에게는 시즌(Seasonal)의 여행자가 큰 수입원인 듯 했다.
어느 한 가정집에서 2층을 내주면서, 동시에 스쿠터도 저렴한 가격에 빌려주겠다고 해서 그대로 결정했다.
사실 너무 욕심을 내다보니 어느새 배낭을 멘 어깨가 많이 아파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짐을 풀고 파도소리가 들리는 해변으로 나갔다.
골목을 한 번만 꺾으니, 바로 바다다.
깜깜한 밤에도 해안을 따라 가득한 바(Bar)와 레스토랑들이 저마다 반짝였다.
하지만 휘황하게 반짝이는 것이 아니라,
뭔가 조용하게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딱 어울릴 만큼- 이었던 것 같다.
모든 것들이 저마다 아름답게, 하지만 또 모두 조화롭게.
해변 레스토랑에 앉아서 저녁으로 스테이크(Steak)를 먹었다.
인도에서 스테이크라니-
고아에 온 것이 확실해졌다.
내일은 또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테다.